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에 꿈이 없었다. 주위 친구들이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걸 보면 대단하게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 무용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공부할 때 그 친구는 무용 연습을 했고 내가 놀 때도 연습했다.
학창 시절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 않은 건 후회가 없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았을 것이다. 나는 공부와는 맞지 않았다. 그러나 뭔가 하나 파고 들었다면, 하는 후회가 있다. 남들 공부하고 놀 때 다른 분야를 했으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사실 쉽지 않다. 예술분야엔 돈이 많이 든다. 돈 때문에 시작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위 친구들이 예술 분야로 갔지만 전문가가 되진 않았다. 누군가는 헛돈 썼다고 여길지 몰라도 아니다. 뭔가 하나를 깊이 배워본 사람과 아닌 사람은 다르다. 훈련을 거듭하며 하나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큰 노력이 들어가는지 안다. 스스로 하나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 해본 사람과 나는 다르다.
나는 항상 재능이 없고 하고 싶은 게 없다고 여겼다. 생각해보니 어떤 걸 한다고 남보다 잘할 자신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핑계를 댔다. 하려는 노력조차 없었고 용기도 없었다.
책『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은 영국의 탄광산업이 적자를 입어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다. 광부인 주인공 빌리의 아버지와 동료들이 해고 당해 파업을 했다.
빌리는 발레가 좋았다. 돈이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빌리의 꿈은 말도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처럼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는 게 무서웠다. 생각한 대로 일이 잘 되면 그래서 오디션을 통과하면 그다음엔 어떡하지? 혹시라도 아빠가 허락한다면 그땐 또 어떡하지? 집을 떠나서 혼자 런던에 가야 한단 말인가? 절대로! 그건 미친 짓이다. 비용은 또 어쩌고? 맙소사! _멜빈 버지스 『빌리 엘리어트』
영화, 빌리 엘리어트
빌리에게 춤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오디션에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게 무서웠고 잘되는 게 두려웠다.
재능은 어떤 이에게는 선물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절망이 되기도 한다. 재능이 있다고 무조건 지지받지 못한다. 노력은 그다음이고 첫 번째로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망설이는 사람에게 무조건 열심히 하라는 조언을 하지 못한다. 원하는 만큼 바라고 노력한다면 이뤄질 거라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
“글 쓰는 거 돈이 안 되잖아. 그래도 계속할 거야?”
주위사람들에게 종종 듣는 질문이다. 아무리 예술은 배고픈 삶이라지만 생활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지속하기 어렵다. 언제 작가로 이름을 알릴지 돈을 벌지 알 수 없다. 간혹 가난해진 현실에 우울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를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다. 잘하고 있다는 가족의 힘으로 버텨나간다. 남보다 잘할 자신은 없지만 끝까지 할 자신은 있다.
책에서 빌리의 꿈을 간절히 바라는 아버지 재키의 노력에 마음이 갔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어린 두 아들과 정신이 온전치 않은 장모까지 돌보며 우는 것도 지쳤다고 했다. 빌리의 꿈도 재키의 삶도 중요했다.
로열 발레학교. 알다시피 나는 전에는 결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가능성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태껏 발레란 그저 돈이 숨도 못 쉴 만큼 바다 끝도 하늘 끝까지 쌓인 중산층 계집애들이나 하는 짓거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중산층이 아니면 또 어떠랴! 그래서 안 될 게 뭔가? 그래, 빌리는 할 수 있다. _멜빈 버지스 『빌리 엘리어트』
재키는 오로지 빌리를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은 돈이 없어 움츠려 들었지만 아들 빌리는 최고라 생각하며 버텼다. 나중엔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기 위해 탄광으로 다시 들어갔다. 동료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갔다.
재키가 빌리를 지원하려고 마음먹은 건 빌리의 간절함과 성실함 덕분이었다. 빌리는 집에서도 쉼 없이 연습했다. 빌리의 노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재키는 일자리를 잃었지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
대신에 우리는 또 다른 미래를 얻었다. 바로 우리 빌리를 위한 미래를. 그건 정말 굉장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_멜빈 버지스 『빌리 엘리어트』
원하는 만큼 노력한다면 뭐든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일엔 여러 장애물이 있다. 오로지 나의 노력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게다가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한 가지를 끝까지 가 본 사람은 하나의 가능성을 얻은 것이다. 용기를 가지고 도전했고 고통을 견디며 살아봤다.시간과 노력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안다.
무언가를 해보고 싶지만 두렵다면 주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해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나의 꿈이 두려움을 뚫고 갈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보여줄 정도는 되어야 한다.하나씩 쌓아가는 걸음이 절대 헛된 일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자기 자신과는 싸워본 거니 용기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