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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패스트 라이브즈

Celine Song

by 김민규

*작성일 : 2025년 1월 5일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은 크지만, 그 사랑을 성숙하게 전달하고 키워 나가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외부의 여러 환경들 속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해성과 나영이라는 두 인물의 첫사랑을 바탕으로, 이민과 이별이라는 환경적 장벽으로 인해 결국 그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함을 서사한다.


쏟아지는 감정들을 전부 대사화 하진 않지만, 각 인물들의 표정과 걸음걸이 그리고 행동 등을 통해 충분히 그 속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첫사랑

해성과 나영의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다룬다. 초등학생인 그들은 짝꿍이 되어 옆자리에 앉고, 서로 그림을 그려주며 설레는 마을을 키워 나간다. 나영은 집에서 엄마한테 ‘해성과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이민 그리고 이별

나영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된다. 따라서 나영의 어머니는 해성과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어주고자 해성과 해성의 어머니와 약속을 잡는다. 해성과 나영은 그날 신나게 놀고,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차 안에서 잠든다. 그것이 그들의 유년시절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재회_1

12년 후 나영은, 페이스북에서 해성이 자신을 찾는 글을 발견한다. 그리고 해성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안녕, 나 나영이야. 나 기억나?’라고. 해성은 그 메시지를 보고 다음날 바로 회신을 하고, 그들은 헤어진 지 12년 만에 처음으로 화상 통화를 통해 재회하게 된다. 처음 마주하는 순간 기분 좋은 어색함과 내적 감동으로 인해 서로의 얼굴만을 바라보며 말없이 웃고만 있는다.


분리된 일상

해성은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가서 여자친구를 사귄다. 나영은 예술가 레지던스에서 아서라는 작가를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하게 된다. 그들은 결국 각자의 환경에서 그 환경에 적합한 상대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재회_2

그러나 해성은 연애가 끝난 후 뉴욕으로 떠나게 된다. 그녀에 대한 미련이 남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와의 만남을 약속하고 떠나는 듯하다. 뉴욕의 한 공원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그들은 재회하게 된다. 서로를 처음 본 순간, 24년 만에 첫사랑을 본 순간, 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꼭 끌어안는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정이 벅찰까 싶다. 그들은 하루 종일 뉴욕을 누비며 데이트를 한다. 24년 전, 그리고 12년 전 이야기를 하면서.


고통

현재 남편인 아서는 해성과 나영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작가인 그는 그들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지, 특히 나영에게 얼마나 귀중한 기억인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만남을 허락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그 운명적 사랑에 비해, 본인과 나영은 너무나도 평범한 사랑이기에 그에 대한 질투와 허무함을 느낀다. 그런 속내를 나영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나영은 ‘여기가 나의 종착지고, 나는 지금 내 인생을 가장 사랑해’라며 아서를 위로한다.


아서의 나영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존중하는 점에서,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상당히 높은 차원의 존중을 배울 수 있었다. 나라면 절대 못 만나게 했을 텐데, 아서는 그 이상의 어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그런 아서에게 있어 과하지도, 부족하지 않게 그를 위로하는 나영의 태도 또한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충돌

나영은 본인의 집에 해성을 초대하고 여기서 아서를 소개해준다. 그들은 함께 식사하고 바에서 술도 마신다. 아서는 한국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나머지 둘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다. 단지 그들이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기다릴 뿐이다. 나영이 화장실을 간 사이 해성은 아서에게, 우리끼리 너무 이야기했다며 미안함을 전한다. 그리고 너와 나도 ‘인연’의 한 종류임을 말한다.


이 영화의 키워드는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인연은 비단 나영과 해성 사이의 사랑의 인연뿐만 아니라, 나영과 아서, 해성과 여자친구, 해성과 아서 등 그 범위가 상당히 넓다. 영화는 관객에게 있어 우리 삶의 수많은 인연들이 있고, 그 인연들 하나하나가 매우 질기고 팽팽함을 알려주는 듯하다.


마지막 이별

해성은 다시 서울로 떠난다. 나영은 해성이 택시를 잡는 곳으로 마중 나온다. 택시를 기다리며 해성과 나영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과 섭섭함, 그리고 후회감을 느끼며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는다. 와락 껴안을 것 같은 불안한 상태에서 서로에게 빠져들 듯이 말이다. 그 순간 택시가 도착하고, 그들은 다시 현실로 깨어난다. 해성은 택시를 타기 전에, 지금 이 순간도 전생이라면, 다음 생에는 꼭 더 나은 관계로 만나자는 약속을 전한다. 나영은 집으로 돌아가 잘 부여잡고 있던 감정을 쏟아내며 아서 품에서 펑펑 운다. 아서는 그런 그녀를 안아주며 그녀를 집 안으로 인도한다.


택시를 기다리며 둘 간의 관계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의 눈빛, 그리고 점점 서로를 향하는 몸의 방향이 보는 이의 입장에서 상당히 아찔했다. ‘이러다 서로 끌어안고 키스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불안하지만 한편으로 기대되는 마음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마지막으로 펑펑 우는 나영을 안아주는 아서의 마음은 차마 헤아리기가 어렵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이 정도로 차분하게 기다려줄 수 있는지,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성숙하며 배려심 깊은 인물은 아서가 아닐까 싶다.



영화를 보며 내 첫사랑 생각이 났다.


영화처럼 머릿속으로 스쳐간 내 첫사랑의 장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만남 그리고 이별

초등학교 때부터 서로 좋아함을 알고 있었고, 버디버디 메신저를 통해 좋아함을 많이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그 친구가 어디론가 이사를 가면서 중학교 때부터 연락이 끊겨 버렸다.

나는 유년시절 동안 계속 그녀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재회

1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1호선 안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페이스북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녀가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초등학생 때의 그 아름답고 귀여운 모습 그대로 말이다. 나는 귀신에 홀린 듯 그녀에게 친구 신청을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와 연락이 닿았고, 고속버스터미널 8-1 출구에서 7년만에 처음으로 만날 약속을 잡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천사와도 같았다. 회색 카라티에 흰색 반바지, 머리는 세련된 단발이었고 신발은 빨간색 아디다스였다. 오른쪽 어깨에는 청색 에코백을 매고 있었다.


그 재회의 만남은 가히 최악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제대로 된 연애도 해본 적 없는 나에게는 고역 같은 시간이었다. 그녀도 별 말이 없었고, 훗날 본인도 많이 긴장했었다고 했다. 어색한 첫 만남을 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미리 준비한 나비모양의 귀걸이를 그녀에게 선물했다.


허탈하고 아쉬운 마음을 부여잡고 집에 가는 길에 문자가 하나 왔다. 내가 선물한 귀걸이를 한 그녀의 사진이 도착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만남을 시작했고, 6개월간 그 어느 여름보다 뜨거운 연애를 이어 나갔다.


유학 그리고 이별

그러나 그녀는 미국으로 유학을 준비하는 상황이었고, 이를 모르고 연애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결국 출국날이 정해지고, 나는 더 열렬히 그녀와 사랑하며 유학이라는 단어를 애써 잊으려 했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영상편지를 만들어 주며 나를 잊지 말라고, 장거리 연애도 잘 해낼 수 있다고 자부했다. 결국 그녀는 떠났고, 나는 술에 만취되어 매일 데이트하던 잠원 한강공원으로 가 한강을 바라보며 그녀를 생각하며 펑펑 울었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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