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스위치

by 무명

아내가 임신을 했다.

하루하루 기대와 행복이 섞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퇴근길, 아내에게 줄 붕어빵을 사서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낡은 스위치 하나가 탁, 하고 켜졌다.


몇 년 전의 그 아파트 입구였다.


"아, 입구가 어디야! 저기다, 저기!"


동료의 고함과 함께 차가 멈췄다.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주민들이 웅성거리는 사이로 자동심장압박기가 소리를 내며 한 여성을 압박하고 있었다. 기계가 돌아가고 있다는 건, 다른 환자에게 대원의 손길이 더 절실하다는 뜻이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도 보도블록 위에 아주 작은 아이가 있었다. 세 살쯤 된 여자아이였을까. 겉보기엔 그저 코피가 약간 흘러나왔을 뿐, 눈을 감고 평온하게 자는 것만 같았다.


“애기야, 눈 좀 떠봐!”


구급대원이 아이의 가슴을 압박하며 내뱉는 말엔 당장이라도 무너질 감정을 꽉 붙들고 있는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여성을 먼저 이송한 뒤, 내가 아이를 안아 구급차로 옮기려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어, 왜 이렇게 힘이 없지?'


분명 뭔가 다르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마치 크기만 크고 안을 채운 솜은 별로 없는 인형을 안은 것 같았다. 아이는 다발성 골절로 이미 몸의 형체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이를 구급차에 눕히고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한동안 머릿속이 멈춘 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복귀하는 차 안은 고요했다. 대원들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우울증으로 그리고 아이를 던진 뒤 뒤따라 투신한 사고였다고 했다.


첫 팀장님이 언젠가 하신 말씀이 있다.

"우리는 모두 미쳐있는 거다. 이런 현장을 겪으면서 미치지 않고는 지낼 수 없을 거다. 다만 그게 견딜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무뎌진 것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미쳐있던 것이었을까. 더한 현장도 겪었지만 아무렇지 않았고, 나만큼은 괜찮은 줄 알았다. 내 기억의 벽은 그만큼 단단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잊었다고 생각한 기억이 그 단단한 틈 사이로 기어이 삐져나왔다. 아이는 무슨 잘못이었을까. 도대체 어떤 마음이면 그 높이에서 아이를 놓을 수 있는 걸까. 죽은 아이 엄마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일주일 내내 그 잔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려왔다. 모든 현장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억 구석에 숨어 있는 거였다. 머리로는 안다. 누구도 그 상황을 막을 수 없었다는 걸.


하지만 오늘처럼 행복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스위치가 켜지면, 그때의 죄책감이 뒤늦게 느껴진다.


이제는 안다. 이 불쑥 켜지는 스위치조차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이라는 걸. 오늘도 그 아픈 기억을 문장으로 옮기며, 내 안의 벽을 조금씩 다시 메꿔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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