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작성일 : 2024년 12월 28일
나에게 있어 철학은 ‘인생을 더 잘 살아가는 방향성’이다.
여기서 인생과 방향성은 온전히 나에 대한 주관적 단어들이기에,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히 전제된다. 즉,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그런 나에게 있어 가장 합리적이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이 명확하게 정의될 것이고, 그 방법들이 모여 하나의 방향성을 형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대게 외부 환경으로부터 규정된 기준에 맞게 자신을 정의하고 본인을 소개한다. 나 또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자의적인 고민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고 그에 맞게 나를 소개하는 경향이 있다.
불어의 'avant-garde'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전위적이라는 뜻으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새로움을 추구함을 의미한다.
무의식적으로 나를 가두고 있는 garde라는 알을 깨고 나와, 진정으로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할 때이다.
이러한 나 자신의 정의라는 발판이 마련되면, 그 위에 내가 생각하는 철학과 정의를 쌓아 올려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끝없이 했다. 돌 하나가 우물 안에 던져졌고, 그 우물은 나의 젊은 영혼이었다. 그리고 긴, 몹시 긴 시간 동안 카인, 쳐 죽임, 표적은 바로 인식, 회의, 비판에 이르려는 내 시도들의 출발점이었다. – 46 페이지
데미안은 화자에게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뒤집어 설명하여, 관점의 전환을 선사한다. ‘환한 세계’에서만 사고한 싱클레어 입장에서는 기이하면서 한편으로는 경외가 느껴지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싱클레어가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세상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며 비판적 사고를 하여, 최종적으로 알을 깨고 날아갈 수 있게 하는 데미안의 첫 번째 시도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데미안의 얼굴을 보았다. 그가 소년의 얼굴이 아니라 어른의 얼굴을 가졌다는 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보았다. 보았다고 혹은 감지했다고 믿었다. 그것이 남자의 얼굴만은 아니며 또 다른 무엇이라는 것을. 여자 얼굴도 그 안에 조금 들어 있는 듯했다. 특히 그 얼굴은 내게 한순간 남자답거나 어린이답지 않고, 왠지 수천 살은 된 것처럼, 왠지 시간을 초월한 듯 우리가 사는 것과는 다른 시대의 인장이 찍힌 것처럼 보였다. – 70 페이지
싱클레어의 입장에서의 데미안의 얼굴을 감상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데미안에게서 느껴진 내면적 깊이와 강렬한 자아가 외모에 그대로 반영된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가 데미안에게 느꼈던 신선함과 두려움이 잘 녹아져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사람에 대한 생각이 그 사람의 외모에 반영되는 경우는 꽤나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나 또한, 내가 존경하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있어, 비단 그가 뚱뚱하든 코가 낮든, 그 이상의 멋짐과 후광이 보인다. 싱클레어 또한, 나와 같은 느낌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회개하지 않은 도둑이야말로 사나이잖아, 개성 있고 말이야. 그는 개종 따위를 우습게 알았어. 그런 건 그의 처지에서는 그저 듣지 좋은 말이겠지. 그는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갔어. 그리고 자신이 거기까지 가도록 도와준 악마로부터 마지막 순강에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았어. 그는 당당한 개성을 가졌어. 성서 이야기에서는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손해를 보지. 어쩌면 그도 카인의 후예일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 82 페이지
선과 악이라는 사회적, 종교적 기준을 초월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성찰이 우선됨에 있어 생각해봐야 한다는 데미안의 의견이다. 물론 도둑질은 잘못된 것이고 바로잡아야 한다. 다만, 죄를 알고 뉘우친다는 통념적 사고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 대해 더 들여다보고 솔직함을 찾는다는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두 번째 도둑의 행동이 더 자신답다고 말할 수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 112 페이지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절을 하나씩 뜯어서 생각해 보겠다.
새는 개인을 의미하고, 알은 규범과 종교로 볼 수 있다. 결국 통념의 세계이다. 다음 문장의 태어난다는 의미는 나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으로 생각된다. 즉, 나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외부 규범과 종교적 통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브락사스라는 신은 자아성찰을 의미하여, 종교적 선과 악이 없는 균형과 평등의 존재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투쟁하지 않는다. 투쟁은 귀찮고 힘들다. 먹고살기 힘든데 나 자신을 아는 게 무슨 효용이냐며 비꼴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책을 읽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이 투쟁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의 기준에 맞게 살다 보면 그 성취와 행복의 유지 기간이 짧아질 것이고, 이는 허무와 허탈로 이어진다. 따라서 투쟁을 해서 나 자신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나는 아브락사스를 만나 치우침 없이 자유로이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은 오르간이었다. 그런데 연주가 놀라웠다. 극도로 개인적인 의지와 끈질김의 표현이어서 마치 기도처럼 들렸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기서 연주하는 사람은 이 음악에 보물 하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얻듯 이 보물을 얻어 내려고 구하고, 가슴 두근거리고 애쓰고 있다고. 나는 기교면에서는 음악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바로 저런 영혼의 표현은 어린 시절부터 본능력으로 이해했으며 음악적인 것을 내 안의 자명한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 130 페이지
표현의 방식은 다양한다. 가장 일반적인 표현의 방법은 말과 글이다. 그러나 이 방법들은 장황하며 서사가 너무 길다. 따라서 여기서부터는 표현의 마술사, 즉 예술가들의 방식들이 필요하다. 이는 영화, 음악, 미술, 조소 등의 방법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더 직관적이고 표면적으로 보여준다.
싱클레어는 방황 중 피스토리우스의 오르간 음악을 통해 내적 안정을 찾는다. 아무리 사고하고 독서해도 풀리지 않는 심적 불안정감이 음악을 통해 치유받은 것이다. 또는, 본인이 찾지 못한 어떤 명제를 음악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통해 발견했다고 볼 수 있다.
음악이 정말 좋아요. 음악은 별로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도덕적이지요. 저는 도덕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늘 도덕적인 것에 시달렸거든요. 저 자신을 잘 표현할 수가 없네요. 아시죠, 신인 동시에 악마인 신이 틀림없이 있다는 것? 그런 신이 있었다지요.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133 페이지
싱클레어는 본인만의 ‘환한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그게 자아성찰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더 자유롭게 자신을 탐구하고 싶은데, 종교적 의무와 도덕이 그것을 자꾸 막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덜 도덕적이고 심지어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의문도 갖기 시작한다. 여기서 그는 음악은 도덕이라는 잣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임을 깨닫고 이에 깊게 매료된다.
기분 좋았던 것은 나 자신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나 자신의 꿈, 생각, 예감에 대한 신뢰가 커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힘에 대한 앎이 늘어나는 것이었다. – 161 페이지
싱클레어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외부 제약 조건들에서 점점 해방되어, 온전히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게 되면서, 그는 더 큰 힘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연대란…” 데미안이 말했다. “멋진 일이지. 그러나 지금 도처에 만발해 있는 것은 결코 연대가 아니야.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테고, 한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거야.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 패거리 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신사는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는 학자들끼리!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 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 180 페이지
사람들의 모이는 모습에 있어, 각자의 비전을 가지고 세상을 더 선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는 데미안이 말하는 연대이다. 다만, 데미안은 각자의 이기심과 공동의 이득을 위해 모이는 연대는 단순한 패거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연대는,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개인으로 할 수 없는 집단 행위를 통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그 뜻이 올바르고 낡지 않았다면, 이는 건강하 연대라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 완전히 나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그곳에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나의 친구이자 인도자인 그와. – 219 페이지
싱클레어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열쇠를 찾았다는 내용이다. 항상 떠올렸던 꿈과 머릿속 영상들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이게 예전에 비해 쉽고 당연해졌음을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된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평생의 우상이자 선생님, 그리고 인생의 인도자인 데미안과 감히 동일시하며 그 성취와 만족을 나타낸다.
나 또한, 내가 존경하는 선배 혹은 선생님과 동일시될 때 상당히 큰 쾌감을 느꼈고 하루 종일 웃음이 나왔던 경험이 있다. 결국 내 본연의 자아가 닮고자 하는 상이 존재하고, 그 상을 좇아 비슷한 수준과 경지에 올랐을 때, 그때 진정한 내가 되었다고 느낀 것이다.
페이지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데 있어 꽤나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니체 철학과 헤세에 대한 추가적인 공부 후에 이 책을 다시 펴,
싱클레어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데미안을 만나고 보고 싶다.
나의 지적 성숙함은 아직 크로머에게 돈을 뜯기는 유년기의 화자와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에게는 수많은 고전 속 데미안들이 존재하기에, 더 많이 읽고 생각하며,
그들과 완전히 닮아 가는 방법으로 나 자신을 찾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