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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

by 김민규

*작성일 : 2025년 3월 11일


얼마 전 오랜만에 대학교 후배를 만났다.

그날 날씨가 많이 추웠기에 우리는 일본식 선술집으로 들어가 따뜻한 사케를 마시며 몸을 녹였다.


서로 회사 얘기, 사는 얘기를 나누며 최근 일상에 대한 업데이트를 했고,

예전 대학생 때 이야기를 하며 각자의 추억을 공유했다.


이야기 도중 내가 요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취미가 생겼다고 하니,

후배는 본인도 종종 책을 읽는다고 했다.

알고 지낸 지 10년이 지났는데 이 친구가 책을 읽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


이번에 가족들과 함께 해외로 떠난다고,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 3권만 추천해 달라고 했고,

그녀는 헤어지기 전 자기 집에 들러 소장용으로 가지고 있는 3권을 빌려주었다.


그 첫 번째 책이 ‘공중그네’이다.


이 책은 총 5편의 단편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여 있다.

‘이라부 이치로’라는 신경정신과 의사는 각 단편 속 주인공들의 마음의 병을 치료한다.

거대한 주사, 육감적인 간호사의 몸매 그리고 이라부식의 참여 중심적 치료법은 5개의 문제를 푸는 하나의 공식처럼 사용된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장소에 어울리잖게 명랑한 목소리가 “들어와요~”라고 대답했다. 가볍게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흰 가운을 입은 뚱뚱한 남자가 1인용 소파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나이는… 잘 몰라도 자기보다 많은 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에는 ‘의학박사 이라부 이치로’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 – 74 페이지

이라부의 등장씬은 항상 동일하다. 주인공은 매번 의심 가득하지만 속는 마음으로 이라부의 진료실에 입장한다. 그러면 우리가 상상하는 일반적인 진료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지나치게 자유로운 자세의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 심지어 남자들이라면 한 번쯤 눈길을 빼앗길 만한 육감적인 몸매의 간호사도 있다.


이것 역시 고헤이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초보자들은 거의 주눅이 들기 때문에 진동 포이 좁아져서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라부는 체중 과다, 완력 부족 같은 핸디캡을 과감한 결단력으로 극복해 낸 것이다. – 93 페이지

이라부의 진료 방식은 항상 환자의 문제 상황에 직접 빠져들어 경험하고, 그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서커스던 야구던 소설 쓰기던 말이다. 본인 상황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이 방법이 발상의 전환을 유도하는 좋은 치료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어린이 만화영화에서 볼 법한 구성이긴 하지만, 문제가 곧 해결될 것이라는 안정감 느껴졌다.


마음 한구석에 숨어 있던 불안감을 여태껏 애써 외면해 왔다. 의식하는 것조차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은 도망칠 수 없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229 페이지

경쟁심리는 항상 인간을 작고 치졸하게 만든다. 경쟁의 목적은 양쪽 모두의 성장과 그를 통한 발전이다. 그래서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주인공이 느끼는 경쟁은 승패가 갈리는 대결이고, 패배는 결국 멸망으로 이어지는 전쟁과 같다.


경쟁은 모두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한 수단이다. 단적인 예로 올림픽에서는 항상 모든 선수들의 기록을 줄 세우고, 토너먼트 방식을 통해 팀 간 승패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 올림픽에서의 경쟁의 존재 이유는, 참여 선수들의 육체적 성취와 계속적인 성장이지 타국에 대한 승리와 우월감 획득이 아니다.


우리나라 올림픽 은메달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보면, 은메달보다 차라리 동메달이 더 낫다고 말하는 댓글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어렸을 때부터 줄 세우기와 경쟁심리를 주입당한 대한민국 교육의 아픈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러니까 일단, 간판을 내리는 거야. 그럼 홀가분해질 텐데.”
“간판을, 내린다…”
아이코는 말문이 막혔다. 뜨끔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내일>이 팔리지 않은 탓에, 점점 더 간판에 얽매이게 되었다.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이다. – 285 페이지

성공의 방식과 그 달콤함을 알아버린 창작자는, 정해진 방법과 새로운 도전 사이에서 매번 갈등하게 된다. 그러나 마음속 한가운데에는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존재한다. 아이코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내일>이라는 작품을 선뵈고, 이 작품의 실패로 인해 새로운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라부는 다소 단순하지만 핵심적인 조언을 통해 그녀의 고민의 근원을 파고든다. 결국 그녀는 이라부의 조언을 곱씹으며 점점 마음의 병을 치료하게 된다.



이 책은 창이공항으로 가는 5시간 동안 부담 없이 다가왔다.


이라부라는 괴짜 의사의 기상천외한 진료 스토리는 마치 시트콤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다소 가볍게 읽었지만, 요즘 소원했던 독서의 흥미를 되살리기에는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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