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책 리뷰] 채식주의자

한강

by 김민규

*작성일 : 2025년 2월 2일


하나의 객관적 현상을 보며,

이와 관련된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과 배경에 맞게 이를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한다.


이전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같이,

이 작품 또한 한 가정의 비극적 일화들을 바탕으로,

그와 관련된 세 사람의 시각에서 이 일들을 받아들이고, 각자 만의 최선으로 이를 이해하려 한다.


각 인물들의 생각과 그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들이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세 편의 읽은 내내 그 당사자가 되어 벌어지는 현상을 바라보며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무서웠어.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한 사이 나무 뒤에 웅크려 숨었어.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었어.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 20 페이지

영혜가 채식을 결정한 결정적인 이유는 ‘꿈’에 있다. 영혜의 꿈의 내용이 상당히 자극적이며 적나라해서 이 부분을 읽는 내내 미세한 메스꺼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다만 영혜의 이 갑작스러운 결정은 절대 충동적인 것이 아니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채식을 선언하는 이유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내는 약간 달라붙는 검은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는데, 두 개의 젖꼭지가 분명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녀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을 살피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전무 부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태연을 가장한 그녀의 눈이 호기심과 아연함, 약간의 주저가 어린 경멸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나는 알아보았다. – 33 페이지

내가 화자 입장이었더라도 충분히 당황스럽고, 한편으로 아내가 원망스러웠을 것 같다. 이러한 난처한 상황을 미연에 예방할 수는 없었을까? 이상 증세가 발견된 이후, 상대를 공감하려 하고 대화하며 그녀의 불편하고 어려운 부분들을 같이 해결해 볼 수는 없었을까? 나였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면 나는 어떻게 헤쳐 나갈까? 너무나도 현실적인 상황이어서 그런지, 여러 질문들이 나 자신에게 쏟아지는 대목이었다.


“얼마 전에 오십만년 전 인간의 미라가 발견됐죠? 거기에도 수렵의 흔적이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육식은 본능이에요. 채식이란 본능을 거스르는 거죠.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 35 페이지

채식을 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하고 무례한 말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이 어떤 이유로, 어떤 생각으로 채식을 결심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기만의 알량한 배경지식만을 가지고 타인과 그 문화를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경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의도한 바 대로 느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대목은 상당히 어렵게 읽어 냈다.


아내의 손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흰 접시 위로 붉은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무릎을 접고 주저앉은 아내에게서 칼을 뺏은 것은, 그때까지 줄곧 방관하고 앉아 있던 동서였다. – 61 페이지

영혜의 침묵과 조용한 분노가 처음으로 폭발하는 순간이다. 항상 말이 없고 순종적이며 수동적인 그녀의 이러한 과격한 행동은 상당히 충격적이며 한편으로 쾌감도 느껴진다.


그녀는 포크 대신 손으로 배 한 조각을 집어 베어 물었다. 생각에 잠긴 그녀의 조용한 어깨를 껴안고 싶은 충동을, 달고 끈끈한 배즙이 묻은 그녀의 집게손가락을 빨고, 입술과 혀의 마지막 단 즙까지 핥아내고 싶은, 헐렁한 트레이닝복 바지를 힘껏 끌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두려워하며 그는 고개를 돌렸다. – 111 페이지

영혜의 형부 입장에서의 ‘몽고반점’이라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이 형부가 영혜에게 갖는 감정이 어떤 원천에 기인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떠한 예술적 영감에 대한 갈증인지, 본인의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복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잘은 이해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그제야 그는 처음 그녀가 시트 위에 엎드렸을 때 그를 충격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모든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것이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라는 모순, 그 모순에서 배어 나오는 기이한 덧없음, 단지 덧없음이 아닌, 힘이 있는 덧없음. 넓은 창으로 모래알처럼 부서져내리는 햇빛과, 눈에 보이지 않으나 역시 모래알처럼 끊임없이 부서져 내리고 있는 육체의 아름다움… - 124 페이지

모순 투성이다. 일단 형부가 처제에게 어떤 성적 욕망을 품는 것부터가 모순이다. 젊은 여자의 몸이지만 성적인 매력이 돋보이지 않는 육체도 모순이다. 그리고 덧없음이라는 말에 힘이 있다는 것도 모순이다.


인물들의 배경과 맥락을 통해 이 모순들을 풀어나가보려 했다. 영혜와 형부의 인생 모두 어둡고 지겨웠으며, 맞춰진 규칙에 갇혀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던 같다. 형부는 이를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해소하고자 했던 것이고, 영혜는 몸에 그려진 꽃들을 통해 현생에서 억압받아 피어나지 못한 자신의 자아를 표출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됐어요. 정말 됐어요. 더 추해지기 전에 그만해요. 충분히 영감이 됐어요. 포르노 배우들이 뭘 느낄지 진심으로 알겠어요. 정말 비참하군요.” – 155 페이지

작업 동료 J의 발언이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 모든 사회적, 문화적 규범과 규칙들을 초월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비판이 생겼다. 그것이 예술적이라는 이유로 강간하고 외설적 행위를 강요하고, 그렇다면 사람까지 죽을 수 있는 것인가? 이 대목은 그 정도까지의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J와 이를 읽어내는 나는, 이 순간이 조금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은 남편의 우울한 태도와는 전혀 닮은 데가 없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동일하게 그녀를 좌절하게 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 다 비슷하게 말수가 적어서였을까. – 190 페이지

영혜와 남편의 공통의 특징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일이 벌어진 이후에 그 일을 되새기며 방지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혹은 미리 그러한 낌새를 알아챌 수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하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영혜의 언니의 시각에서의 ‘나무 불꽃’이 시작된다. 내가 느끼기에 지금의 화자의 생각과 사고방식이 나와 가장 잘 맞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대인관계 스킬이 몸에 배어 있는, 경제관념과 가족을 지키려는 책임감 등에 있어, 작중 인물 중 가장 세련된 페르소나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녀가 간절히 쉬게 해주고 싶었던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열아홉 살에 집을 떠난 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서울생활을 헤쳐 나온 자신의 뒷모습을, 지친 그를 통해 그저 비춰보았던 것뿐 아닐까. – 193 페이지

화자의 살아온 나날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쩌면 등장인물 중 가장 치열하고 힘들게 살아온 사람이 아닐까 싶다. 강한 책임의식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큰 연민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억누르고 어떻게든 외부에 자기를 끼워 맞춰 살아가려 하는 그녀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녀는 고래고래 악쓰는 여자의 화려한 꽃무늬 모자를 바라다본다. 이제는 저쯤의 미친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을 문뜩 깨닫는다. 병원에 자주 드나들게 된 뒤, 그녀에게는 가끔 정상적인 인갈들로 가득 찬 평온한 거리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 207 페이지

영혜의 정신병원 생활을 뒷바라지하는 언니의 힘든 생활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상적인 인간들로 가득 찬 평온한 거리가 오히려 낯설다’는 보여주기 식 표현은, ‘그녀는 너무나 힘들고 지쳐가고 있었다’는 단순한 설명보다 100배는 강한 인상을 준다.


서쪽 복도의 저 자리에서 물구나무서 있는 기괴한 여환자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녀는 설마 영혜이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 213 페이지

영혜의 채식 선언에 대한 최종적인 목표는 나무가 되는 것이었다. 나무는 육식을 하지 않는다. 아니, 물과 햇빛 말고는 그 어떠한 섭취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수분을 제외한 모든 식사를 거부하고, 틈만 나면 옷을 벗고 햇빛에서 일광욕을 한다. 결국 진짜 나무의 모습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거꾸로 세우고, 땅에 닿아 있는 손과 머리는 뿌리를, 활짝 벌린 두 다리는 줄기와 가지를 그리고 사타구니부터 피어나는 꽃들을 상상하며 자신의 염원을 완성시킨다.


시간이 훌쩍 흐른 뒤에야 그녀는 그때의 영혜를 이해했다. 아버지의 손찌검은 유독 영혜를 향한 것이었다. 영호야 맞은 만큼 동네 아이들을 패주고 다니는 녀석이었으니 괴로움이 덜했을 것이고, 그녀 자신은 지친 어머니 대신 술국을 끓여주는 맏딸이었으니 아버지도 알게 모르게 그녀에게만은 조심스러워했다. 온순하나 고지식해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던 영혜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고, 다만 그 모든 것을 뼛속까지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안다. 그때 맏딸로서 실천했던 자신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비겁함이었다는 것을. 다만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 231 페이지

영혜와 언니의 유년시절의 기억이 서사된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이를 대하는 두 딸의 대응 방식은 완연하게 대비된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언니는 우회 혹은 회피의 방식으로 이겨냈으며, 영혜는 온전히 그 고통을 감내했다. 확실한 점은, 이로 인해 둘 다 비슷한 크기의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영혜와 같이 표면적으로 나타나거나, 언니처럼 속을 파먹고 있을 뿐이다.




책을 덮은 후 왠지 모르게 한 노래의 구절이 떠올랐다.


난 저기 숲이 돼볼게
너는 자그맣기만 한 언덕 위를
오르며 날 바라볼래
나의 작은 마음 한구석이어도 돼

길을 터 보일게 나를 베어도 돼
날 지나치지 마 날 보아줘
나는 널 들을게 이젠 말해도 돼
날 보며

- 최유리의 ‘숲’ 中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책 리뷰]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