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읽을 결심
구의증명 / 스파클 / 이방인 / 율의 시선 / 차일드 호더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용의자 X의 헌신
소설을 읽다 보니 다 공통된 주제가 '상처'와 '죽음'이었다.
잘 살고 싶어 했지만, 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래서 때로는 잘못된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거나 사랑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아무 의미도 없는 세계를 묵묵히 견디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항상 죽음이라는 단어가 곁에 머문다.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고 해석된다면 나와 누군가를 이해하는 시선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죽으면 알 수 있을까 싶었다.
살아서는 답을 내리지 못한 것들, 죽으면 자연스레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모르겠다. 살아서 몰랐던 건 죽어서도 모른다. 차이가 있다면, 죽은 뒤에는 모른다고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것뿐.
인간은 과연... 스스로의 이면을 볼 수 있을까. 인간은 어떻게 달까지 갈 수 있었을까? 달 위를 걸어다닌 인간조차도, 그러나 스스로의 내면에는 발을 내리지 못한 채 삶을 마치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아무 일 없이, 아무 일 없는 듯 돌아오던 새벽의 골목길에서 그리고 인간은
실패작과 성공작을 떠나, 다만〈작품〉으로서도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말이지, 사람들은 모두 각자만의 세계를 가진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외계인이라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헐뜯고, 그리고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도. 그 누구도 그의 두뇌까지 손을 뻗을 수는 없다. 그곳은 그에게 무한의 낙원이다. 수학이라는 광맥이 잠들어 있으니 그것을 모두 채굴하는 데는 평생이라는 시간도 짧다.
남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논문을 발표해 평가받고 싶은 욕망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수학의 본질이 아니다. 누가 최초로 그 산을 오르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것 역시 본인만 알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