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 겐고
*작성일 : 2025년 3월 6일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특히 그곳의 랜드마크, 즉 그 지역을 대표하는 건축물을 구경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
그러나 실제 건축을 해본 경험이 없어,
건축가가 어떤 마음으로 그 건축물을 설계하고 만들었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 책은 건축물보다는 건축가의 태도와 철학을 더 면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교외 주택은 대게 하얀빛을 띤 밝은 모습인데, 그 본질이 너무 어둡기 때문에 무리해서 밝은 색을 칠한 것일 뿐 사실은 모두 죽어 있는 것이다. 교외 주택은 냄새도 나지 않는다. 반면 준코네 집은 늘 무언가 농작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언제 가보아도 자연의 냄새가 풍겼다. 봄에는 봄의 냄새가, 여름에는 여름의 냄새가, 가을에는 코끝을 자극하는 가장 강렬한 냄새가 풍겼다. – 32 페이지
대도시 속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건물들은 왠지 모르게 자연스러움이 부족하다. 인간미가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이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더 확실하게 느껴진다. 저 비인간적인 무한 사각형 안에 인간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모순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책에서 보여주는 준코네 집은 뭔가 연기가 풀풀 나고 밤새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가득할 것 같은 집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시골집을 연상케 한다.
나는 건축 일을 하고 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콘크리트에는 정이 가지 않는다. 콘크리트는 재사용할 수 없는 재료다. 처음에는 물처럼 형체가 없지만 굳어버리면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무겁고 단단한 존재가 되어 절대로 재사용을 할 수 없다. 반면 목조건축은 나무 쌓기와 비슷하다. 물론 나무 쌓기 정도로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편안한 여유로움이 있다. – 75 페이지
나는 대학생 때 볼펜보다 샤프를 선호했다. 샤프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좋았고, 만일 글자를 잘못 쓰더라도 지울 수 있다는 마음의 안정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반면 볼펜으로 필기할 때는, 쓸데없는 완벽주의로 인하여 불안으로 인해 스트레스만 받았던 것 같다.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작가의 콘크리트가 나에게 볼펜이 아니었다 싶다.
하지만 늘 현장에 갈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서 회의를 할 때, 내가 신경을 쓰는 것은 가능하면 눈앞에 모형을 만들어두는 것이다. 모형 하나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회의실은 ‘현장’이 되고 ‘전선’이 된다. – 110 페이지
상당히 공감 가는 말이다. 나 또한 회사에서 수많은 회의를 진행하며, 구체화된 대상을 통해 논의의 속도를 높이고 효율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와 도식으로만 채워진 화면 앞에서 진행되는 회의는 탁상공론으로 빠지는 경우다 많다. 그러나 구체화된 사진이나 모형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은 보다 강하게 현안에 몰입하게 된다. 이러한 대상의 상징성을 알고 있기에, 회의 전 사람들을 몰입하게 할 수 있는 준비물을 챙겨가곤 한다.
모더니즘 미학의 본질은 낭비가 없는 것이며, 결국 저렴하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이념의 기본도 사실은 ‘저렴함’이다. 자신과 세상을 낭비 없이 연결했을 때 자신과 세상 사이에 지속이 가능한,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관계가 탄생한다. 어떤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이 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가 ‘저렴함’이다. – 137 페이지
작가가 말하는 모더니즘의 핵심은 ‘저렴’이라고 한다. 이 저렴의 핵심은 낭비가 없이 필요한 정도만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공업화 사회의 ‘저렴’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즉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 절감으로 탄생한 저렴과는 필히 구분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나와 세상의 연결 속에 어떠한 체기나 거북스러움 없이 단순하게 맞닿는 정도, 그것이 작가가 말하는 지속가능한 모더니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내가 디자인할 때의 기본적인 자세는 ‘NO’다. 나는 사무실에서 “이게 좋아?”, “이게 마음에 들어?”, “이 정도로 만족이라고?”라고 계속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좋은지 어떤 것이 가장 적절한 해답인지 알 수 없지만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이건 안 돼”라고 계속 부정한다. – 165 페이지
NO에서 모든 창의성이 탄생하는 것에는 일부 동의하지만, 무지성의 반대는 되려 대화 단절 및 차단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물론 YES만이 존재하는 집단에서는 어떠한 개선이나 발전을 만들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집단 지성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의사 판단할 필요가 있다. 작가가 말하는 NO를 말하는 문화란 단순히 NO라는 말보다는, 창의적인 발전과 개선에 누구보다 진심으로 임하는 구성원들의 자세와 그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쿄대학 본교 캠퍼스 공사는 관동대지진에 의한 자재 부족 시대와 겹친다. 대지진 때문에 타일 공장도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피해를 입지 않은 몇 개의 공장 제품을 모았지만 색깔에 미묘한 차이가 났다. 그 타일들을 섞어 통일감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비책이 스크래치 타일이었다. 색깔이 다른 타일이라도 스크래치 가공을 하면 그림자가 색깔을 융합시켜 부드러운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있다. – 254 페이지
일반적인 일본계 장인들의 성향과는 사뭇 다른 작가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 대게 일본 장인의 경우 몇 십 년간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이를 지켜 나간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고지식하고 뻣뻣한 철학이다. 한 예로 렉서스 광고에 나오는 5만 시간의 장인만 봐도,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고집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는 작가의 유연함과 융통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유연함을 통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내 일본 스럽지 않은 세련된 면모까지 보여준다. 스크래치 타일을 통해 현실적인 자재 부족 이슈를 해결하면서도, 그림자 배합을 통한 새로운 하모니를 만든 것이다.
건축가는 세상의 일부를 창조하는 특별한 존재로 비치기 쉽다. 멀리서 보고 있으면 꽤 위대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가가 되기를 바란다면 건축가 주변을 맴돌며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하라 교수의 교육은 완벽했다. – 272 페이지
우리 누나는 한국에서 인정할 만한 미술 학교들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미술가이다. 개인 전시 등을 개최하면 유명한 사람들로부터 꽤나 많은 찬사와 호평을 받는다. 아마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위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외출하고 돌아온 조카를 씻기거나 엄마와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하여 수다 떠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예술가스럽지 않게 상당히 인간적이다. 결국 엄청난 영감과 그에 상응하는 미학적 소양보다는, 그림과 미술에 항상 가까이 있기 때문에 멋진 예술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어 나가며 작가의 건축 방향성을 점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도시에서의 수직적 돋보임 보다는, 자연에서의 수평적 어울림을 중시한다.
또한, 지면과의 연결을 통해 자연과 합일되고, 연속과 지속이라는 키워드가 항상 그의 건축에 중심이다.
결국, 작가는 자신이 해석한 세상을 건축이라는 수단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