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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신 Apr 10. 2023

내가 빠져버린 문장들

책, 가재가 노래하는 곳

 책<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두 번 읽었다. 문장이 너무 멋지기도 했고,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어서 다시 읽었다.

 글을 읽다 보니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졌다. 아마 많은 아픔의 산을 넘어왔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낀 사람이었을 것 같았다.


엄마는 오솔길이 대로와 만나는 곳에 이르면 늘 뒤를 돌아보곤 했다. 그러고는 한쪽 팔을 높이 치켜들고 하얀색 손바닥을 흔들며 길 위로 올라섰다.

.......

카야는 길이 훤히 잘 보이는 자리로 달려갔다. 거기서 보면 엄마가 꼭 손을 흔들어줄 거야.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뛰어갔을 때는 파란 여행 가방이 시야에서 막 사라지고 있었다. 가방은 숲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계단에 올라가 기다리려고 돌아선 순간 카야의 가슴에 검고 고운 진흙 덩어리처럼 묵직한 슬픔이 얹혔다.

카야는 오빠의 매트리스의 털썩 주저앉아 하루의 끝이 벽을 타고 스르르 미끄러지며 떨어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해가 저문 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빛이 머물다 방 안에 고였다. 아주 짧은 찰나 어지러운 침대며 묵은 빨래 더미들이 바깥의 나무들보다 훨씬 뚜렷하고 다채롭게 보였다.

_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카야의 엄마가 카야를 남겨두고 집을 떠나는 장면, 그리고 조디 오빠가 집을 떠나는 장면이다. 이 구절을 몇 번이나 읽고 감탄했다.  카야의 슬픈 마음이 실감 나게 와닿았다.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아버지는 다시는 카야와 낚시하러 가지 않았다. 따스했던 날들은 덤으로 주어진 계절이었다. 낮은 구름이 갈라져 밝은 햇살이 카이의 세상을 잠시 환하게 비추는가 싶더니 곧 어둠이 굳게 아물려 움켜쥔 주먹처럼 단단하게 죄어들었다.


아직 수줍어 겨울에 순종하는 해가 이제 고약한 바람과 못된 비가 쏟아지는 나날들 사이로 빼꼼 얼굴을 디밀고 밖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거짓말처럼 봄이 팔꿈치로 쑥 밀치고 들어와서는 아예 눌러앉았다. 낮이 따스해주고 하늘이 윤을 낸 듯 반들거렸다.


카야는 일어나서 크림색 달빛이 은은히 빛나는 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습지의 부드러운 공기가 실크처럼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달빛은 뜻밖에도 소나무 숲 사이에 오솔길을 선택해 그림자를 각운처럼 흩뿌려두었다. 카야는 물에서 나온 달에 이끌려 몽유병자처럼 팔다리를 차례로 움직이며 참나무를 헤치고 올랐다.


외로움을 아는 이가 있다면 달 뿐이었다. 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는 언어가 없는 야생의 세계로 뎌 깊이 파고 들었다.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_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홀로 외롭고 힘든 나날을 견뎌갈 때 날씨와 계절, 자연은 카야에게 위로를 준다. 내게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세상은 따스함을 주지만 나는 알지 못할 때가 많다.

 힘든 나날 속에 봄날 따스한 햇살은 덤으로 주어진 날이며, 여기저기 반짝이는 꽃들은 세상을 환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자연은 언제나 한결같다. 그걸 보고 느끼며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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