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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Tim Cook

애플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조용한 천재_린더 카니

by 김민규

*작성일 : 2024년 11월 26일


나의 애플은 17살 파란색의 얇고 세련된 디자인의 iPod부터 시작된다. 소리바다를 통해 다운 받은 음악을 아이튠즈를 통해 iPod에 넣어 노래를 듣곤 했다. 또한, 그 안의 여러 게임들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국내 MP3 기기들과는 확연히 다른 디자인과 터치감이 인상적이었으며, 그때부터 다른 전자기기와는 설명할 수 없는 차이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후 2011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iPhone 4를 샀고, 지금까지 계속 아이폰을 고집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 또한, 애플의 사과밭에서 아이팟, 아이폰, 에어팟 그리고 애플워치를 사용하며 애플이 제시하는 방향과 방법을 통해 세상을 더 세련되고 윤택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같은 전자기기의 문외한도 애플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애플은 고객과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을 해왔는지를 깊게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애플의 창립자이며 유일 신인 잡스의 그림자에서, 그 이상의 애플을 이끌어낸 두 번째 CEO의 일대기를 읽어 나가며 여러 번의 전율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애플이라는 가장 창의적인 브랜드를 만들고 그것을 세상에 최초로 소개한 천재가 스티브 잡스라면, 이 애플에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부여하고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게 만든 것은 바로 팀 쿡이다.




쿡은 윌리스와 악수를 나누며 모종의 수치심을 느꼈다. “주시사를 만나는 일이 전혀 영광스럽지 않았지요.” 쿡의 말이다. “그와 악수하는 것이 내 자신의 신념에 대한 배신행위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내 영혼의 일부를 파헤치는 것과 같은, 잘못된 일이라는 느낌이 든 겁니다. – 57 페이지

쿡은 미국 남부의 앨리배마 출신의 백인 남성이다. 이 지역은 상당히 보수적이며 전쟁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유색인종 차별 문화를 유지하였다. 쿡은 이 곳에서 나고 자라며 이러한 인종적 차별에 큰 불편함을 느꼈고, 이는 훗날 쿡의 애플에 “다양성”이라는 핵심적인 키워드를 가져다 준 인상깊은 일화이다.


쿡은 윤리수업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업계 관계자와는 다른 관점으로 비즈니스를 보게 되었다. 그는 환경을 돌보고 직원을 존중하는 등의 방식에서 ‘모든 것을 접할 때보다 더 낫게 만들어 놓고 떠난다’라는 교훈을 배웠다. 그의 청소년기 신념이 그렇게 보강되어 훗날 CEO 재임 기간에 품질보증 마크가 된 것이다 – 92 페이지

쿡이 자신의 경영 철학과 사상을 어떻게 키워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쿡은 잡스와 달리 애플이라는 대기업의 기업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또한 이를 실천했다. 애플이 단순히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이익을 벌어주는 기업이 아닌, 그 수혜가 다시 고객과 세상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경영 마인드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쿡은 첫 만남에서부터 잡스가 꿈꾸는 애플에 대한 전략과 비전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도 그 사명에 동참해 가치 있는 기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수 있다’는 잡스의 권유에 그 자리에서 설복당한 셈이다 – 119 페이지

쿡이 잡스와의 전설적인 첫 만남을 회상하는 대목이다. 애플이라는 신화를 설계하고 창조한 잡스와, 그 애플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게끔 만든 쿡의 만남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이 두 천재의 만남이 언제 나올지 계속 기대하며 문장을 읽어 나갔다. 특히, 둘의 만남 순간의 쿡의 소감을 보며, 나 또한 이런 멋진 제안을 해줄 귀인이 내 앞에 나타날지와 내가 어떤 이에게 이런 운명적인 사업 파트너가 될 수 있을지 상상해보았다.


잡스의 공장은 수요 변동에 따라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아이맥과 같은 다른 제품을 생산할 유연성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반면 쿡의 획기적인 아웃소싱 이니셔티브는 국내에 공장을 보유할 필요성을 감소시키며 애플의 회생과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 142 페이지

잡스는 전동화 로봇을 통해 미국 내 최대 생산 설비를 갖추었지만, 이 아름다운 공장은 다양한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해 1992년 많은 매몰비용만을 남긴 채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다만, 운영의 마술사 쿡은 이러한 문제를 해외 아웃소싱을 통해 깔끔하게 해결하였고, 단일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대량생산의 시대에 맞는 운영관리 솔루션을 적용한다. 진짜 경영자의 자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쿡은 포스톨과 브로윗의 해고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다음의 말을 통해 경영진의 협력 방식과 책임의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것은 우리가 함께 정립하는 가치관입니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하기 원하고 정직함과 솔직함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실수를 인정하고 고쳐나가는 용기를 중시합니다. 그리고 사내 정치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저는 정치 행위를 경멸합니다. – 174 페이지

쿡은 애플의 본질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그 본질에 해가 되는 행위들을 엄격하게 차단한다. 그는 애플에서 오래 일해온 고위 임원 및 경영진을 단호하게 해고하며 그 원칙을 더 굳건하게 지켜 나간다. 애플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는 고객과 그 고객을 감동시키는 제품이며, 이 고객가치와 제품이 최고가 될 수 없게 만드는 사내 정치와 같은 불순물들은 가차 없이 애플월드에서 제거한다. 자칫 사내 입지가 좁아지거나 기업 리딩에 있어 본인의 지지자가 줄어들어 수 있는 위험한 결정이지만, 그는 그보다 더 강한 자신만의 경영철학과 신념을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애플의 공장을 방문해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노동 환경 개선에 실질적인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그해 3월 말 그는 중국 정저우로 직접 날아갔다. 12만 명의 직원이 있는 신설 폭스콘 조립 공장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많은 직원이 아이폰 조립에 투입된 공장이었다. – 185 페이지

아웃소싱 외주업체에 대한 쿡의 포용력과 관리 철학을 알 수 있다. 그는 해외 외주 생산업체도 모두 ‘애플’이라고 생각한다. 그 곳에서 발생하는 열악한 노동 환경, 긴 노동 시간, 환경 오염도 모두 애플의 당면한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이는 외주 업체에 냉정했던 잡스와는 상반되는 경영 방식이다. 좀 더 넓고 멀리 보는 시각으로, 애플의 영향력을 전 세계적으로 퍼트는 건 분명 두 번째 CEO의 이러한 해안 덕분일 것이다.


애플스토어는 애플에서 판매하는 가장 큰 제품”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재밌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애플스토어를 ‘매장’이나 ‘상점’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는 ‘마을 광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모든 사람이 편하게 모일 수 있고 또 환영받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깁니다. – 221 페이지

신사동 가로수길의 대한민국 애플스토어 1호점을 방문하면 위 쿡의 발언이 120% 이해가 된다. 그곳의 직원은 방문 고객수만큼 존재하며, 모든 직원들이 매우 쿨하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고객에 대한 다소 경직되거나 혹은 부담스러운 접근 없이, 마치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동아리 안에서 매우 외향적인 성향의 동아리 회원을 만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문화는 실리콘 밸리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CEO의 인사이트에서 시작되었고, 그 이니셔티브는 그가 있는 곳에서부터 몇 천 km나 떨어진 대한민국의 한 휴대폰 가게를 서울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애플 타운로 만들었다. 내가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애플에 대한 경험과 생각들이, 쿡의 의도한바 대로 그대로 형성되고 느끼고 있음에 다시한번 감탄과, 한편으로 두려움까지 느껴진다.


스티브 잡스의 입김이 닿지 않은 최초의 주요 제품’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그와 시계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 시계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대화를 한 적이 없었겠지요.” 아이브가 잡스와 나눈 대화를 회상하면서 한 얘기다 – 239 페이지

자, 이쯤 되면 쿡은 잡스가 창조한 세계를 잘 운영했을 뿐이지, 또 다른 새로운 애플을 창조할 창의성은 없는 따분한 경영자라고 착각할 수 있다. 나 또한, 애플워치 챕터까지 읽어오며 이러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애플워치라는 잡스의 색깔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제품의 기획과 출시를 통해, 쿡은 “경영까지 할 줄 아는 천재”라는 별칭을 지어주고 싶었다. 항상 헬스케어를 중시해 왔던 쿡은, 워치 기획에 전력을 다했고, 그 결과물은 전세계 몇천만 인구의 매일의 심장박동수를 체크하며 그들의 펄스널 닥터로 일하고 있다.


핵심은 자연입니다. 자연은 한번 파괴되면 되돌리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고 깨끗한 물과 공기 등 모든 것을 내주는 자연을 보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 것이 없으면 어떤 분야에서든 우리가 인간으로 성공적인 삶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 265 페이지

쿡은 항상 기업의 사회적 책임, 특히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 어떠한 영리 활동도 자연을 파괴와 동행할 수 없으며, 결국 자연과 기업이 모두 건강한 방향의 경영을 추구한 것이다. 우리는 회사가 돈만 잘 벌고 주주들에게 높은 주가와 많은 배당만 주면 된다고 착각하며 기업을 운영하고 부를 축적한다. 심지어 영리 활동에 환경 오염을 우려하면, ‘공무원처럼 일한다’, ‘배가 불렀다’라며 비아냥 거리기 일수이다. 이는 모든 기업이 애플처럼 될 수 없는 이유를 적나라하게 꼬집는다고 생각하고, 그 만큼 CEO의 철학이 기업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저 프라이버시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의 초기 설계부터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사항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또한 애플은 페이스북이나 구글과 같은 여타의 실리콘밸리 거대 기업과 달리 “우리는 고객들의 사적인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관심이 없다. – 200 페이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쿡의 철학을 알 수 있다. 애플은 개인의 정보, 선호, 가치관 등이 모두 녹아들어가 있는 첫번째 제품인 스마트폰을 다루는 업체로, 이러한 철학은 이 기업을 믿고 제품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있어 정말 중요하다. 또한, 유저 수를 자랑하며 다량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추가 수익구조를 만드는 다른 빅테크 기업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그의 발언은, 독자에게 있어 반성의 기회와 짜릿함까지 선사한다. 진짜 고객 지향적인 사고와 고객 중심의 경영 철학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부분이다.


만약 애플의 CEO가 게이라는 소식이 자신의 성 지향성과 관련해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또는 혼자라고 느끼는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혹은 자신의 평등성을 주장하는 누군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이것은 내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희생하더라도 밝힐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327 페이지

쿡은 애플의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불어넣으려 계속적으로 노력한 인물이다. 그는 본인의 성 저체성에 대한 공개를 통해, 애플과 이를 넘어선 세상에 대한 편견을 부수고 더 공평한 사고방식을 제시한다. 애플은 단순히 애플에서 머무는 회사가 아닌, 세상을 애플스럽게 만드는 기업이다. 이러한 CEO의 발언은 세상을 애플스럽게, 즉 다양성이 존중되고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끔 만들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쿡은 기회가 날 때마다 애플이 ‘전보다 더 나아진 회사’라고 강조했다. 경험과 지식, 관점에 보다 많은 다양성을 부여하여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뜻이다. “애플의 제품이 실로 대단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엔지니어와 컴퓨터공학자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술가와 음악가도 있지요. 바로 그런 공학과 인문학의 교차가 마법과도 같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근원입니다.” – 338 페이지

쿡의 다양성에 대한 집착의 이유를 기업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그는 세상을 더 밝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인류애적인 사고에 앞서, 애플의 제품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업 문화가 바로 이 ‘다양성’에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예전 뉴스 기사에서 ‘삼성은 왜 애플을 이기지 못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본 기억이 있다. 그 이유는 이러한 다양성과 인문학적 접근에 있어 삼성이 애플에 많이 뒤처짐을 꼬집는 내용이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 공대 중심의 이공계취업 문화는, 애플만의 유려한 디자인과 세련된 퀄리티를 따라잡는데 있어 역행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기술을 사용하여 일상의 순간을 향유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애플의 모든 제품을 처음부터 접근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입니다. – 359 페이지

쿡의 경영 키워드 중 ‘접근가능성’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애플의 제품은 그 어떠한 장벽, 예를 들어 신체적 장애, 교육 미달, 문화적 차이 등의 방해물을 가진 고객도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게끔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눈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제품을 만드는 게 일반 기업이라면, 이러한 사용 환경의 평등을 만들 수 있는 기술적 개발과 진보는 애플이 그러한 보통의 일반 기업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스티브는 인간이 창의력을 통해 가장 큰 도전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애플을 창립했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신념 하에 말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우리의 사명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우리의 제품은 즐겁고 놀라운 순간을 창출할 뿐 아니라, 지구상 곳곳의 사람들이 자기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까지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도록 에너지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 우리는 스티브가 늘 그랬던 것처럼, 애플의 보다 밝은 미래를 내다보며 우리가 함께 수행해 나갈 위대한 과업을 고대해야 합니다. – 370 페이지

이 책을 읽다 보면, 쿡이 애플 직원 전체에게 보내는 메일 내용의 인용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최고 경영자자의 생각이 직원들에게 얼마나 실시간으로 빠르게 전달되고, 이를 통해 이 거대 조직이 어떻게 이렇게 창의적이고 빠르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쿡은 항상 애플 그 자체인 스티브를 존경하는 자세를 고수하며, 애플의 본질을 흐리지 않으면서 본인만의 경영 철학을 이끌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쿡은 애플과 같은 기능 위주의 조직에서 그 기본을 망각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너무 많은 수의 외부인을 너무 급속히 끌어들인 것이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애플은 1,000명이 넘는 외부 자동차 전문가를 고용해 2~3년 사이에 그 대부분을 정리 해고했다. 애플은 프로젝트가 보다 유기적으로 자라나도록 조처하지 않고 그저 빠르게 성장시켰다. – 378 페이지

쿡과 애플의 실패를 처음으로 짚어주는 부분이다. 애플카를 실현시키고자 ‘프로젝트 타이탄’이 출범하였지만, 너무 성급한 인사정책과 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이는 실패로 돌아갔다.

어떠한 신사업을 시작함에 있어, 조직을 구성하고 그 사업이 흑자 전환이 될 때까지 성숙해지는 기간이 필요함을 배울 수 있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CEO는 자신의 임기 동안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기를 원한다. 다만, 이는 신사업이 필수적인 이 시대의 기업들에게 있어 시대역행적인 사고이다. 특히 현재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자동차와 헬스케어 산업에서 어떠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코자 한다면, 그 인고의 시간을 받아드릴 수 있는 자본과 여유가 필요하다.


나는 2018년 3월 애플파크를 방문했을 때 그 건물이 인상적이긴 했지만 생명력이 느껴지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애플의 대형 소매 매장과 마찬가지로, 건물 자체는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획일화된 목재와 서재가 건물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느낌이었다. 내부를 이루는 모든 것은 사양이 동일했다. 테이블과 의자부터 커피바와 스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똑같았다는 얘기다. 모든 업무 공간도 동일한 구조에 동일한 사무가구가 배치되어 있었다. 거대한 규모로 구현된 ‘균일’이라고나 할까. 별나거나 인간적인 분위기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마디로 콘트리트와 유리로 만든 완벽한 대성당이었다. – 386 페이지

저자의 애플의 신사옥을 방문한 느낌을 서사한다. 우리가 항상 애플 스토어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런 광활한 유리벽과 깔끔하고 둥그스름한 디자인의 구조물과 인공물이 그것이다. 이는 자칫하면 세계 최고의 독창성을 뿜어내야 할 조직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부분이다. 조금 더 다채롭고 인간적인 분위기 조성이 더 애플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픽사로 돌아온 잡스는 건축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직원들의 상호 작용을 막는 장벽이 없는 단일 건물에 대한 계획을 도출했다. 계단도 열린 구조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도록 설계됐다. 이로써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오가며 서로 인사와 대화를 나눌 터였다. 화장실과 회의실, 우편물실과 상영관, 식당 등 공유 공간 대부분을 내부 아트리움에 인접해 중앙부에 위치했다. – 389 페이지

어느 조직이든 ‘의외의 만남과 우연한 대화”에서 가장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그리고 그 의외성과 우연함을 외부 환경의 조작을 통해 발생 가능성을 인위적으로 높일 수 있다. 이것은 바로 공유 공간의 활용이다. 잡스는 이를 간파하고 이러한 통합적 공간 활용을 통해 애플의 창의성과 독창성을 극도로 끌어 올렸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누가 내놓은 어떤 아이디어든 모두 존중합니다. 위대한 아이디어가 경영진이나 간부들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조직도 아래에 묻힌 엔지니어에게서도 위대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습니다. – 405 페이지

대한민국의 오래된 기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C레벨 이상의 사고방식이다. 우리나라 대기업 우두머리들의 경우 항상 말은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정작 의사결정의 시기가 오면 본인들의 안위를 걱정한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사고만을 고집한다. 말한 것을 진짜 지키면 이는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고, 지키지 않으면 그저 작은 나라의 울타리에서 대장 놀이나 하는 침팬치가 된다.


나는 기업이 상업적인 것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기업은 사람들의 집합일 뿐이다. 사람들이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면, 기업 역시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 411 페이지

쿡의 기업 가치관을 한 줄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가치관을 갖는다는 말은, 기업은 자신만의 절대 선에 대한 철학을 기반으로 영리활동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21세기 기업은 단순히 돈만 버는 집단이 아니다. 물론 영리 활동을 기반으로 하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준수하고, 영업 활동 중 발생하는 환경 오염에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다양성을 유지하고 차별을 철폐하며,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 집단이어야 한다.

나는 기업 운영이 하나의 나라를 운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다원적 사고를 통해 구성원 및 세상 사람 모두가 이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이를 재화와 서비스를 통해 구현하며, 이로 발생한 이익을 적절하게 사회에 환원하며 그 최초에 세운 기업 철학을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말이다.




이번 독서는 지금 나의 회사 생활에 대해 많은 고민과 반성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왜 모든 기업이 애플이 될 수 없는지와, CEO의 철학이 기업의 운명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게 되었다. 또한, 이해만 따지고 돈이 최고의 철학이라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세상을 이롭게 만들 수 있는 기업을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팀의 막내로, 말단 직원의 입장에서 상사와 회사를 바라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쿡의 위치에서 애플과 같은 기업을 운영한다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지금 하는 모든 일을 애플스럽게, 또한 쿡스럽게 바라볼 수 있도록 습관화할 것이고, 그 이상의 인물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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