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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by 김민규

*작성일 : 2025년 3월 16일


성미가 급하고 항상 빠른 답을 원하는 나에게 스승님께서는 종종,

“너는 뭐가 그렇게 급하니, 조금만 천천히 가보자”라고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제자의 조급한 물음에

정 많은 스승님은 비싼 관람 티켓과 함께 이 책을 선물로 주셨다.


명확한 목표와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정한 목표 자체가 불완전할 수 있지 않은가?

또한, 만일 해답을 찾았다고 하면, 그 이후에 오는 허무함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 책은 이러한 인생의 허무함과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조언해주고 있다.




호모 블라의 마지막 주인공은 해골이다. 독일 밤베르크의 미하엘스베르크 수도원의 천장을 보라. 거기에 해골이 등장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인간에게 죽음은 불가피하고, 죽음으로 인해 인생은 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계속 거품을 불뿐이다. – 59 페이지

거품은 허무함과 덧없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소재이다. 결국 인간의 일생은 전 인류의 역사 속에 하나의 거품에 불과하다. 찰나의 순간에 존재했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거품과 같이 생겼다가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결국 죽음과 끝은 정해진 것이기에, 그 속의 단편적인 목표들은 큰 의미가 없다. 죽음까지 이어지는 인생의 과정 자체에 그 목적과 가치를 두고 하루하루 곧 사라질 거품을 불고 또 부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는 매번 허탕을 치더라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바다로 나간다. 하루하루의 성과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매일 바다로 나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반복이 패턴을 만들고, 패턴이 패터슨의 일상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든다. 패턴은 일상의 행동에 작은 전구를 일정한 간격으로 달아놓는 일이기에, 삶은 패턴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빛나게 된다. 이 반복과 패턴이 자아내는 아름다움과 리듬은 뭔가 지금 제대로 작동 중이라는 암묵적인 신호를 보낸다. – 96 페이지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은 지루하다는 인식이 있다. 따라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항상 이 지루한 일상을 깨며 주된 이야기가 시작되곤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매일 내 삶을 더 윤택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면, 이 자체로 건설적이며 발전적이다. 특별한 이슈 없이 계속 나가가는 이 느낌, 상당히 안정적이고 어떠한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 중이라고 느껴진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이러한 반복적인 삶의 아름다움을 잘 묘사한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매일 도쿄의 공중 화장실들을 청소한다. 영화의 4분의 3은 매일 똑같은 그의 일상과 삶의 패턴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있어 생활의 안정감을 전달한다. 그리고 그 안정된 패턴 속에 크고 작은 변화들을 가미하여 히라야마의 삶을 더 반짝이게 만든다.


나 또한 요즘 상당히 정형화된 루틴으로 살아가고 있다. ‘일-운동-독서-글쓰기’

이 굵직한 루틴 속에서 작은 이벤트와 순간들을 가미하여 저자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리듬을 찾고 싶다.


이와 같이 노년의 변호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이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자네들은 내가 칭송해 마지않는 것이 어디까지나 젊었을 적에 기초를 튼튼하게 다져놓은 노년이라는 점을 명심해 두게나.” 그렇다. 노년에 건강하려면 젊은 시절부터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한다. 노년에 공부를 즐기려면 젊은 시절부터 공부에 습관을 들여야 한다. 노년에 청년들을 가르치려면 젊은 시절부터 지식을 쌓아야 한다. 노년에 쾌락에 빠지지 않으려면 젊은 시절에 놀만큼 놀아보아야 한다. 노년에 멋진 추억에 잠기려면 젊은 시절에 멋지게 살아야 한다. – 121 페이지

노년기는 결핍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고, 소화도 잘 안되고 기억도 깜빡깜빡한다. 주변인들에게 짐만 되고, 내가 빨리 죽어야 세상이 더 평화로워질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노년기는 그 시기만의 장점이 있다. 청년기 때보다 패기는 부족하지만 경험과 노하우가 있고, 정신적으로 혹은 물질적으로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다. 비록 체력과 건강한 몸을 써야 하는 일은 할 수 없지만, 축적된 지혜와 가공된 안목으로 전체적인 방향을 지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멋진 노인이 되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부터 많은 노력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 지금의 순간들이 연결되고 더해져 훗날의 노년기를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년기가 오는 것을 두려워만 하지 말고, 지금부터 착실하게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일을 즐길 수 있나? 윌리엄 모리스는 1879년 2월 19일 버밍엄 예술협회와 디자인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바로 저 <로빈슨 크루소의 다음 여행>의 구절을 인용하며 주장한다. 예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급조된 마을 벽화나 빌딩 앞 의무적으로 설치된 어리둥절한 대형 조형물이 우리를 구원할 거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팔기 위해 허겁지겁하는 노동이 아니라, 실생활에 필요한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한 공들인 노력, 그리하여 일상의 디테일이 깃든 작은 예술과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할 거라는 말이다. 그것들이야말로 우리의 노동을 즐길 만한 것으로 만든다. – 159 페이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하기 싫고 편하게 쉬고 싶어 한다. 매주 월요일 로또를 사며 퇴사를 꿈꾸는 직장인들은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직장은 돈벌이 수단이며, 적게 일하고 많이 받는 것이 가성비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노동이 질병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 노동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해진다.


모든 기업은 본래의 비전을 가지고 여러 사업을 진행한다. 세상을 참혹하고 오염 가득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운영되는 기업은 없다. 즉, 모두 각각의 선한 방향성을 가지고 경영을 이어 나간다. 결국 그 비전을 바탕으로 종업원 개개인의 업무 방향성이 설정되는데, 본인이 하는 무슨 일이든 멋진 비전을 전제한다면 이는 즐길 만한 일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돈을 세든, 물건을 판든 혹은 법적 리스크를 검토하든, 이 모든 일이 세상을 더 살만 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면, 조금 더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조직의 대표는 조직 내 비전 공유와 방향성 제시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해주시는 모든 일이 이 세상을 이롭게 만들 것이고, 만일 그 안에서 회사에 이로움이 쌓인다면 꼭 돌려드리겠습니다”의 뜻이 통해야 한다.


희망, 자신감, 정의 등 제로섬적 경쟁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에 눈을 돌릴 수 있으려면, 세상에는 다원적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양한 가치들에 자유자재로 눈을 돌리고 다양한 영역을 가로지를 수 있는 마음의 탄력이 필요하다. 경쟁, 아니 경쟁의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파이의 확대나 욕망의 제거나 공정한 시험 못지않게 경직되지 않은 마음의 탄력이 중요하다. – 220 페이지

경쟁은 한정된 자원으로 인해 발생한다. 경쟁에서 승리했을 경우 그 자원을 얻을 수 있어 만족하지만, 만일 패배한 경우 물리적인 자원뿐만 아니라 패배감라는 정신적 피해도 입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러한 타인과의 경쟁심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것 같다.


자원이라는 카테고리는 한정적이지만, 자신감이나 평등과 같은 개념은 꼭 일정한 양이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다. 따라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다채롭게 만들고, 모두가 절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경쟁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서로 협조하고 도우며 건강한 경쟁을 하게끔 만들자는 것이다.


또한, 각기 다른 사유 자원과 배경으로 인해 경쟁에서 밀려나는 경우는 분명 불공평하며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회적인 개선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덧붙이고 싶다. 명석한 부모에게서 받은 명석한 두뇌 또한 불공평의 한 가지 예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시간 속에서 건강과 활력을 유지하려면 자신의 사고방식에 정면 도전하는 비판적인 존재를 환영하는 것이 좋다. 기존 가치와 불화하는 이질적 존재를 환영하는 것이 좋다. 자신의 안위를 위협하는 적마저 환영하는 것이 좋다. 그러한 이들이야말로 자신의 지속적이고 건강한 생존에 필수적인 긴장과 자극을 제공하는 존재들이니까. – 239 페이지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며 꼰대가 되어간다. 생존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만의 생존 방식이 옳았다고 믿게 되고, 이를 부정할 경우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꼴이기에 더욱이 그 방식을 고집한다. 이 포인트가 꼰대 생성의 핵심이다. 더 좋은 방식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더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방향은 항상 존재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항상 자신의 사고가 편향되지는 않는지, 어디에 갇혀 있지는 않는지 의심해야 한다. 사고와 정신이 시간적 풍화를 맞기 않기 위해 항상 경계하고 의심해야 한다. 누구를? 나 자신을!


활기를 찾고 살아 있는 세상과 관계를 적립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세상에 대한 느낌이 없으면 나는 한마디도 쓸 수가 없고, 아주 작은 시도, 운문이든 산문이든 창작할 수 없습니다. 산책을 못 하면, 나는 죽은 것이고, 무척 사랑하는 내 직업도 사라집니다 산책하는 일과 글로 남길 만한 것을 수집하는 일을 할 수 없다면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록할 수 없습니다. – 287 페이지

나는 가까운 거리면 항상 걷는다. 여행을 가더라도 웬만하면 걸어서 이동한다. 걷다 보면 사고도 활발해지고 누구와 함께라면 대화도 더 부드러워진다. 심지어 소화도 잘되고 칼로리도 소모된다. 걷는 길 주변의 환경들 그리고 내가 걷는 그 길과도 가까워질 수 있다. 나에게서 산책과 걷기는 저자만큼이나 중요한 취미이자 일상의 동반자이다.


나는 생각이 많아지면 항상 찾아가는 곳이 있다. 서울 광진구의 광진정보도서관 뒤쪽 한강길이 바로 그곳이다. 일단 사람이 별로 없고 차도 세워 둘 수 있다. 강변을 걸으면서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을 육성으로 꺼내 본다. 내가 나에게 복잡한 상황을 직접 설명하고, 어려운 부분을 풀어서 부연한다. 그리고 내가 왜 고민하는지, 어떤 부분이 마음에 걸리는지 차근차근 허공을 향해 쏟아낸다. 현안을 모두 정리하면 해결 방법에 대해 나 자신과 의논한다. 발은 계속 걷고 있고 입은 쉴 새 없이 떠들고 있다. 그렇게 적절한 합의점을 찾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간다. 걸으면 안 될 것이 없다.




이렇게나 복잡한 게 인생이고 삶이다.


항상 논리적으로 파악하고 빠른 답을 얻기를 원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게 쉽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빨리 나온 답은 오히려 허점과 빈틈이 더 많을 것이다.


일단 신발을 신고 나가 걸으면서 다시 천천히 생각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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