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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신 Aug 26. 2024

사랑의 걸림돌 『오만과 편견』

나는 너를 다 알고 있어

 나는 사람을 몇 시간 이상 만나면 성향을 잘 파악하는 편이다. 말과 표정 행동을 잘 본다. 어떤 주제가 나오면 흥분하는지 혹은 눈빛이 반짝이는지를 관찰한다. 말하는 상대를 얼마나 배려하는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누구나 처음엔 자신을 좋게 보이려고 하기에 쉽지는 않다. 위기상황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면 진짜 성향이 보인다. 감정을 앞세워 본능적인 행동이나 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오만과 편견』은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소설이다. 엘리자베스 베넷과 부자 윌리엄 다아시의 관계에서 오만과 편견이 일어나는 내용이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과 내가 비슷한 점이 있다. 남들을 조금만 봐도 잘 파악한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내가 상대를 잘 안다는 오만함으로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다. 사실 성향을 잘 파악한다는 것은 내 단점이었다. 단 몇 시간을 만나서 그 사람이 걸어온 세상을 조금이라도 짐작하기 힘들다. 안다고 확신한다면 그건 오만이다.

 엘리자베스는 남자 주인공 다아시를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았지만 점점 빠져들었다.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의 오만함에 확신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다.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를 잘 아는 위컴과 친해졌다. 위컴은 다아시 집안에서 자신에게 목사 자리를 약속했지만 주지 않았다고 했다. 대화를 나눌수록 엘리자베스의 편견은 확실해졌다.     


 오만은 종종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죠. 다른 감정보다 오만이 그나마 미덕에 가까이 가도록 해줬어요. 하지만 한결같은 사람은 없잖아요. 그가 내게 한 짓을 보면 오만보다도 더 강렬한 충동이 있었던 겁니다. _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영화, 오만과 편견


 위컴은 자신의 잘못을 빼고 다아시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붙였다. 한 사람 이야기만 들으면 마치 다른 상대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들어보지 않고 결과만 보고 비난하기도 한다. 때로는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고 내가 보고 들은 것만 믿으려 한다.

 학창 시절엔 친구들과 만나면 남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희한하게도 남 이야기가 가장 재밌고 남이 잘 풀리지 않는 이야기에 더 귀가 기울어졌다. 남 연애부터 가정사까지 이야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참 철이 없었다.

 그땐 내 잘못을 몰랐다. 지나 보니 나와 연관이 있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애매한 이야기였다. 그저 재미로 했지만 생각해 보니 마음 바탕에 열등감이 있었다. 남을 방패 삼아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열망이었다. 못난 모습이었다.


 사랑이 아니라 허영이 나의 문제야. 나를 편애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나를 무시하는 사람에게 분노해서 그를 만난 순간부터 두 남자에 관한 일이라면 편견과 무지를 좇아 이성을 저버렸으니까. 여태 나는 나를 까맣게 몰랐어. _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엘리자베스가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알고 후회했다.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 후가 더 중요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가 오만하다고 느껴진다면 내 안에 있는 점을 봤을 수 있다. 나와 비슷하다고 여기는 점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가 진짜 오만했는지도 모른다. 남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만 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힘들다.

 나는 상대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먼저 보였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먼저 조심하고 거리를 두었다. 스스로 상대를 빨리 파악해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상대를 알아가는 시간을 두지도 않은 오만이었다.     


영화, 오만과 편견


 시작한 시간이나 장소나 표정이나 말을 딱 집어낼 수 없어요. 오래 전이니까요. 내가 시작해 버린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한참 빠져 있었어요. _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언제 사랑에 빠졌는지 모르는 것처럼 사랑은 예고 없이 다가온다. 관심 있는 사람에게 처음엔 좋아하는 걸 묻고 공통점을 찾는다. 나와 비슷하면 왠지 모를 기쁨과 안도감이 든다. 처음엔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보고 사랑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려진 이면을 보게 된다. 사실 상대가 원래 가진 성향이었지만 몰랐을 뿐이다.

 반대로 헤어짐에는 여러 징조가 나타난다. 처음엔 예뻐 보였던 행동과 말이 점점 미워진다. ‘저런 점이 눈에 거슬려.’ 하는 순간부터 위기가 온다. 나의 오만으로 한 사람을 미워하는 건 순식간이다. 모든 사람은 나와 다르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 사랑을 유지하기 힘들다.

 누구나 나와 다른 점이 있다.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이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고민해야 한다. 만남에서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는 게 좋다. 편견은 사랑의 걸림돌이다. 하지만 편견을 인정하는 순간 사랑으로 다가가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저자 제인 오스틴 / 출판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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