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성일 : 2025년 2월 16일
무엇과 작별하지 않는 것일까?
나 자신에게 이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며 책을 읽어 나갔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는 많은 작별 그리고 이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가 말하는 이 소설의 주제는 ‘사랑’이다.
등장하는 모든 것에 대한 깊고 지순한 그런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고민해보았다.
정상적인 삶을 위해서는 끔찍했던 비극을 잊어야 한다. 그래야 한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이를 쉽게 잊거나 회피해서는 안된다. 모두가 잊어버리기 전에, 계속해서 마주하고 기억하려 하는 것, 그것이 곧 작별하지 않는 것이다.
그때 알았다. 파도가 휩쓸어가버린 저 아래의 뼈들을 등지고 가야 한다. 무릎까지 퍼렇게 차오른 물을 가르며 걸어서, 더 늦기 전에 능선으로 아무것도 기다리지 말고, 누구의 도움도 믿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등성이 끝까지. 거기, 가장 높은 곳에 박힌 나무들 위로 부스러지는 흰 결정들이 보일 때까지. – 26 페이지
이 소설은 경하의 꿈으로 시작된다. 우울하고 침울한 분위기에서 나무들 사이로 물이 차오른다. 하얀 눈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발 아래의 뼈들이 서늘하고도 선명하게 말라가고 있다. 여기서 경하는 깊은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결국 앞으로 계속 나아가겠다는 말을 한다.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작별하지 않고 마주하겠다는 어떠한 무언의 의지를 볼 수 있었던 대목이다.
엄마가 어렸을 때 군경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는데, 그때 국민학교 졸업반이던 엄마랑 열일곱 살 이모만 당숙네에 심부름을 가 있어서 그 일을 피했다고 엄마는 말했어. 다음날 소식을 들은 자매 둘이 마을로 돌아와, 오후 내내 국민학교 운동장을 헤매 다녔대.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 살 여동생 시신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포개지고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간밤부터 내린 눈이 얼굴마다 얇게 덮여서 얼어 있었대. 눈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이모가 차마 맨손으론 못하고 손수건으로 일일이 눈송이를 닦아내 확인을 했대. 내가 닦을 테니까 너는 잘 봐, 라고 이모가 말했다고 했어. 죽은 얼굴들을 만지는 걸 동생한테 시키지 않으려고 그랬을 텐데, 잘 보라는 말이 이상하게 무서워서 엄마는 이모 소맷자락을 붙잡고, 질끈 눈을 감고서 매달리다시피 걸었대. – 84 페이지
인용구를 필사하며 다시 한번 마음이 아프고 소름이 돋는다. 초등학생이 죽은 가족들의 시체를 찾으려고, 싸늘하게 얼어버린 육체의 얼굴을 하나씩 찾아보고 있는 이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가족들이 죽었다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인식 그리고 마음 깊이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이 상황을 맞이해야 하는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면, 당시의 비극이 한 개인에 있어서는 비극이라는 단어로는 형용할 수 없이 큰 고통이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부드러운 것이 손끝에 닿는다.
더 이상 따스하지 않은 것이.
죽은 것이. – 149 페이지
인성이 키우던 앵무새인 아마가 죽은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또 한번의 죽음 그리고 작별의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소설을 읽어내며 많은 죽음과 이별들로 인해 심신이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결국 나 또한 이 고통스러운 죽음들로부터 작별하고자 한 것 같다. 그렇게 작별하지 말라고 했건만.
1948년 정부가 세워지며 좌익으로 분류돼 교육 대상이 된 사람들이 가입된 그 조직에 대해 나는 알고 있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정치적인 강연에 청중으로 참석한 것도 가입 사유가 되었다. 정부에서 내려온 할당 인원을 채우느라 이장과 통장이 임의로 적어 올린 사람들, 쌀과 비료를 준다는 말에 자발적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들도 다수였다. 가족 단위로도 가입되어 여자들과 아이들과 노인들이 포함되었고, 1950년 여름 전쟁이 터지자 명단대로 예비검속되어 총살됐다. 전국에 암매장된 숫자를 이십만에서 삼십만 명까지 추정한다고 했다. – 273 페이지
소설은 경하로 시작해 인선으로, 그리고 마지막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으로 그 주인공이 바뀐다. 본격적인 제주 4.3의 비극은 어머니인 정심을 중심으로 묘사된다. 마치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그림이 하나도 없지만 아주 적나라한 이미지와 영상을 보는 듯한 묘사가 이어진다. 이념적 대립과 정치적 문제들로 인해 제주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 317 페이지
당시 서북청년단으로 인해 많은 제주도민이 이유 없이 학살되었다. 당시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관련하여 제주 쪽의 진보적 투표율로 인해 제주도 전체가 빨갱이 섬으로 낙인 되었고, 극우 독재 정부는 이 기회를 당연히 놓치지 않았다. 정치적 세뇌와 단합의 원동력은 일부 집단을 향한 맹목적인 비난과 학살로 완성된다. 나치가 유대일을 지독하게 학살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부시절 제주도에서 온 친구로부터, 제주도 어르신들은 외부인이 섬으로 들어오는 것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넘겼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 당시의 공포와 비극을 기억한다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책을 보며 내가 처음으로 리뷰한 동 작가의 ‘소년의 온다’가 생각났다.
‘소년이 온다’가 당시 상황 속에서 그 비극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리포팅 한다면,
이 책은 당시 비극으로 인한 현재의 슬픔과 고통을 더 섬세하고 묘사하는 것 같다.
‘소년이 온다’를 읽는 나는 폐교에서 군인들과 대치하던 광주의 학생이었고,
이 책에서의 나는 비극을 되짚어가는 과정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아파하는 유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