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림
*작성일 : 2025년 3월 12일
싱가포르에서의 독서 제2편을 시작하고자 한다.
재미있는 책을 빌려준 후배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
이 책의 저자는 10년 차 카피라이터로, 문장과 텍스트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만큼 단어와 표현을 일반인들보다 예민하고 입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작가는 평소에 자신에게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문장을 모아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게 되었고, 그것들이 모여 이렇게 책까지 나왔다고 설명한다.
나 또한 일상 중 갑작스럽게 심금을 울리는 문장 혹은 장면을 목격할 때가 있다.
이제 그 순간을 남겨 기록하거나 촬영하고, 이것들을 모아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해 볼 생각이다.
내일부터의 순간들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올 것 같다.
겨울의 추위는 힘들지만 춥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음식도 있다. 추위도 소중한 조미료 중의 하나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
겨울철 야외에서 칼바람을 맞아가며 먹는 어묵과 붕어빵은 실내에서 먹는 것보다 100배는 맛있다. 반대로 한여름 2시간 등산 후 마시는 차가운 막걸리는 가히 극락의 맛을 선사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시골집으로 돌아온 김태리가 어렸을 적 엄마에게 배운 여러 가지 음식을 직접 해 먹는 장면들이 나온다. 여기서 그 음식을 더 맛깔나게 만드는 소재는 그 순간의 계절이다. 요리하는 장면, 계절 묘사 그리고 음식은 영화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소재들인 것 같다.
취미라면, 진심으로.
광고 <캐논 EOS 60D>
저자가 말하는 취미는 애써 만들어보는 것이 아닌, 이미 내가 푹 빠져서 해오지 못하고 있는 그것이라고 한다. 당근마켓 매출을 올려주는 그런 것 말고. 이런 측면에서 나의 취미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부끄럽지만 그냥 퇴근 후 운동하며 연애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심취해 있는 취미인 것 같다.
모든 것을 즐거워하던 청춘들은 말합니다.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다 지치면 두 번째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고.
예능 <신서유기 외전 : 꽃보다 청춘> 위너 편
상당히 충격적인 문장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일을 업을 하고, 누구보다 그것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고, 이게 나의 길인가, 적성에 맞지 않나 항상 고민한다.
잘하는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항상 업계 1등을 바라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다 다반사다. 그러면 다른 직업의 두 번째 아이디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면 된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여러 가지인데 왜 굳이 하나만 파야 하고, 거기서 성공하지 못하면 패배감을 안아야 하는가? 두 번째 아이디는 나의 업이 아닌 취미, 습관, 이벤트로 채워 나갈 수도 있다.
롤의 신 페이커 이상혁 선수도 롤이 잘 안 될 때는 다른 게임을 하며 롤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난 어떤 면에선 별과 별 사이처럼 바로 붙어 있는 별도 몇 억 광년의 시간 차이가 나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렇게 긴밀하고 밀착된 거보다는 조금 바람이 통하는 관계, 선선한 바람이 지나가는 사이, 그런 게 있으면 좀 더 오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사이에는 이만한 거리가 있다고 인정하며 관계의 거리를 유지할 때, 좋은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교양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양희은 편
요즘 들어 만나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되려 그 안에서 지친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사람 간의 거리가 너무나도 가깝다 보면, 그 사이 환기할 구멍조차 없어 답답해지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대인 관계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필요하다. 이는 가족, 친구, 동료 모두에게 적용된다. 너무나도 막역하고 친밀하지만, 서로의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다. 요즘 내가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던 인관관계에서의 답답함을 명료하게 정리해 준 이 문장을 만나 반갑고 기뻤다.
‘너무 좋아’는 곧 전문성이니까요.
일본 출판사 ‘가도카와’의 2023년 채용 글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왜냐하면 즐기는 자는 전혀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인가에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다 보면 주변의 소음이 들리지 않고 시간이 3배 이상 빨리 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나 또한 대학생 시절 중급 회계를 공부할 때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구조를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재미가 너무나 커 밤을 새워 공부했고, 걸어 다니며 책을 보고 문제를 풀었다. 제발 나한테 질문해 달라는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매번 강의실 맨 앞자리에서 강의를 들었다. 업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꽃을 선물 받는 건 남자가 꽃집에 가서 어색해하는 순간까지 다 포함된 선물이래요. 남자가 얼마나 큰 어색함을 무릅쓰고 꽃집에 갔을 거며 꽃을 사기까지 얼마나 민망했을 거예요. 그래서 꽃 선물은 꽃집으로 갈 때까지 여자를 생각하는 그 마음들이 담겨 있는 선물이래요.
예능 <선다방> 가을 겨울 편 3회
내가 생각하는 선물의 개념이 꽃이라는 대상으로 풀이되어 있어 인상 깊었던 문장이다. 선물은 그 품목보다는 행위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상대방을 생각하며 그녀가 평소에 이야기했던 것들을 곱씹어본다. 뭐가 필요하다고 했지? 어떤 게 이쁘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선물을 사고, 받는 순간조차 소중하기에 포장에 더더욱 신경을 쓴다. 내 마음이 이 선물을 통해 전부 전달되지 않을까 노파심에 손편지까지 준비한다. 이 모든 과정이 선물인 것이다. 여기서 그 선물이 무엇인지가 그렇게 중요할까?
헤맨 만큼 자기 땅이 된다.
출처 미상
나의 업무 좌우명을 말하는 문장이다. 나는 어떤 일이든 잘 해낼 수 있는 능력, 즉 역량을 키우기 위해 최대한 잘 해내려고 노력한다. 아무도 안 해본 일을 성사시키며 고생스럽게 배우는 과정을 통해 나만의 역량을 쌓는다고 생각한다. 회사일을 해보면 대충 느껴진다. 대부분의 일은 정해진 것 없어, 알아서 공부하며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따라서 헤매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고, 그만큼 나의 깜냥이 쌓일 것이라고 자부한다.
친구와 동료도 세상의 다른 조각들을 건네어주지만, 연인과 배우자가 가져오는 건 온전한 세계의 반쪽에 가깝다. 그건 너무 커다랗고 완결되어 있어서 완전하게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녀가 가져오는 세상 때문에 나는 조금 더 다양하고 조금 덜 편협한 인간이 된다.
2013년 10월 5일, 전 <1박 2일> 유호진 PD의 글
나는 항상 연애를 시작하면 상대방의 취미와 기호를 닮아간다. 고수를 극혐 하던 내가 해장은 무조건 쌀국수로 하게 되고, 팝송보다는 가요를 선호하던 내가 찰리 푸스 앨범을 무한 반복한다. 강아지보다는 고양이를 좋아하던 내가 비숑과 포메를 보며 예쁘다는 말을 연발하고, 전시와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홀로 도슨트를 신청해 바로크 예술을 감상한다.
배우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 내가 몰랐던 더 재미있고 다양한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다. 사랑의 장점은 참으로 많다고 생각한다.
불안해서 안심이다. 불안은 에너지니까.
윤종신 인스타그램
나는 어머니의 성향을 닮아 종종 불안함을 느낀다. 정확하게 말하면 조바심과 초조함이다. 제일 큰 불안들로는 더 잘되고자 하는 불안, 좋은 상대를 만나 결혼해야 하는 불안, 건강 유지에 대한 불안이 있다. 여기서의 불안은 욕심 혹은 노력과도 연결된다. 그러한 불안이 있기에 더 챙기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인사이드아웃 2>에 등장하는 새로운 감정들 중 ‘불안’이라는 감정에 가장 몰입하며 영화를 보았다. 너무 과한 불안은 비이상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적절한 불안은 주인공을 최고의 하키팀에 입단시키는 결과를 만들어줄 수 있다.
끊임없이 타인에게 나를 증명하는 것으로 내 존재가 확인된다면 나는 이미 타인의 식민지다.
트위터 @dlklee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타인을 의식하고 남과 비교하며, 내가 정의하는 나보다는 타인이 인식하는 나를 더 우선시하는 경향이 생겼다. 우선 내가 그렇다. 남이 보는 나라는 페르소나가 내가 아는 나보다 더 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골라 완성된 가면을 만들고, 그 가면이 마치 내 진짜 얼굴인양 붙이고 다닌다. 점점 진짜 나와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오랜 친구들을 찾아가 술 한잔 하며 진짜 나를 다시금 일 깨우는 시간이 필요해진 것 같다.
평소에 막연하게 느꼈던 감정들이나 생각들이 명료하게 정리된 문장들을 볼 때마다
소소하지만 짙은 감동이 느껴졌다.
문장에는 큰 감동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내일부터 나의 임무는 소중한 문장과 순간의 장면을 수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