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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공간은 경험이다

이승윤

by 김민규

*작성일 : 2025년 2월 7일


나는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하거나 중간에 시간이 남을 때,

항상 주변의 ‘무인양품(MUJI)’ 매장을 찾는다.

이는 무인양품 매장에서 경험한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 때문이다.


매장에 들어선 순간 잔잔한 음악이 나를 반겨주고, 은은한 향기는 편안함을 선사한다.

또한,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한 느낌의 제품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심지어 침대나 소파에 오랜 시간 앉아 있어도 그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이렇게 무지라는 공간에 대한 편안한 경험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무지 제품들이 내 방에 무지 많아지고 있다.




미래의 자동차 회사는 이동수단을 팔기 위해 골몰할 것이 아니라, 자동차라 불리는 공간에서 특별한 경험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기술 기업을 넘어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 11 페이지

곧 자동차의 완전자율주행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자동차를 직접 운전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만큼 시간이 남는다. 자동차 회사는 그 남는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 자동차라는 작은 공간에서 고객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와 제휴해 고객에게 멋진 경험을 만들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차 안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을 할까? 혹은 이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은 어떨까? 재미있는 상상이지만 현재 자동차 업계의 UX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생활하던 5년 동안, 나는 약속을 잡을 때면 “일단 애플스토어에서 만나자”고 하곤 했다. 실제로 북미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심심하면 애플스토어에서 시간을 보낸다. 왜 사람들은 애플스토어를 ‘만남의 광장’처럼 사용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편하게 즐기면서 친구를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 33 페이지

나의 무지 매장이 저자는 애플스토어인 것 같다. 우리나라 애플스토어 1호점인 가로수길 지점은 처음 방문하면 적잖게 당황스럽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굉장히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는데, 그중 절반은 점원이고 나머지 절반은 고객이다. 그러나 그들은 점원과 고객이 아닌, 단순히 애플을 좋아하는 마니아끼리 수다를 떠는 느낌이다. 심지어 매장 안쪽에는 코딩과 프로그래밍 수업을 하고 있다.


고객은 이 공간에서 애플의 여러 제품들을 사용하며 즐겁게 논다. 논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여기서 겪은 경험들은 애플의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줄뿐더러, 그 경험 속에는 아이폰과 맥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백화점이나 면세점을 지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바로 매장 밖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특히 구찌와 같은 명품 매장들은 일정 숫자의 고객들만 매장으로 들여보내고, 나머지 고객은 외부에서 기다리게 한다. – 40 페이지

어디를 가든 에르메스 매장의 줄이 가장 길다. 그러나 매장 안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한산하다. 명품을 좋아하지 않는 내 입장에서는 ‘저렇게까지 줄을 서면서 사고 싶나?’라고 생각도 했지만, 이는 한산한 매장 안에서 VIP 느낌으로 쇼핑을 경험하지 못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결국 에르메스는 매장의 혼잡도를 줄여, 매장 내에서의 고객 경험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이제 기업은 제품을 만들 때 기능과 편익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2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소비자들은 필요가 아니라 재미를 위해 지갑을 연다. 서비스나 제품을 통해 재미와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만 돈이 아깝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 67 페이지

전 직장이 성수동에 있어서 당시 그 근처를 자주 돌아다니곤 했다. 성수동은 젊은 친구들의 성지로 주말에는 유독 많은 사람들로 인해 정신이 없다. 여기서 신기한 점은, 많은 가게들이 고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기발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는 젊은 친구들에게 재미와 행복을 느끼게끔 한다는 이유가 숨어 있었던 것 같다.


야외 정원, 바, 스토어까지. 트렁크 호텔은 이 공간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바로 지역민과 투숙객의 소셜라이징, ‘이 지역에 있는 누구나 편하게 들러 교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1층에 리셉션 데스크 대신 트렁크 바가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 97 페이지

공간 자체를 친근하게, 그리고 머물고 싶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꼭 그 안에서 어떠한 소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곳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이 대목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가 아닌, 긍정적인 경험을 판매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점점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신주쿠역에서 뉴우먼으로 통하는 슬라이드 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평화로운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고급 스피커를 슬라이드 문 양 옆에 설치해 새소리, 물소리 등 심신을 평화롭게 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도록 한 것이다. 급하게 걸음을 옮기던 사람들도, 슬라이드 문을 열면 마법의 성에 들어온 듯 편안하게 쇼핑할 수 있는 기분에 젖도록 하려는 청각 경험 전략이다. – 119 페이지

오프라인 공간의 가장 큰 강점은 고객의 감각을 직접적으로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각과 청각은 온라인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단순한 디스플레이 평면을 보는 것과 실물을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환경에서는 만져보고, 맡아보며 더 입체적인 경험들을 할 수 있다. 직접적인 구매와 결제는 온라인을 통해 하더라도, 그 구매까지의 의사결정에는 오프라인 경험들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후각을 이용한 공간 전략도 다양해지고 있다. ‘서점은 책만 사는 곳’이란 고정관념을 없애 엄청난 매출을 낸 일본의 츠타야 서점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들어섰을 때 가장 잘 보이는 공간을 스타벅스가 차지하고 있다. 서점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편안하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살펴보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 123 페이지

공감이 되는 대목이다. 나 또한 다른 서점보다 용산 아이파크몰의 영풍문고를 좋아한다. 이유는 중간에 있는 할리스커피 때문이다. 비록 음료를 사야 해당 좌석을 앉을 수 있지만, 커피를 마시며 그곳의 수많은 책들을 여유 있게 볼 수 있다. 결국 최소 한 권 이상은 사서 나오게 된다. 영풍에서의 긍정적인 경험은 계속 그 공간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항상 커피를 마시고 책을 산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지불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 있을 때는 항상 편안하고 행복하고 느끼기 때문이다.


홈 스토어와 아파트먼트 스토어는 공간 경험을 통해 야에카의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곳의 제품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본질이 잘 드러나도록, 동시에 제품이 놓인 공간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 154 페이지

기업은 오프라인 공간을 활용하여 브랜드의 콘셉트와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 매장의 위치, 제품의 진열 방식, 내부 가구와 서비스 방식 등에 따라 고객이 인식하는 브랜드의 이미지는 완전히 달라진다. 따라서 마케터는,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기업의 브랜드가 무엇이지를 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공간으로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반짝거리고 예쁜 공간이 아니다. 우리의 브랜드가 통째로 녹아 있는 그런 공간을 말이다.


렉서스 히비야는 ‘렉서스가 사람이라면 아마 이럴 것이다’를 이야기하는 데 주력했다. 이를 브랜드 의인화 작업이라 하는데, ‘이 사람(브랜드)은 나와 비슷하다’, ‘이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은 나에게 어울린다’는 호감을 이끌 수 있다. 자주성가한 사람들이 벤츠보다 BMW를 선호하는 것처럼, 소비자는 자신과 성향이 유사한 브랜드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 161 페이지

이전 리뷰에 브랜드는 사람과 같다고 쓴 적이 있다. 그만큼 브랜드 콘셉트를 잡을 때, 의인화가 효과적이다. 우리 고객들의 연령대, 소득 수준, 소비심리 등을 잘 파악하고, 그러한 사람들이 꿈꾸는 인물이 그려질 수 있도록 의인화해보면 좋을 듯하다. 내가 예전에 볼보 자동차를 선택한 이유도, 내가 자동차가 된다면 포르쉐나 벤츠보다는 볼보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볼보의 무난하고, 착하고, 안정적인 아이덴티티가 나와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제품에 초점을 맞춘 공간에서는 팔기 위해 보여주는 경험만 하게 될 뿐이다. 이제는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가 전하고 싶은 브랜드 콘셉트와 차별화 포인트를 고민하고, 소비자에게 체험을 통해 전달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해야 한다. – 169 페이지

뉴발란스의 콘셉트는 ‘건강한 삶’이지 ‘운동화 많이 팔기’가 아니다. 따라서 뉴발란스 하라주쿠점에서는 제품 진열을 최소화하고, 그 안에 식당을 만들어 건강식을 판매한다. 고객 경험을 통해 기업의 콘셉트를 전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예시이다.


소비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중 한쪽 채널만 이용하지 않는다. 오프라인 숍에서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쇼핑을 하고, 온라인에 익숙해져 있으면서도 오프라인 숍을 찾아가 경험을 만끽한다. 한쪽만 잘해서는 소비자의 속도에 맞출 수 없다는 뜻이다. – 183 페이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 보완적이라는 것이다. 각자의 장점과 한계가 분명하기에, 이를 조화시켜 고객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 온라인에서 실현하지 못하는 부분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한계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해결하며 고객의 구매 경험을 다채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 시대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경험을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잠재고객의 손에는 스마트폰에서도 최적의 고객경험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스타벅스 또한 온라인상에서 어떻게 고객 경험을 선사할 것인가를 생각했고, 그 결과물이 모바일 주문결제 서비스인 ‘사이렌 오더(Siren Order)’다. – 201 페이지

생일 시즌이 되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선물이 스타벅스 기프티콘이다. 이를 사용하기 위해 스타벅스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기프티콘을 등록하고, 내 인생 최초로 사이렌 오더라는 것을 해보았다. 가히 신세계라고 할 수 있다. 주문을 하고 일을 보거나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내 커피가 나왔다는 알람이 온다. 그 인기 있는 스타벅스를 줄 서지 않고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온라인 구매 경험을 통해 스타벅스의 이미지가 좋아졌고, 자연스럽게 사이렌 오더를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나는 긍정적인 온라인 경험의 성공 사례이다.


아마존 고는 ‘물건을 사려면 무거운 카트를 끌고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오프라인 매장의 단점을 제거하고 온라인 매장의 장점을 이식하면서, 고객에게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구매하지만 쇼핑하는 방식의 편리함은 온라인과 같다. – 217 페이지

마치 도둑질을 하듯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나와서 집으로 가면 끝나는 쇼핑, 이게 가능한 세상이 왔다는 것이 실로 믿기지가 않는다. 오프라인의 실제성과 감각을 살리되, 온라인의 편리성이 결합된 완성된 쇼핑의 형태인 것이다. 여기엔 고도의 기술과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인사이트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울 뿐이다.




기업은 더 이상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조직이 아니다.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명확하게 존재하고, 이에 대한 경험을 판매하는 것이다.

그때 그 경험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한 제품과 서비스가 수반될 뿐이다.


커피숍에서 바리스타 강의를 하거나, 나이키에서 나이트 런을 주최하는 이유도 모두,

좋은 경험을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함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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