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현대 서울 ALT. 1
*작성일 : 2025년 12월 9일
이번에도 어김없이 도슨트 전시를 발견하여,
바로 주말표를 결제하고 여의도로 향했다.
최근 이사를 해서 그런지 여의도 가는 길이 조금은 멀게 느껴졌지만,
이번에는 어떤 작가의 스토리를 알게 될까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더현대 백화점은 한껏 연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티켓 교환 후 겉옷을 맡기고 짧은 여정을 함께 할 도슨트 및 동행인들을 기다렸다.
다소 어색할 수 있는 남자 3인방으로 시작된 이번 도슨트 전시는,
한 체코 작가의 유명한 연극 포스터부터 시작됐다.
아르누보, 그리고 상업 작가
지금껏 관람했던 작가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상업적이고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무하를 파리의 대스타로 만들어준 지스몽다 포스터가 바로 그렇다.
엄청 잘 만들어진 그래픽 디자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프랑스의 연극스타 지스몽다는 무하의 이러한 재능, 특히 아름답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본인의 전속 포스터 디자이너로 고용하게 된다.
키가 큰 지스몽다의 신체 사이즈와 동일하게 세로로 긴 이 포스터들은,
가히 찍어낸 듯한 균형과 다양한 색의 향연으로 ‘아름답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르누보 (Art Nouveau)는 불어로 새로운 미술이라는 뜻인데,
그 무엇보다 예술의 1차적인 가치인 심미를 중요하게 여긴다.
무하가 파리에선 그렸던 다양한 상업 작품들은
다른 시대적 혹은 인물적 맥락 없이,
단순히 보고만 있어도 눈이 즐거워지는 그런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역시 아르누보 예술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파리 만국 박람회, 그리고 민족주의 작가로의 전환
1889년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가 그의 작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은 가지고 있던 식민 국가들에 대한 지배력과 그 장악력을 박람회에서 뽐내기 위해,
무하에게 그러한 내용을 담을 그림을 의뢰하였다. 당연히 예쁜 포스터로 말이다.
이때 무하는 자신의 태생과 뿌리에 대한 강한 모멸감과 회의감이 느꼈고,
상업 예술을 접고 ‘슬라브 서사시’라는 20작의 대 민족주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보이는 그림들은 마치 다른 작가의 전시처럼 새롭게 느껴진다.
앞선 상업 섹션이 화려하고 다채로우며, 아름다운 여성들이 주된 대상이었다면,
민족주의 섹션은 칙칙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고통스러워하는 슬라브 민족의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하는 이러한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해 러시아 등 슬라브 민족들이 사는 국가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직접 많은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2차 세계 대전
히틀러의 민속 말살주의로 인해 무하의 이러한 민족주의 행보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리아인 이외의 모든 민족 혹은 인종에 대한 강력한 차별 정책으로 인해,
무하와 같은 민족주의 작가들은 더 이상 자유로이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슬라브 서시시’는 프라하가 아닌 체코 남부 모라비아 지방의 '모라브스키 크룸로프 성에 전시되어 있다. 이는 해당 작품이 독일군에 발각되어 모두 소각될 것이 우려되어, 찾기 힘든 지방 구석에 보관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도 이 작품을 보고자 한다면, 프라하로부터 꽤나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고 한다.
무하 또한 결국 독일군에 체포되어 민족주의 행보와 사상과 관련한 고문을 받았고,
출소 후 얼마 못 가 사망하였다.
그는 이 모든 전쟁과 갈등이 인간의 이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여,
‘이성보다는 지혜와 사랑을 믿자’는 주장을 남겼다.
다른 전시들보다 이해가 직관적이었고,
특히 앞부분에서는 눈이 매우 즐거워 흥미로웠던 전시였다.
무하의 일러스트는 마치 프랑스의 고급 비누 포장에 있을 법한,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결국 참지 못하고 목재 액자를 하나 구매하여 인테리어에 활용하고 말았다.
(아르누보의 심미적 이점으로 인해 인테리어용으로 딱이다!)
추가로 올해 6월 한가람 미술관에서 샤갈을 설명해 주신 도슨트 분을 다시 만나,
정말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