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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정치적 부족주의

에이미 추아

by 김민규

*작성일 : 2024년 11월 12일


이번에 소개할 책은 에이미추아 교수의 정치적 부족주의이다.


미국의 대외적 정치외교 활동과 전쟁 그리고 대내적 집단 갈등을 ‘부족적’인 차원에서 해석하며 이 문제들을 쉽게 풀어내고 있다. 다소 진보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사례마다의 당시 미국의 실수들과, 이를 바로잡기 위한 부족적 이해를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부족적’이란 표현은, 어떤 문제를 단순히 이념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종과 민족의 역사와 종교 그리고 그 문화적 배경과 환경을 복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함을 말한다.


저자는 베트남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무슬림 테러조직 그리고 베네수엘라 외교를 통해, 당시 미국의 흑백 논리 및 이분법적 사고에 허점을 지적한다. 또한, 각 지역의 민족적, 역사적 흐름들을 파악한 후에 어떠한 의사결정을 했어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집단 갈등, 아파르트헤이트 그리고 불평등과 같은 미국 내 사회문제에 있어, 유색과 백색이라는 단순한 분리적 사고가 아닌, 각 인종의 이주 역사와 민족 역사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종간의 화합과 올바른 미국 비전을 제공한다.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슈퍼 집단’이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어느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도 구성원이 될 자격을 허용하지만 그와 동시에 하위 집달들을 초월하는 더 강하고 포괄적인 집단 정체성으로 그들 모두를 한데 묶은 집단이다. - 34 페이지

미국은 500년의 짧은 역사를 통해 건국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현존 자타공인 최고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원천은 민족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되, 이를 초월하는 고차원적인 정체성이 그 다양한 색을 한데 묶어주고 있음을 말한다.


통념과 다른 의견을 갖곤 하는 사람인 맥매스터는 기존과는 전적으로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이라크의 집단 간 분열과 집단 정체성들이 일으키는 복잡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고려해 접근하기로 한 것이다. – 112 페이지

이라크 전쟁 중 맥매스터 장군의 이라크 사회에 대한 ‘부족적’ 접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쟁 당시 미국은 이라크 내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파적 갈등과 그 역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고, 이러한 민족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섣부른 결론은 계속적으로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했다. 저자는 맥매스터 장군의 성공 사례를 들어, 인종 및 민족적 이해가 문제 해결의 핵심임을 강조한다.


탈아파르와 라마디에서도 그랬듯이 미군을 더 이상 부대를 안전 지역인 FOB에 고립시키지 않았다. 또 반란 세력을 조금이라도 지원했거나 가담한 사람을 모조리 죽이려 하지도 않았다. 미군은 ‘멀고 안전한 기지에 있다가 갑자기 지역을 급습해 기지를 확보하기보다’ 바그다드에서 지역민과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 118 페이지

지역적 문제 해결에 앞서, 그 지역과 지역민에 대한 부족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다른 예시이다.


냉전 때도 그랬듯이 승리주의에 취해 있던 10년 동안 미국은 부족정치의 강력한 힘을 고려하지 못했다. 더 중요하게, 미국은 민주주의가 인종 간, 분파 간, 그밖의 집단 간 동학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민주주의는 부족적인 증오에 대해 중화 작용이 아니라 촉매 작용을 했다. – 125 페이지

지금까지의 미국의 의사결정의 허점을 비판하는 대목이다. 냉전 이후 자유민주주의의 바람이 불며 미국은 공산화를 이겨내고 전세계를 미국화 시켰다고 자만했지만, 정작 그들은 여러 대외적 전쟁들과 대내적 인종갈들에 있어 부족 동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이는 전쟁 패배와 갈등 심화를 야기했음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런데 부족 본능은 이런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가장 어둡게 표출될 경우, 부족주의는 탈인간화를 통해 공감과 감수성을 마비시킨다. 부족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집단이 헌신하는 목표에 유리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만들어서 현실을 대대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 또 집단 정체성은 순응의 압력을 일으켜 사람들이 혼자서는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일들을 하게 만든다. 개인의 책임은 집단 정체성으로 녹아들고 집단 정체성에 의해 부패한다. 그렇게 해서 잔혹하고 끔찍한 행동을 찬양하고 그런 행동에 가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 143 페이지

테러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모두 괴팍하고 잔인하며 사이코패스적인 성격을 지닌 정신 이상자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집단을 이루고 집단적 목표와 이념을 중심으로 뭉쳐, 모두가 같은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이들은 반사회적 테러집단이 될 수 있다. 테러 집단을 향한 단순한 비판 이전에, 그 집단이 만들어지는 원리와 그 이유를 부족적으로 접근해야 함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지배 엘리트 계층은 마약 수호성인을 믿는 민속신앙을 보고 그 불합리함에 경악하거나 조롱을 보낼지 모르지만, 이런 신앙은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주변으로 내몰린 그들의 사회적 지위에 조응했다. 또 그들이 느끼는 사회적 소외감에 호소력이 있었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바에 정확하게 공명하는 집단 소속감을 제공했다. – 194 페이지

소위 ‘일반 정상인”들은 사이비종교와 테러집단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들의 행위를 절대적으로 비난한다. 하지만 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의 사회적, 경제적 결핍의 사람들은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불가하며, 본인들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해주는 듯한 반사회적 집단들에 매료되어 빠져들 수 있음을 이해시켜주는 내용이다.


미국은 주요 강대국 중 유일하게 ‘슈퍼 집단’이다. 미국은 부족 정치를 초월하는 국가 정체성을 만들어 냈다. 이 국가 정체성은 어느 하위 집단에도 귀속되지 않으며 놀랍도록 다양한 배경의 인구를 포괄할 수 있을 만큼 강하고 넉넉하다. 한마디로, 이것은 미국인 모두를 ‘미국인’이 되게 만드는 정체성이다. 슈퍼 집단이라는 위치는 매우 힘들여 일군 것이며 매우 소중한 것이다. – 211 페이지

저자는 여러 케이스 스터디 이후에 다시 ‘슈퍼 집단’의 정의를 꺼낸다. 인종민족적 이해를 바탕으로 부족 동학의 이해를 강조한 저자는, 결국 우리가 최종적으로 가야할 목적지는 이 모든 부족을 초월하는 ‘슈퍼 집단’이라는 집합이다. 이는 비단 미국이라는 국가를 벗어나 세계인이 하나의 초월적 집단 집합에 소속되어 결집될 수 있다는 바를 시사한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에서는 어느 집단도 지배력을 안전하게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모든 집단이 공격받는다고 느끼고 다른 집단의 공격 대상이 됐다고 느낀다. 일자리나 기타 경제적 이득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자격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주의는 집단 간의 제로섬 경쟁으로, 순수한 정치적 부족주의로 퇴락한다. – 225 페이지

최근 미국 내 보수 정치의 강세를 예시로 하여, 이러한 흐름은 다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의 분열과 집단 갈등을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사회 개선이 아닌 퇴보를 말하며, 저자가 추구하는 ‘슈퍼 집단’에 반하는 방향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흑인, 아시아계, 히스패닉, 유대인 등이 미국에서 자신의 인종적, 민족적 정체성에 기반해 자부심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게 허용된, 아니 독려된 반면, 백인 미국인은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는 경고를 들었다. – 241 페이지

부족적 평등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민족에 대한 공평한 잣대가 중요하다. 다만, 역사적으로 ‘백인은 지배층, 유색인종은 피지배층’라는 통념이 미국 내에서 고착화되어왔고, 이게 지속되면 사회적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정의로운 사회는 차별 뿐만 아니라 역차별도 계속적으로 주의해야 함을 일깨운다.


미국이 계속 슈퍼 집단일 수 있으려면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서로를 동료 인간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서로를 동료 미국인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합적인 국가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 255 페이지

결국 미국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초월적 가치를 찾아야 한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하나의 용광로에 쏟아져 들어왔고, 이들이 잘 녹아져 한가지 뚜렷한 색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국가 정체성’이며, 미국인이라는 정체로 실현될 수 있다.




최근 공화당의 대선후보 도날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의 정치적 공략과 과감한 행보는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부족적 갈등을 심화하고, 민족적 갈등과 불화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킨다. 물론, 타민족으로 인하여 주변화된 저소득 백인들의 불만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인종과 민족을 이끌고 가야하는 숙명을 가진 이 나라는, ‘슈퍼 집단’이라는 대의로 가기 위해 어떤 결정들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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