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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신 Aug 19. 2024

기억의 왜곡 속으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나의 기억은 진실일까?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가 중학교 때도 같은 학교였다. 중학교 시절엔 반이 다르고 사는 곳만 같아서 그리 친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친해지고 나서 그 친구가 말했다.

  “너 중학교 때 나 싫어했어?”

  “아니, 전혀.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체육복을 안 가져와서 빌려달라고 했더니 네가 안 빌려줬거든.”

 그 말을 듣자마자 너무 미안했다. 게다가 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친구에게 기억나지 않고 미안하다고 솔직하게 말하니 더 서운해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행동이나 말이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되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생각한다.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면 그걸 방어할 이야기가 줄을 이어 나올 것이다. 때로는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게 아닐 수 있고, 옳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 수 있다. 내 기억일지라도 틀릴 수 있다.     


 기억은 우리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또한 시간이 정착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용해제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백히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렇게 믿는다 한들 뭔가가 편해지지도 않고, 뭔가의 소용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을 순탄하게 살아가는 데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실을 무시해 버린다. _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주인공 토니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토니가 마치 내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토니의 전 여자 친구가 토니의 친구인 에이드리언이 만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토니는 그리 내키진 않았지만 둘의 행운을 빌었다. 그때 토니가 '기억은 용해제’에 가깝다는 말을 했는데 마치 기억을 지우고 싶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자신의 기억을 믿었지만 아니었다. 친구와 전 여자 친구가 만난다는 소식에 토니가 둘에게 심한 욕설을 한 거였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내가 겪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땐 내가 유리하게 말하게 된다.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확인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가 부모와 자식 사이에 종종 일어난다.

 부모는 자식에게 잘해준 것만 기억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섭섭한 점을 크게 기억한다. 그게 얼마나 부풀려지는지도 모르고 스스로의 기억을 무조건 신뢰한다.  서로의 입장만 강조하면 서운함이 쌓여 나쁜 기억으로 부풀려진다. 생각과 기억은 내가 좋을 대로 언제든 바뀐다.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라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_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이 책은 기억과 그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나는 죽음에 대한 책임을 말하고 싶다. 토니의 학창 시절에 같은 학교 학생인 롭슨이 자살을 했다. 그때 주위 반응이 이상했다. 에이드리언은 ‘카뮈는 자살이 단 하나의 진실한 철학적 문제’라는 말까지 했다. 친구들은 롭슨의 자살을 슬퍼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나중에 에이드리언이 자살할 거라는 복선이었다.

 에이드리언이 자살하며 삶을 바란 적 없기에 포기한다고 했다. 죽음에 대한 책임은 따라온다. 삶을 바라지 않았기에 포기한다는 것은 책임 없는 말이다. 마치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서 나도 스스로를 싫어하겠다는 말과 비슷했다.  

 혹시 누군가가 이 책으로 자신의 가치를 낮게 여길까 봐 노파심으로 이야기한다. 모든 죽음은 간단히 설명되진 않지만 스스로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을 이해하기엔 남아있는 사람이 너무 아프다.

 삶을 바라기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삶을 거부하며 살아간다면 앞으로의 내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 숨 쉬는 것만으로 사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인생에 문학 같은 결말은 없다는 것. 우리는 그것 또한 두려워했다. 우리 부모들을 보라. 그들이 문학의 소재가 된 적이 있었나? 기껏해야 진짜의, 진실된, 중요한 것들의 사회적 배경막의 일부로서 등장하는 구경꾼이나 방관자 정도라면 모르겠다..... 진정한 문학은 주인공들의 행위와 사유를 통해 심리적이고,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진실을 드러내야 했다. 소설은 등장인물이 시간을 거쳐 형성되어 가는 것이니까. _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작가의 의도가 책을 다 읽고 다시 읽는 거라 했다. 다시 펼치니 뒷부분에서 이해되지 않는 주인공의 행동과 말이 납득되었다.

 작가는 스스로의 인생에 방관자처럼 살지 않길 바랐다. 인생에 문학 같은 결말은 없다. 내가 결말을 예측해 봤자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바로 오늘 계획도 틀어지거나 생각해 둔 저녁 메뉴도 바뀌는 게 인생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되어야 한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우선시 되거나 삶의 끝을 내가 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기억이 왜곡될 수는 있어도 현실을 왜곡하며 살아가서는 안 된다.


저자 줄리언 반스 / 출판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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