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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소년이 온다

한강

by 김민규

*작성일 : 2024년 11월 5일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소개한다.


이 책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며, 그 당시의 광주의 상황과 그 속에서 시민들의 비참하고도 앙상한 모습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마치 전쟁의 분위기를 방불케 하는 총탄과 저격수,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선량한 시민들 그리고 이러한 겁박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저항하며 항쟁하는 학생들의 열렬함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작가는 챕터마다 화자를 다르게 설정하면서 또한, 화자마다 지칭하는 대상을 달리하면서 당시 무참히 희생된 광주 사람들의 심정과 마음을 다채롭게 표현하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 17 페이지

희생당한 시민들이 누워있는 관에 태극기를 덮고 애국가를 부른다. 국가를 상징하고 국민을 수호하는 군인이 자국민을 죽였는데, 왜 그 주검들의 관에 애국가를 부르는가? 이 순수한 의문에 대하여 당시 군인들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발포를 실시한 역사적 만행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들의 몸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어. 내 배 위에 모르는 아저씨의 몸이 구십도로 가로질러 놓였고, 아저씨의 배 위에 모르는 형의 몸이 다시 구십도로 가로질러 놓였어. 내 얼굴에 그 형의 머리카락이 닿았어. 그 형의 오금이 내 맨발에 걸쳐졌어. 그 모든 걸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내 몸 곁에 바싹 붙어 어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야. - 46 페이지

군인에게 살해당한 청소년기 남학생의 혼을 화자로 설정하여, 그 혼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황망으로, 군인과 정부에 대한 복수심으로 울부짖는다. 당시 무고하게 희생당한 수많은 영혼들이 광주를 떠돌아다니며 온전하게 이승을 떠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 130 페이지

민주화운동이 종료되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일상으로 돌아온다고 한들, 당시에 느꼈던 공포와 고통 그리고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김진수’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군인들에 의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문 받고 짐승 취급을 당하던 그 순간은 온몸에 낙인 찍혀 그가 일상 생활을 할 수 없게 계속적으로 그를 갉아 먹는다. 결국 그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다. 이를 통해, 사건은 순간이지만 그로 인한 고통과 괴로움은 개개인에게 있어 평생 지속되고 그들을 옥죄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 공부를 좋아했던 나는, 전 세계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전쟁들과 전염병 그리고 민주화운동들을 공부하여 피상적으로 그 사건들을 기억했다. 언제 일어났고, 얼마나 지속됐으며, 몇 명이 죽었다고. 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공부였을 뿐, 그 실상과 내막은 이렇게 단순히 정리될 수 없는 수준임을 새삼 깨닫았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단 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더라도, 그 사상자의 입장에서는 그 사건은 절대적인 비극이며,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는 악몽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들에 대하여 시계열의 거시적 공부가 끝났다면, 그 거시적인 사건들 속의 미시적 이야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 안의 세세한 이야기들을 풀어내 보면, 역사를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길 것이고, 그 눈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적어도 누군가의 절대적 비극은 피할 수 있도록 하는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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