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더스 헉슬리
*작성일 : 2025년 2월 4일
인간이란 무엇인가?
태어나기 전부터 발생의 목적과 일생의 수행 계획이 정해져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인간의 탄생이라 할 수 있는가?
태어난 후에도 정해진 방식으로만 사고하고 일하며,
무의식적으로 체득된 본능에 따라 쾌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인가?
온전히 나만의 개성과 자유 의지가 없이, 결핍과 고민도 없이,
고통과 슬픔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해도 상관없는가?
헉슬리가 만들어 놓은 이 비인간적인 세계에서,
진정으로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포드 기원 632년이라는 이 안정의 시대에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것을 질문할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 9 페이지
이곳 런던시에서는 포드의 탄생일을 기준으로 날짜를 센다. 포드가 곧 신인 것이다. 포드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경영학 내 생산과 운영관리라는 과목에서는 포드를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설명한다. 이 생산 방식의 장점은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있다. 결국 이 세상은, 가장 훌륭한 생산물인 인간을 디트로이트 공장에서 찍어내는 자동차로 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문명의 이기를 상징하는 것들을 잘 조합해 이상적인 세상을 재창조한다. 유전학, 물리학, 역사학, 경영학, 철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개념들을 잘 조합하였기에, 소설을 읽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글쓴이가 상당히 박식하고 똑똑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여성 태아의 삼십 퍼센트는 정상적으로 발육시킵니다. 나머지에게는 남은 코스의 이십사 미터마다 남성 호르몬을 투입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불임녀로 양육됩니다. 체격은 전혀 이상이 없으며 다만…” – 23 페이지
상당히 비인간적인 행위이다. 여성을 불임으로 만들기 위해 태어나기도 전부터 남성 호르몬을 주입하다니. 임심과 출산의 자유는 여성의 고유 권리인데, 이에 대하 선택의 기회도 없이 그것을 빼앗아 가는 것은 분명한 인권 침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것 또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왜냐하면 출산의 주체는 계획적 유리병이지 여성의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는 아버지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비참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하여 가학성 생광에서부터 동정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도착증으로 충만해 있었다. 세상은 형제, 자매, 삼촌, 숙모 등으로 충만했다. 그리하여 광증과 자살로 충만했다. – 62 페이지
지금의 가족과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주체를 모두 부정하는 대목이다. 현대 사회의 병폐가 모두 가족적 특성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개념을 분쇄하고, 그 정반대의 세상이 이데아라는 것을 계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사람에게 공통된 것은 자신들이 단독의 개인이라는 자각이었다. 그러나 육체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는 버나드의 고독은 여태까지의 생활을 통하여 사뭇 지속적으로 그를 괴롭혀 온 것이지만, 헬름홀츠 왓슨이 자신과 자기 주위를 에워싼 사람들과의 차이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었다. – 103 페이지
버나드와 헬름홀츠는 닮은 면이 있다. 바로 런던시에서 유일하게 결핍과 불행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완벽한 사회에 완전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이들이 가장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이 느끼는 불충분이라는 상태는, 모든 인간이 가장 보편적이면서 일상적으로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나대로 있고 싶습니다. 울적한 나대로가 좋습니다. 아무리 즐거울지라도 타인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 135 페이지
모든 사람이 쌍둥이와 같고 사고와 행동이 복제된 이 도시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다. 울적함은 전혀 필요 없는 감정인데, 그것을 자처해서 느끼겠다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보면 다소 가학적이라고 까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버나드의 행동을 통해 인간성의 상실을 비판하고, 인간 본연의 가치와 개성의 상실을 꼬집어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자동차가 아니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는 두 젊은 여자들을 보았을 때 레니나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이제껏 그렇게 상스러운 장면에 접해 본 적이 없었다. – 169 페이지
풍자가 끝도 없이 쏟아진다. 인간 역사 중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질 수 있는 장면을 상스럽고 역겹다고 표현하며, 이 대단한 신세계가 얼마나 인간 존엄성을 상실했는지 간접적으로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오오, 멋진 신세계여! 그러한 인간들을 담고 있는 멋진 신세계여! 즉시 떠납시다!” 하고 존이 거듭 말했다. – 216 페이지
야만인 존은 런던시를 ‘멋진 신세계’라고 표현한다. 인간적인 불행과 결핍 그리고 고통이 없는 세상, 그곳은 너무나도 멋지고 새롭다고 여기는 것이다. 책 제목 자체가 풍자이며 반어적이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이, 인간성과 자유의지를 상실한 망한 세상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제가 린다에요. 제가 린다에요.” 폭소로 인해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당신이 나에게 아이를 임신시켰어요.” – 232 페이지
왠지 영화 과속스캔들이 생각나는 장면이었다. 야만스러운 린다의 실토로 인해 소장은 런던시에서 줄행랑을 친다. 버나드가 린다를 만났을 때부터 린다와 소장의 관계를 암시하는 복선들이 많아,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대목이었다.
야만인은 놀랐다. 그의 입술에 느껴지는 그 감촉! 그는 손으로 입술을 막았다. 그러자 간지러운 감촉이 멎었다. 그는 다시 입술로부터 손을 금속 손잡이로 가져갔다. 그러자 그 감촉이 다시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방향 오르간이 순수한 시향 냄새를 뿜어냈다. 녹음된 슈퍼 비둘기의 울음소리가 잦아지는 듯이 “구구”하는 소리로 울어댔다. 그러자 1초마다 겨우 32번 진동하는 저음이 아프리카인의 저음보다 더 깊게 응답했다. – 248 페이지
미래에 정말 있을 법한 영화관이다. 현재 4D 극장에 가면, 옛날 사람들을 상상도 못 할 엔터테인먼트가 준비되어 있다. 온 사방에서 소리가 휘감겨 나오고, 의자는 장면에 맞게 알아서 흔들린다. 마법의 안경을 쓰면 화면 속 눈사람이 내 코앞까지 튀어나오고, 그 눈사람이 재채기를 하면 내 얼굴에 맑은 물이 튀긴다. 방금 내가 가져온 지금의 영화관을 100년 전에 설명했다면, 모두 나를 미친 사람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상층계급 사이에서 확고한 사상을 지니지 못한 자들이 받은 조건반사 교육을 백지로 돌릴 가능성이 있는 사랑이다. 지고의 선으로서의 행복에 대한 그들의 신념을 상실케 하고 그 대신 인간의 최종목적이 어느 피안에 있다고 믿게 할 위험이 있는 사상이다. 최종목적이란 현재의 인간 영역 밖에 있으며 인생의 목적이란 행복의 유지가 아니라 의식의 강화와 세련이며 지식의 확대라는 믿음을 심어 줄 위험이 있는 사상이다. – 273 페이지
이곳 런던에서는 인류의 자의식을 일깨워 세뇌에서 벗어나게 하는 책은 모두 금서로 지정하여 태워버린다. 사실 이러한 통제는 역사적으로 매우 비일비재했다.
중세 암흑기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책은 지배자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왜냐하면 평민들이 책을 읽고 자율 의지에 따라 생각하는 힘이 생긴다면, 결핍과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답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로 인해 수많은 책이 일반 대중에 전파되며, 그들의 절대권력은 무너졌다.
글의 힘은 실로 대단한다. 말은 파동이 멈추는 순간 증발해 버리지만, 글은 계속적으로 남아있어 무한 복제된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상태에서는, 나이지리아에서 쓴 한 문장이 전 세계로 퍼지는데 1초도 안 걸린다. 그만큼 독재와 세뇌가 어려워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밖의 별실에서는 야만인이 마술적인 언어가 빚는 북소리와 음악소리에 맞춰 방 안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 301 페이지
환락과 쾌락에 저항하는 존의 모습을 자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당히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너무나도 달콤하고 육감적인 유혹 앞에서, 존의 믿음과 신념 그리고 동물과 유일하게 다른 점인 절재라는 감정을 보여주며, 사실은 그가 지성인이고, 레니나가 야만인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야만인은 일순간 얼어붙은 듯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침대 곁에 무릎을 꿇더니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억제할 수 없는 오열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 318 페이지
이 책에서 가장 인간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사실 어머니의 죽음 앞에 울고 있는 아들의 모습은 가장 보편적인 예술적 소재이다. 따라서 드라마나 영화에 이런 장면이 등장하면 너무나도 당연하기에, 특별한 사연이 없는 이상 딱히 눈물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300 페이지가 넘게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니,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오랫동안 갈망하고 그리워하던 고향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인간적 감성도 많이 지쳐 있었던 것 같다.
“자유! 자유!” 야만인은 외치며 한 손으로 계속 소마를 밖으로 내던지고 다른 손으로 공격해 오는 군중의 얼굴을 후려갈기고 있었다. 그게 그의 얼굴이었다. – 330 페이지
여기서 소마는 현실의 모든 고통과 고민을 없애 주는 치료제이다. 이 알약 하나면 모든 계급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진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질투하고, 잘하고 싶고, 성취하는 즐거움은 없다. 단지 고통 없이 반복적인 일을 하고, 마지막에 소마를 받는 먹을 뿐이다.
나는 우리나라 독재 정권의 3S 정책이 떠올랐다. 이는 일반 대중의 결핍과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식을 잠재우고, 그들의 주목과 집중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다. 여기서의 소마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본다. 소수가 지배하는 세상, 그 속의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마약과 같은 소마를 만들어 대중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마에 종속되지 않은 존 만이 이 비인간적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에 저항하게 된다.
“하지만 저 친구에게 조금이나마 지각이 있다면 그에게 내리는 벌은 실상 보상이라는 것을 깨달을 텐데. 그는 어떤 섬으로 전출될 것이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남녀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가게 되는 거야. 어떤 이유로 지나치게 자아의식이 강해서 공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있는 곳이야. 정통에 만족하지 않고 나름대로 독특한 사상을 가진 인간들이지. 한마디로 말해서 지나치게 인간다운 인간들이야.” – 351 페이지
여기서 총통이 설명한 섬은 우리가 아는 자유 의지의 인간들이 사는 지극히 인간적인 곳이다.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과 개성을 표출하고, 결핍으로 인해 고통받기도 한다. 자기의 신념을 키우고 그 신념을 전파하며 타인과 교류하기도 한다.
총통의 이러한 설명은 결국 완벽한 유토피아인 런던시가 진정한 디스토피아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 주관도 의지도 없이 만들어진 시스템의 하나의 부품으로 살아가는 인생, 그게 행복하고 세뇌되고 만일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면 바로 소마 처방으로 다시 갓난아이로 돌아가는 인생, 그게 바로 그들이 그렇게도 바라는 유토피아라는 것을 말이다.
“물건의 가치는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에 의해서뿐 아니라 그 자체가 귀한 것일 때 가치와 권위가 붙는 것입니다. “ – 366 페이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설명이다. 물건은 그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며, 용도와 성능에 따라 가치가 부여된다. 그러나 인간은 물건이 아니다. 어떤 성능과 사용 목적이 정해져 계획에 맞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태어날 뿐이고, 자신의 자율 의지를 통해 그 가치를 키워 나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무슨 생산 스케줄에 맞게 정해진 재고처럼 만들어지는 자동차 부품이 아니란 말이다.
한 편의 완벽한 공상과학영화를 본 느낌이다.
현대의 기업과 개인들은 서로가 앞다투어 더 멋진 기계를 만들고, 새로운 시스템을 선보인다.
그러나 그 빠른 속도로 인해, 미처 인간성을 놓치고 있지 않나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무감정의 스미스 요원이 기계 위에 누워 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