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
*작성일 : 2025년 2월 10일
어머니는 요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불어를 공부하고 계신다.
최근 무엇을 읽고 계시나 여쭈어 보니,
노통브의 푸른 수염을 해석하며, 번역본과 비교하고 계셨다.
그 순간 학부 시절 ‘프랑스 문학’ 수업에서 이 작품을 다뤘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친구들끼리 분량을 나눠 주어진 쪽수를 해석하기 바빴기에,
작품 전체를 천천히 음미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님께 이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기억을 되살리며 슬미시 그 시절 파리로 되돌아가보았다.
“여기는 내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의 문이오. 잠겨 있진 않소. 신뢰의 문제니까. 물론 이 방에 들어가는 건 금지요. 당신이 이 방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내가 알게 될 거고, 당신은 크게 후회하게 될 거요.” – 13 페이지
주인공 사튀르닌은 9번째 세입자로 파리 한가운데의 대저택에 입주하게 된다. 이곳의 주인은 귀족 돈 엘레미리오라는 스페인 출신의 귀족이다. 그러나 이전에 그녀처럼 그 집에서 세 들어 살았던 8명의 여인이 모두 실종되었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를 정도로 비밀스럽게 말이다.
집 내부의 규칙과 금기에 대한 설명을 통해 돈 엘레미리오는 사튀르닌에게 참을 수 없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독자 또한 여기서부터 뭔가 이상함을 인지하고 빠르게 둘의 대화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어떻게 느끼지 않을 수 있겠어요? 붉은색과 금색, 푸른색과 금색, 심지어 녹색과 금색도 더없이 아름다운 조합이지만, 고전적이죠. 노란색과 금색은 예술에 잘 안 나타나요. 왜 그렇겠어요? 그건 가장 광택이 없는 것에서 가장 눈부시게 번쩍이는 것까지 펼쳐진 빛의 색깔 그 자체이기 때문이에요.” – 34 페이지
이 소설의 메인 테마는 색깔에 있다. 저녁 식사에 종종 등장하는 계란의 노른자부터 시작해서 샴페인잔, 사튀르닌의 드레스 그리고 마지막 여인의 사진까지.
그중 가장 귀족적이고 고귀한 색깔은 금색이다. 이는 돈 엘레미리오를 상징한다. 그리고 위에서 그녀가 설명하는 노란색은, 일반적으로 금색에 비해 광택도 세련미도 덜하지만, 그래서 되려 금색과 완벽한 합을 이룬다. 결국 노란색은 사튀르닌을 상징하는 것이며, 앞으로의 둘의 사랑을 암시한다.
“당신이 그 금지된 방에 대해 그토록 집요하게 말하지 않았다면,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 방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전 당신이 그들을 벌하며 맛보았을 가학적인 쾌감을 능히 상상할 수 있어요.” – 47 페이지
그녀는 계속적으로 그에게 도발하며 자신은 이전 여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과시한다. 그러나 역사적 흐름은 명료하다. 이런 대사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녀는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되고, 이 금기를 어길 것이라는 것이 점점 자명해지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어디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이군.”
“보시오. 집 밖에 나가지 않는 내가 옳지 않소.”
그녀는 피식 웃었다. – 55 페이지
둘의 대화가 소설 전체의 80% 이상은 차지한다. 대화 주제는 매우 다양하고, 그 안에서 그의 구애와 그녀의 망설임이 잘 묻어나 있다. 속도감이 있어 재미있게 읽히기도 한다. 이런 농담과 같은 말들이 나올 땐 나 또한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사랑은 믿음의 문제요. 믿음은 위험의 문제이고. 난 그 위험을 제거할 순 없었소. 주님께서도 에덴동산에서 그렇게 하셨소. 그분께선 위험을 제거하지 않을 정도로 피조물을 사랑하셨소.” – 79 페이지
상대에 대한 사랑이 짙어 위반 시 생명을 잃을 정도의 위험한 금기를 만들고, 이에 대한 예방책을 마련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대단히 큰 나머지, 그 위험을 제거하지 않는다? 나 또한 사튀르닌과 같이 이 말들은 궤변이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아낀다면 그 사람이 안전하고 아프지 않으며 나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게 아닌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대상이 불행하지 않길 원할 것이고, 금기조차 만들지 않을 것이다. 금기가 아니더라도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이 많고, 되려 금기는 상대에 대한 불신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들을 죽이지 않았어! 그 여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야. 그건 그들의 문제지. 어쩌면 그 역시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수도 있어! 그들은 암실에 들어갔고, 그를 실망시켰어. 하지만 그는 그들을 벌하지 않았어. 그가 그들을 경멸하자, 그들이 스스로 사라져 버린 거야.” – 109 페이지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된 그녀의 그의 살인에 대한 정당화가 시작된다. 이성적 판단이 되지 않는다. 금기를 어기지 말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긴 것에 대해, 사라진 여자들이 정당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은 참으로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내가 대체의 개념을 거부하기 때문이오. 보시오, 난 당신을 향한 사랑에 푹 빠졌소. 당신은 나의 아홉 번째 세 든 여자요. 당신은 앞선 여덟 명의 여자를 대체하지 않소. 난 지금도 계속 그들을 사랑하오. 사랑은 매번 새롭소. 매번 새로운 동사가 필요하겠지만, <사랑하다>라는 동사가 적절하오. 왜냐하면 모든 사랑에 공통된 긴장이 있고, 그 단어만이 유일하게 그것을 표현하니까.” – 117 페이지
<사랑하다>라는 동사에는 많은 감정들이 함축되어 있고, 그 말을 완전하게 대체할 다른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전 연인에 대한 마음을 표할 방법 또한 <사랑한다>밖에 없게 된다. 누구를 덜 사랑하고 더 사랑하는 그런 유치한 개념이 아니다. 모두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그 사랑들 사이의 차이를 만들기 위해 이를 다른 동사로 대체할 수는 없다. 결국 피상적으로는 같지만 그 실상이 모두 다른, 그런 <사랑하다>만이 적합한 표현이다.
현재의 연인이 들으면 조금은 화가 날 것 같은 말이긴 하다.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기독교 도그마 해설에 써먹다니, 정말 당신답군요. 핫셀블라드는 어떤 도그마를 보여 주죠?”
“영혼의 불멸.” 그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리고 육신의 부활.” – 137 페이지
심장이 멎은 육체는 싸늘하게 식어버렸지만, 잘 얼어붙은 육체를 담은 사진은 영원히 멸하지 않는다. 죽는 순간 얼어붙었기 때문에 영혼까지 굳어서 그 속에 깃들어 있는 듯하다. 육체는 매장되어 썩어서 부패하고 사라지지만, 사진 속 육체는 영원한 생동감을 갖는다. 결국 사진을 통해 육체의 아름다움이 죽은 그녀들을 부활시킨다는 것이다.
“암실에는 발을 들여놓기 전에 정지시켜야 하는 기계 장치가 있소. 미리 정지시키지 않으면 문이 저절로 잠기고 압축기가 작동해 방 안 기온을 영하 5도까지 떨어지게 되어 있소.” – 146 페이지
이렇게 순순히 금기 해제 방법을 알려주다니, 뭔가 이 남자가 다소 순박해 보이는 대목이었다. 이러면 금기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앞선 8명의 여성이 모두 이러한 방식으로 얼어 죽었다는 것에 살짝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가 자신의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그녀는 피부 표면으로 축포를 쏘듯 어떤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것을 점점 더 강하게 느꼈다. 그가 은판으로 작업을 했기 때문에, 결과가 바로 나와 김을 빼놓는 일은 없었다. 작품은 기다림의 미스터리를 필요로 하는 법이다. 창조 작업을 할 때는 시간을 부인하지 않는 게 좋다. – 177 페이지
사랑하는 사람의 멋진 모습을 찍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찍히는 것, 이 모두가 예술적인 그리고 창조적인 행위라는 것을 아름답게 서사한다. 글을 읽으며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나중에 여자친구가 생기면 그녀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많이 남겨야겠다.
돈 엘레미리오가 숨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 사튀르닌은 금으로 변했다. – 187 페이지
결국 소설 내내 황금을 상징하던 돈 엘레미리오는 자신의 덫에 걸려 죽게 되고, 그 금기를 극복한 사튀르닌은 이전의 노란색에서 나아가 진정한 황금색을 성취한다. 그녀는 결국 진정한 황금이 된 것이다.
가수 르세라핌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라는 노래가 있다.
제목 내 여인들은 모두 정해진 금기를 위반하고 이를 어기게 된다.
그러나 이 노래 가사에 가장 잘 맞는 인물은 사튀르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적극적으로 금기를 해체하고, 투쟁적으로 극복했기 때문이다.
괜찮지 않아 그런 건
내 룰은 나만 정할래 yeah
볼 거야 금지된 걸
Never hold back 더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