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작성일 : 2024년 12월 24일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인생은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넘버가 생각난다. 장발장은 성당 의자에 앉아 자신의 기구한 인생을 주마등처럼 회상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풀지 못함에 있어 후회한다. 그리고 자신의 의붓딸의 생모였던 판틴이 나타나 그를 데리고 하늘나라로 떠난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장발장과 같을 것이다. 항상 고민하고 걱정하지만, 그 속에서 행복과 성취 또한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눈 감는 순간에는 본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모든 기억이 생생하게 또는 흐릿하게 스며들 것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나와 가족 그리고 사회를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면, 오히려 그 인생은 한 단어로 명명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온 우주와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인간의 일생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겠지만, 그 속에서 많이 고민하고 번뇌하며 최선을 다한다면, 이 찰나는 그 무구한 역사의 어느 순간보다도 빛날 것이다.
아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어른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삐걱거리는 경첩으로 현재를 인식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녀는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삶은 어떤지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다. 아이들은 어른에게 의존하지만 어른도 아이들에게 의존한다. 아이들로 인해 어른은 삶의 취약성과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 37 페이지
육아와 양육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다. 물론 부모의 독자적인 의사결정으로 인해 임신과 출산이 일어날 수 있지만, 육아라는 행위는 쌍방향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자식은 부모에게 경제적인 도움과 성장을 위한 다양한 지원을 받지만, 자식이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는 부모 또한, 외부에서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결국 부모와 자식은 서로에게 강한 긍정적 영향과 행복을 가져다주며 ‘가족’이라는 가장 결속력이 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나의 스승이 이 모든 사고를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해주었다.
'민규야, 형이 주희 2살 때 쓴 일기를 봤는데, 거기에 이렇게 써져 있더라, <주희야, 아빠를 키워줘서 고마워>'
길고 다사다난했던 결혼 관계를 끝내는 것은, 감성 충만했던 추억의 태피스트리를 만든 수많은 실을 끊는 일이다. 이혼이 나쁜 일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배우자 사이의 실이 오염되었을 때는 이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혼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대가가, 끊어진 관계의 길이와 강도에 비례하는 대가가 따른다. 그들은 결국 연결된 존재가 아닌, 분리되고 고립된 존재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 42 페이지
저자는 이 책에서 대인관계를 ‘실’로 표현한다. 남녀의 결혼생활 속에는 많은 실들이 연결된다. 물론 가장 단단하고 두꺼운 실은 배우자 간의 실일 것이고, 더 나아가 가족 구성원 간의 실들도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게 연결될 것이다. 또한, 자녀가 생긴다면 새로운 실들은 또 다시 많은 사람들 간에 새롭게 이어진다. 따라서 이혼은 이 수많은 실들을 한번에 끊어내는 행위로, 이로 인해 많은 허무함과 허탈함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이는 연애를 끝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허무함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 이혼이라는 꼬리표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만큼 결혼이라는 제도에 신중하고, 관련된 여러 환경과 조건들을 따져본다. 또한, 가족과 가족이 만나 화합을 이루는 행위이니 만큼, 더 많은 요소들을 고려한다. 치명적인 사유가 있다면 신속하게 이혼을 결심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 수많은 실들의 절단에 있어 다시 한번 결정에 있어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르웨이에서는 어떤 음식이든 야외에서 먹을 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북쪽의 거친 지형과 혹독한 기후에 신체가 적응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데, 먹는 행위에서 오는 자극을 빼앗겼던 신체가 혹독한 야외에서 그 자극에 특히 강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몇 시간 동안 눈 속을 헤치고 마침내 비바람이 들이치지 않는 곳을 찾아 마른 바위에 앉은 뒤에 비로소 배낭 속의 오렌지와 초콜릿을 음미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 75 페이지
결핍이 행복의 전제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시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예쁜 탁자 위의 오렌지와 초콜릿 또한 맛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극적으로 베어 낸 오렌지의 맛은 아마 차원이 다를 것이다. 시장이 최고의 반찬이라는 말이 있다. 결국 사람이 느끼는 쾌감과 행복은, 어느 정도의 결핍 속에서 극대화됨을 알 수 있다.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결핍 자체가 희소한 자원이 된 것처럼 보인다. 관계보다 개인을, 지속 가능성보다 성장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는 끈, 실, 필라멘트가 얇아지고 때로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진다. – 117 페이지
결핍은 곧 원동력과 같다. 우리는 결핍된 어떤 것을 얻기 위해 나의 안락함을 희생하며 노력한다. 그리고 그 결핍을 해소하면서 성취와 행복을 느끼고, 더 궁극적인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게임이 너무 쉬우면 인기가 없다. 어느정도 어려운 과제들과 미션들, 그리고 이를 해결했을 때의 보상이 있어야 유저들은 해결 방법을 연구하고 계속적으로 도전한다.
따라서 결핍은 인생이 쉽게 미끄러지지 않게끔 하는 스노우체인과 같다. 이 인생의 스노우체인은 필요한 수준의 마찰을 만들어, 삶의 목표라는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게끔 추진력을 만들어 준다.
느림은 필요불가결하다. 느린 리듬을 향한 발걸음에는 방목장을 돌아다니는 소의 시간 감각에 나를 맞추거나, 핸드폰을 넣어두고 끝없는 파동의 브루크너 교향곡을 듣거나, 라이밍을 예술의 한 형태로 도야한 트리니다드 사람들처럼 세련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시간을 즐기는 것들이 모두 포함된다. 신용카드를 늘 가지고 다니는 도시의 사람들은 느리게 사는데 필요한 기술을 다시 배워야 한다. – 164 페이지
21세기 현대는 항상 빠르고 신속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하고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뒤쳐지고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그게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항상 숨을 헐떡이며 조급해야 하는 것인가? 인생의 원초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그것이 행복과 관계에서 비롯된다면 한 템포 쉬어 가는 여유도 필요하다. 급하면 점점 시야가 좁아지고 주위가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조금 느리게 걸어가며 주변도 챙기고 조금 더 멀리 보는 습관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주제는 매우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현실에서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을 여과 없이 내뱉는 삶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어색한 상황을 무마하거나 피하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 번 자신의 생각을 속으로 삭힌다. – 271 페이지
영화 <그곳에선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의 컨셉을 설명하며, 진실과 거짓의 균형에 대해 이야기 하는 대목이다. 오로지 진실만이 존재하는 인생 또한 그에 따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며,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이 둘의 균형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최근 유튜브에 ‘거짓말 없는 세상’이라는 스캐치 코미디가 유행이다. 위 영화와 동일하게 여러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본인들의 생각을 여과없이 뱉어 버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 상황 자체가 웃기다는 점과, 서로 젼혀 대화가 되지 않고 자기 할말만 한다는 것이다. 결국 진실로만 가득 찬 세상은 웃음거리이며, 불통의 세상임을 반증한다 할 수 있다.
플라톤의 ‘피아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하는 것은 죽음을 위한 준비하고 말했다. – 283 페이지
내가 생각하는 철학은 삶의 살아가는데 있어 그 방향성의 잣대이다. 결국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으로 살아가 희망하는 목적지에 다다른다는 것이고, 그 목적지에서 나의 삶은 만족스럽게 마감된다. 이를 표면적으로 표한다면 결국, 철학을 통해 인생의 마침표를 잘 찍을 수 있고, 이는 좋은 죽음으로 향하는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종교의 핵심은 미신과 폭력이 아니다. 신과 악마, 천사에 관한 이야기의 핵심은 그들이 진짜 있느냐가 아니라, 이 이야기가 그들과 거대한 세상 속 인간의 의미에 대해 나누는 대화라는 사실이다. – 294 페이지
인류 역사에 있어 종료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로 인해 테러, 전쟁, 살인 등 많은 참혹한 사건들도 발생할 정도이니 말이다. 종교는 내세라는 키워드와 불가분 하지만, 결국 이는 현생의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다. 지금의 삶이 기준이 되어, 이에 따라 저승이며 다음생이 결정되고, 지금의 행동 하나하나가 훗날 영겁의 시간속에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나는 무신론자이며 내세를 믿지는 않는다. 다만, 종교라는 제도가 현재의 사람들의 삶을 올바르게 바꾸고, 세상을 더 윤택하게 만들 수 있게끔 사람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좋은 죽임이란 잘못을 보상하고,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최선을 다하고,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후에 맞이하는 죽음이다. – 296 페이지
죽기전까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기 암 환자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대목이다. 나에게도 시한부의 삶이 선고된다면, 내가 잘못했던 것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 그리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들 것 대한 후회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남은 여생을 최대한 잘 살아내어, 최소의 후회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날 것이다.
이별은 항상 힘들다.
마음이 아프고 무너져 내리며, 나의 순간의 결정이 정말 맞는 것인지 계속 떠오른다.
심지어 훗날 인생을 살다 이 결정에 대해 후회하는 날이 오진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이 책을 꺼내 들어 인생에 대해 더 고민해본 사람들에게, 연인과의 이별이 인생 전체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인지와, 내가 이토록 힘든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고 싶었다.
그녀와의 추억, 미래에 대한 믿음,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약속들로 인해 굵어지고 단단해 진 실을 끊어 버리기가 쉽지 않다. 아니, 너무 어렵다. 그 실의 가닥이 하나씩 잘려 나가는 순간순간이 나의 지난날의 말과 행동을 모두 부정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같이 있었던 순간에는 계속 나 자신을 우선적으로 생각했었는데, 끝나고 보니 그 안에서 내 이기적인 말과 행동으로 인해 그녀가 얼마나 슬프고 힘들어 했을까 상대를 더 생각하고 걱정한다.
물론 선택을 번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녀와 꿈꿨던 미래와 약속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었고, 그녀가 나에게 준 많은 행복과 배려는, 이기적이었던 나에게 있어 과분할 정도로 컸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