겉으로 보이는 게 아니지만
누군가가 이 소설을 추천해서 7,8년 전 처음 읽었다. 그러나 끝까지 읽지 못했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다시 끝까지 읽고 싶었다.
요즘은 SNS를 통해 겉으로 보이는 것에 큰 관심을 끈다. 사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판단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예쁜 외모, 비싼 물건이나 유행하는 것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 익숙함을 무너뜨리는 내용이다. 주인공 남자가 일하다가 못생긴 여자에게 마음이 이끌리게 된다. 여자는 자신의 외모에 위축되어 자꾸 한 걸음 물러선다. 둘의 입장이 다 공감이 되었다.
인간은 과연 실패작일까, 인간은 과연... 성공작일까? 실패와 성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인간은 과연 달의 이면을 볼 수 있을까? 인간은 과연... 스스로의 이면을 볼 수 있을까.
.......
그리고 인간은 실패작과 성공작을 떠나, 다만 〈작품〉으로서도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유명한 소설이지만 사실 읽기가 그렇게 편하지 않았다. 문장마다 비유가 자주 들어가는데 몰입이 약간 어려웠다. 그리고 주인공 여자가 자신의 못생김을 부끄럽게 여기는 부분이 있다. 너무 자기 비하적이고 이 정도로 자기를 내리깔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랑 같이 있는 게 부끄럽지 않았나요?
그녀가 속삭였다. 사람들 속에서... 말이에요. 그러니까 계속...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공원을 거닐면서도... 커피를 마시면서도... 또 벤치에 앉아 김밥을 먹으면서도... 말이에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 사람처럼 그녀는 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혼잣말이면서도 질문인, 혹은 넋두리와 같았던 그녀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자신이 부끄럽지 않냐는 그녀의 물음에 남자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거짓말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어떤 대답에도 그녀가 행복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답이 없다고 여겼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남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상대 마음을 존중한다고 해도 나라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지 못할 것 같다.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남은 건 보이는 외모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진심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마음, 사랑받은 마음으로 비로소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 마음으로 살아갈 힘이 생기기도 한다. 사랑이 떠나도 자기 자신만 남아있다면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다 보니 이 장면이 생각났다. 유튜브에서 배우 김지훈이 '외모는 중요치 않다'라고 한 말이다. 적당히도 아니고 엄청나게 잘생긴 사람이 한 말이라 더 공감이 가지 않았다.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문장은 틀리지 않지만, 그것을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영향을 미친다. 말한 사람이 너무 많이 사랑받아온 흔적이 보일 때, 그 문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이해와 공감 사이에는 언제나 경험이라는 간극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