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뒤라스
*작성일 : 2024년 11월 18일
이번에 리뷰할 책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이다.
이 책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에서의 백인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의 가족 구성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베트남에서 세 남매를 키우는 프랑스어 교사인 어머니, 도박에 중독되어 집안의 돈을 모두 탕진하고 가족들에게 난폭한 언행을 저지르는 큰오빠 그리고 주인공이 그나마 가족 중에서 가장 아끼고 공감하며 사랑했던 작은 오빠가 있다.
항상 큰 오빠만을 바라보며 딸인 자신을 대놓고 차별하는 어머니의 행동과 항상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집안 분위기에 억눌려 심신이 점점 피폐해져 가던 어느 날, 메콩강을 건너는 배 위에서 한 중국 남성을 만나게 된다. 그는 멋진 검정 승용차를 가지고 있었고, 흰 옷의 운전기사도 두었다.
그들은 첫 눈에 서로에게 반해, 그날 남자의 집으로 가서 그 무엇보다 뜨거운 육체적 사랑을 나눈다. 그녀가 그에게 반한 이유가 그의 재력과 돈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다. 당시 그녀를 가두고 있던 가정 분위기 속 억압된 감정을 해방시키고, 온전히 사랑받는 그 순간을 기억하며 그녀는 이 정상적이지만은 않은 사랑을 이어 나간다.
결국 그녀는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고, 또한 그 남자의 아버지도 중국인인 그와 백인 소녀 사이의 사랑을 반대하여 이 국경 넘은 사랑은 막을 내린다. 이 책은, 가정 분위기와 경제적 압박 그리고 사회적인 다름 속에서 주인공의 내면적 감정과 의식의 흐름을 아주 세밀하게 전달한다.
오늘의 이 슬픔도 내가 항상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것임을 느꼈기 때문에. 너무나도 나와 닮아 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 슬픔이 내 연인이라고. 어머니가 사막과도 같은 그녀의 삶 속에서 울부짖을 때부터 그녀가 항상 나에게 예고해 준 그 불행속에 떨어지고 마는 내 연인이라고. – 57 페이지
중국 남자와의 격정적인 사랑의 행위가 끝나면, 그녀는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된다. 남자는 그것이 자신과의 관계에서 기인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녀의 어머니라는 항상 그녀의 마음 한 곳에서 그녀를 옥죄고 압박하는 고통에 기인하며, 그녀는 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기에, 이를 ‘내 연인’이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우리의 관계가 계속되는 동안, 거의 1년 반 동안 우리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게 될 것이고, 한 번도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는 두 사람이 공유하는 미래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해서는 결코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신문 기사 같은 것들에 대해서만 얘기를 나눌 것이다. 늘 같은 감정으로. – 62 페이지
주인공은 본질적으로 이 남자와 영원히 사랑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 남자를 대하는 우리 가족들의 행동을 봐도, 또한 그 남자의 아버지만 보더라도 그렇다. 따라서 그들은 둘의 관계에 대한 어떠한 계획, 약속 그리고 희망을 현재의 쾌락 속에서 철저하게 지워버린다.
내게 전쟁은 큰 오빠와도 같다. 전쟁은 큰 오빠처럼 도처에 번지고, 침입하고, 훔치고, 또 감금한다. 또한 모든 것에 섞여 들어 머릿속에도 몸속에도 생각 속에도 존재하며, 깨어 있을 때나 자고 있을 때나 시종일관 제어할 수 없는 취기 같은 욕망에 사로잡혀 사랑스러운 영토 같은 어린아이의 몸을, 나약한 자들이나 패배한 민족들의 육체를 점령한다. 악은 바로 거기에, 우리 피부에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 77 페이지
주인공이 평소에 큰오빠를 어떻게 생각하지는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전쟁과도 같은 잔인함과 난폭함은 그녀와 그녀의 작은 오빠를 고통으로 몰고 간다. 결국 그녀에게 있어서 큰오빠는 작은 오빠를 죽음으로 몰고간 전쟁과 같음을 상당히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큰 오빠가 죽은 날은 날씨가 음울했다. 봄이었고, 아마 4월이었던 것 같다. 내게 전화가 왔다. 큰 오빠가 침실 바닥에 쓰러져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말 외에 다른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큰 오빠의 삶이 끝나기도 전에 죽음은 이미 그의 곁에 와 있었다. 살아 있으면서도 그는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너무 늦게 죽었다. 작은 오빠가 죽은 날 이후로 그는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노라." 였다. – 97 페이지
본인 인생에 있어 항상 억압과 압박, 그러나 가족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큰 오빠의 죽음에 대한 주인공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나마 동질감을 느꼈던 작은 오빠가 죽은 순간, 그녀의 어머니와 큰 오빠도 함께 죽었다고 느낀다. 큰 오빠의 죽음을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노라’라는 문구로 소감하며, 상당히 통쾌하면서도 허탈한 그녀의 심정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