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중단편집
*작성일 : 2024년 12월 11일
지식인의 의무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의무는 먹고사는 일에 문제가 없어 남들보다 한 글자라도 더 읽을 수 있었고,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내 주변과 더 나아가 내 사회를 이롭고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루쉰도 중국 청나라 말기에 지식인으로, 봉건 제도에 머물러 더 이상 발전이 없는 중국의 농촌 사회를 직시하고, 자신의 고향 사람들의 무지에 연민하며, 중국의 모든 이들의 계몽과 지성화를 추구하고 있다.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 순서로 이어지는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과 서구화라는 역사적 흐름에 있어, 동아시아 국가들은 참으로 많은 희생과 고통을 치러 가며 이를 겪어야 했다. 그 속에서 기득권 세력들이 본인들의 세력과 안위만을 생각해 서구 문물과 학문에 대한 무조건적 배척으로 그 극복이 지연되긴 했지만, 그 속에서 각 국의 지식인들은 ‘실용주의’리는 하나의 철학을 가지고 본인의 국가를 지키고 우매한 국민들을 계몽하여 나라를 지키고자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보았을 때 루쉰의 아Q정전은 당시 중국의 농촌 실상과 당시 시대적 흐름을 명확하게 간파하고 있으며, 이는 현재 개방을 막 시작하여 서구 문화와 문물을 받아 드리기 시작한 개발도상국들에게 있어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일이 없다고요? 랑즈춘에서 지금 사람을 잡아먹고 있고 책에도 그렇게 쓰여 있단 말입니다. 온통 시뻘겋게 새로 쓴 글자라고요! - 29 페이지
화자의 고향에서 벌어지는 토속 신앙에 근거한 식인 문화와, 이에 대한 주민들의 무조건적인 동조를 비판하는 발언이다. 당시 중국의 몇몇 농촌 사회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미개한 행위와 문화가 성행했다는 점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쓸 줄 모르나 보군?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잘 외워, 이런 글자는 외워 둬야 한다고. 앞으로 가게 주인이 되면 장부를 쓸 때 꼭 필요할 테니까 말이야. - 41 페이지
의사소통의 대표적인 도구로는 말과 글이 있다. 말은 순간적인 전달과 이해가 빠르지만, 휘발성이 강하고, 이후 세대까지의 전달력이 부족하다. 다만, 글의 경우 전달 속도는 다소 느리지만, 기록되기 때문에 지속성이 강하고, 후대에 계속적으로 전승이 가능하다.
중세시대부터 활자를 쓰고 글을 읽을 줄 아는 것은 지식인으로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었고, 당시 지배계층은 항상 피지배계층의 이러한 배움이 그들의 세력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의 발명을 통해 책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는 국민들을 교육하고 계몽해 결국 르네상스를 이룩하게 된다.
사람은 좋은 글을 읽고 이를 쓰게 되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된다. 저자는 위 이야기를 통해 계몽의 시작은 독해와 작문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아 조물주의 채찍이 중국의 등판을 내리치지 않는 한, 중국은 영원히 이런 중국일 수밖에 없네, 스스로는 머리카락 한 올조차 바꾸지 못할 걸세. - 83 페이지
채찍을 맞는 듯한 혁신적인 변혁 없이는, 지금의 중국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비꼬고 있다. 루쉰의 시대는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지고 중국 내 처음으로 공화정이 세워지는 시기이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만이 진부하고 낙후된 중국에게 다시 한번 예전의 황금색 영광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아Q는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들을 나중에 하나하나 입 밖에 내곤 했다. 때문에 아Q를 놀려 먹은 적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이러한 정신 승리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 110 페이지
저자는 아Q라는 인물의 특이한 습성, 일명 ‘정신 승리법’이라는 특징을 설명하며 그의 멍청함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당시 중국을 아Q라는 인물에 빗대어 비판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전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중국은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신식 문물의 수용과 발전에 뒤처져 있었다. 또한, 아직까지도 예전의 영광에 젖어 변화에 둔했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다만 일종의 ‘정신 승리법’으로 본인들의 정권을 유지하고 국민들의 눈을 가리며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음을 강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물론이지, 자넨 내가 A, B, C, D라도 가르치는 줄 알았나? 전에는 학생이 둘이나 있었네, 한 학생에게는 ‘시경’을 가르치고 다른 한 학생에게는 ‘맹자’를 가르쳤지. 최근에 한 명이 더 늘었어. 여자아이라 ‘여아경’을 가르친다네. 산수조차 가르치지 않지. 내가 가르치지 않는 게 아니라 부모들이 가르치는 걸 원치 않아. - 226 페이지
당시 중국의 실용적 학문에 대한 무지를 비판하는 대목이다. 영어 혹은 수학 등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생활에 활용이 필수적인 학문들보다, 중국 전통의 유학만을 강조하는 당시의 고리타분한 교육 문화를 비판하는 것이다. 물론 유학 또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학문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한다. 다만, 과학과 의료기술 등의 실용적 풍요로움이 그 기반이 되어야 더 고차원적인 유학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루쉰은 이 점을 간파하고, 교육에 있어 탁상공론보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함을 다시 한번 필역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요. 그래 꼭 한 가지뿐이지. 내일 그 애를 묶어 성으로 데려다가, 그 애를, 그, 그 성황묘에서 하룻밤 보내게 하는 거요. 그렇지, 그렇게 하룻밤을 지내게 해서 그 애한테 붙은 사악한 귀신을 쫓아 버리는 거요. - 239 페이지
당시 중국 농촌의 미개한 미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학적으로 전혀 이해되지 않는 활동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러한 미신과 종교적 활동들이 성행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불필요한 희생과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최근 더 많은 책을 보고 그에 대한 글을 쓰며, 나만의 철학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철학을 통해 내 인생을 옳게 바꾸는 것이 이 과정의 일차적 목표라면, 내 주변 사람들과 내가 속한 사회를 옳게 변화시키는 것이 나의 모든 학습의 최종 목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