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이른 밤, 사무실로 한 중년 어르신이 찾아왔다. 집에 누군가 쓰러져 있다는 말과 함께 자기를 따라오라며 먼저 차를 몰고 출발하셨다. 급한 상황에 왜 신고 대신 차를 타고 오셨을까 의아해하며 따라가 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하얗고 예쁜 2층 단독주택이 있었다.
주변을 살피는 중 구급 대원이 문을 열었다고 소리쳤다. 거실에는 연로하신 할머니가 누워 계셨고 가족분이 옆에 서 있었다. 할머니는 그냥 쓰러진 게 아니었다. 최근 넘어진 이후로 거동을 못 하게 되었는데, 마을 분이 그걸 아시고 신고를 하신 거였다.
냉기로 가득 찬 집 내부엔 등유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했다. 상태를 확인하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할머니는 갈비뼈 통증에 비명을 지르셨다. 병원에 가자는 구급 대원의 말에 할머니는 "나는 못 가요, 돈이 없어요"라는 말만 반복하며 우셨다. 그 옆에서 보호자는 그저 지켜만 볼 뿐이었다. 집 안에 짐이 다 쌓여 있기에 이사를 가나 싶었는데, 퇴거 명령에도 갈 곳이 없어 쌓아 둔 것이라 했다.
일지를 쓰며 참 씁쓸했다. 돈이 없어 1년 넘게 당뇨약을 못 드셨다는데, 할머니의 발가락은 이미 시커멓게 썩어 있었다. 통증보다 가난이 더 무서운 할머니는 구급 대원의 권유에도 계속 우셨다.
그 모습을 보는데 아버지가 급성암 판정을 받고 얼마 안 된 시점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생일이었던가, 오랜만에 가족이 모인 자리였다. 한 번에 100만 원이나 하는 비싼 치료법이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옮겨서라도 치료를 하자고 하셨고, 형과 나도 아버지를 설득했다.
계속 싫다고 고집을 피우시던 아버지는 결국 화를 내셨다.
"집 팔고 치료받다 죽으면, 엄마는 혼자 집도 없이 어떻게 살라고 그러냐."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의 말끝이 파르르 떨렸다. 고개를 푹 숙이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들었다. 가족 앞에서는 늘 강한 의지만 보여주셨던 분인데, 그 내면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보다 남겨질 아내에 대한 걱정이 더 컸던 것이다.
돈이 없다고 우시던 할머니의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생활비조차 없는 설움이었을까, 아니면 남겨질 가족을 위한 할머니의 마지막 버팀일까.
할머니도 우리 아버지처럼 생각하셨을 것 같다. 남겨지는 가족에 대한 걱정, 그리고 자기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