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5일 공연 / 블루스퀘어
*작성일 : 2025년 1월 5일
지킬로 시작해 하이드로 끝나버렸다.
제목에 맞게, 지킬과 하이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뮤지컬이었으며, 가장 대립되는 두 인물을 마치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것 마냥 해낸다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나도 학부 시절 뮤지컬 동아리에서 배우 역할을 하며, 극 중 인물에 최대한 몰입하고 닮아가려 노력해 본 입장으로서, 극명하게 갈리는 두 인물을 이렇게 잘 표현한다는 것에 다시 한번 내적 찬사를 보낸다.
선과 악의 구분
지킬은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정신을 둘로 분리시키는 실험을 진행하고자 한다. 그러나 병원 이사회의 반대로 그 시험 대상자를 구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시험 대상자로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결혼 그리고 갈등
지킬은 엠마와 결혼을 약속하지만, 본인의 연구와 사명으로 인해 그녀와 많은 갈등을 빚는다. 그러나 온화한 엠마는 그의 내면을 달래고 위로하며 최대한 그의 곁으로 다가가려 한다. 내면적 갈등 중 지킬은 술집에서 루시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서 뜻밖의 위로를 받고 그녀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넨다. 결국 지킬은 루시에게서 또 다른 사랑을 느낀 것이다.
This is the moment ♬
결국 지킬은 자신이 고민하던 그 실험을 시행하고자 결심한다. 자신의 사명이자 소명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의 내면의 악마 ‘하이드’를 소환한다.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하이드는 계속적으로 그 영향력을 키워 나가며 지킬의 삶을 점점 황폐하게 만든다.
이 넘버는 가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컬 노래라고 칭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첫 소절부터 소름이 돋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홍광호 특유의 안정적이면서 묵직한 발성은 듣는 이에게 있어 S클래스를 탄 듯한 승차감을 전해주는 듯했다.
이 장면에서는 연출 또한 빛났다. 조명은 무대를 비추는 것이 일반적이나, 클라이맥스에서는 무대 안쪽에서 관객석 쪽으로 조명을 비춰 극 중 인물의 소명을 더욱 숭고하고 만드는 효과를 주었다. 이외의 다른 무대 연출은 없었지만, 홍광호 자체의 손짓과 동선, 그리고 웅장하지만 감미로운 발성이 블루스퀘어 전체를 가득 채웠다. 기립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하이드의 횡포
하이드는 점점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어, 그가 위선자라고 생각하는 모든 지식인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사회가 만든 법과 규범을 모두 무시한 채,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폭행한다.
이 극의 핵심은 관객들에게 있어, 같은 인물이 연기하는 지킬과 하이드가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느끼게 해야 한다. 이는 조명을 통해 1차적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지킬 박사는 하얀색 환한 조명을, 하이드는 파란색 어두운 조명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 이외의 차이는 모두 배우 자체의 역량을 통해 드러낼 수밖에 없다. 홍광호는 몸의 자세, 발성의 방법 그리고 표정과 행동을 통해 그 구분을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Confrontation ♬
드디어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직접 대립하는 장면이다. 이 넘버가 2막의 핵심이자 클라이맥스라고 볼 수 있다. 몸의 오른쪽은 단정한 머리와 온화한 손짓의 지킬이며, 이를 하얀 조명이 비춘다. 반대로 몸의 왼쪽은 헝클어진 긴 머리의 난폭한 손짓의 하이드이며, 파란색 조명이 그를 비춘다. 노래가 매우 어렵고 길며, 그 소절마다 지킬과 하이드가 순간적으로 바뀐다. 한 소절 한 소절 노래가 진행되는 동안 목소리, 손짓, 표정 모두 지킬과 하이드가 초단위로 바뀌어 가며 등장한다.
어렵다. 매우 어렵고 한번 박자 혹은 멜로디를 놓치면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배우 한 명의 역량과 노력으로 인해 이 노래는 극장 안 모든 사람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나 또한 너무 몰입한 나머지 마치 녹화된 영화 혹은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단하다.
죽음
결국 지킬은 자신이 더 이상 하이드를 통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주변인들에게 도망을,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죽이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그는 엠마와 결혼하는 그날, 하이드의 모습으로 죽임을 당하며 극은 마무리된다.
2015년 대학교 뮤지컬 동아리에 처음 들어가, 배우라는 직업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을 느껴보려 애썼고, 그 감정을 어떻게 해야 보는 이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참으로 많이 고민했었다. 그리고 그런 연기를 하는 동안에 노래도 해야 하고, 표정도 지어야 하며,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동선에 맞게 몸을 움직여야 했다.
노래를 신경 쓰면 손이 떨리고 있고, 동선을 생각하면 표정이 일그러졌다. 수없이 많이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직접 찍어 분석하고, 많은 이들에게 피드백을 요청했다. 결국 노천극장에 혼자 누워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좌절했던 기억도 있다.
무대 마지막날 커튼콜 하던 순간은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고 소름이 돋는다. 내 이름이 스크린에 걸리고 나는 많은 박수갈채 속에 자신감 있게 걸어 나와 준비한 포즈로 객석을 향해 인사한다. 관객들과 같이 연기한 배우들 그리고 스텝 친구들 모두 기립하여 나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내 학부 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이다.
뮤지컬을 보면 나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떠올라 기분이 좋다. 당시 그 어느 순간보다 깊게 고민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를 때마다 열렬히 그 추억을 맞이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