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상봉한 완전체
코벤트리 숙소 예약을 마지막까지 미룰 정도로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낡고 오래된 느낌에 저렴하고 깔끔한 곳은 다 외곽에 있어서 한참을 망설였는데 렌터카를 빌리기로 결심하고 지도를 넓혀 찾다 보니 새로 생긴 호텔을 운명처럼 발견했다. 다소 외곽이라 넓은 지상 주차장도 무료. 모든 투숙객에게 조식이 무료라길래 큰 기대 없이 내려왔는데 세상에! 너무 훌륭하다. 조용하고 가족적인 시골 분위기도 좋고 깔끔하고 세련된 대학교 기숙사 느낌의 방과 식당도 대만족. Hampton 체인에 대한 호감도 급상승하며 배부르게 아침을 먹고 일정을 시작했다.
기숙사에 짐정리를 하러 가기 전, 마트에 들렀다. 기숙사 입소할 때 가족과 같이 온 친구들은 딱히 일정이 없어서 방학 일주일 동안 기숙사에 있는다길래 한국음식을 좀 해줘야겠다 싶어 장을 보러 갔다. 웬만한 건 아시아식자재 매장에서 사 먹을 수 있을듯해서 보쌈과 나물, 된장국을 만들어주기로 결정. 아이가 자주 가는 마트에 엄마와 온 게 너무도 신기하고 설레는 딸은 카트를 챙기고 결제까지 일사천리로 능숙하게 해낸다.
라운드 어바웃에 심각하게 불안증이 있는데 이 동네는 라운드 어바웃이 아주 징검다리처럼 퐁당퐁당이다. 대낮 시내운전의 신호등 체계에 네비 보느라 바쁜데 조수석에 탄 딸은 재잘재잘 수다가 끝이 없다. 걸어 다니거나 가끔 우버를 타고 나가보던 길을 엄마차를 타고 간다는 즐거움일까 엄마가 옆에 있다는 안심일까 운전하랴 대화에 호응하랴 원래 한 손운전하는 엄마는 엉덩이 바싹 붙여 두 손 꼭 핸들 잡고 그렇게 기숙사로 향했다.
어젯밤에 대강 냉장고에 밀어 넣었던 아이스백 음식들 다시 꺼내서 칸별로 정리하다 보니 냉장고가 지저분해서 다시 꺼내서 청소부터 하고(아이들이 공용으로 쓰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듯, 그걸 지나치지 못하는 만인의 엄마맘도 어쩔 수 없고) 이민자 가방 2개 안에 든 짐 모두 방안 곳곳에 정리하고 주방에서 친구들과 나눠먹을 점심 차려주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외부인이 기숙사에 들어오면 하우스 퍼어런트가 동행하고 감독을 해야 해서 나를 감시(?)해야 하는 청년에게 미안해서 축지법을 써서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 2시간을 압축해서 할 일 다 끝내고 아이들이 밥 먹는 동안 기숙사를 나와서 차에 앉아서 기다렸다. 아무래도 내가 그 공간을 벗어나야 그 청년의 업무도 종료가 되니까. 친구들이 밥과 반찬을 하나도 남김없이 너무 맛있게 다 먹었단다. 짐을 챙겨서 나온 딸을 태우고 이제 렌터카를 다시 히드로 공항에 반납을 하고 둘째 딸을 만나러 출발했다. 학교 체육대회에 본인이 빠지면 친구들이 서운해서 안된다며 꼭 참석해야 한다는 의사를 존중하여 하루 늦게 출발하는 둘째 딸은 우리 여행짐 캐리어 2개를 가지고 실시간 카톡 중계를 하며 씩씩하게 혼자 오고 있었다(나중에 들어보니 기내 식사며 간식 모두 다 알뜰히 받았고 너무 맛있었다고! 혼자만의 시간을 아주 제대로 즐기고 온듯)
휴게소에 들러 주유를 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에 아이에게 라테 주문을 부탁했는데 나와보니 한 손에 커피를 쥐고 있다. 예전에는 여행을 가서 주문을 하라고 등 떠밀면 마지못해 억지로 움직이고 참 머뭇거렸는데 한 달 반 사이 내가 모르는 낯선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놀랍기도 하고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이 아이가 커가는 모든 과정을 내 눈에 담고 내가 함께 곁에 있고 싶었는데... 이제 조금씩 내가 모르는 아이의 모습을 어색하지 않게 당황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하는 숙제가 주어진듯하다. 그렇게 건네준 라테를 쥐고 아이 뒤를 따라 걸었다. 뒷모습은 강아지 인형을 안고 다니는 여전히 내게는 꼬맹이인 그녀인데... 유독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 가는 셔틀을 기다리는데 둘째 딸이 이미 짐을 다 찾고 나왔단다. 터미널 4로 가는 셔틀보다 2&3로 가는 셔틀이 더 자주 오길래 2&3에서 만나기로 하고 갔더니 캐리어 2개를 양손에 밀고 무료 티켓 발권해서 지하철을 타고 온 둘째 딸내미가 떡하니 플랫폼 출구에 서있다. 보자마자 함박웃음 터지는 자매의 상봉은 런던 시내로 가는 지하철 내내 마주 앉아 수다로 이어졌고 여행 내내 수많은 이동 중에도 나에게는 캐리어를 밀 기회조차 주지 않는 두 딸 덕분에 나는 늘 그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양손 편하게 따라다닐 수 있었다.
호텔 라운지 음식으로 배가 차지 않는 청소년들이어서인지, 그냥 구경이 하고 싶어서인지 다시 패딩턴역으로 내려와서 부리토 둘이서 사이좋게 나눠먹고 마트 들러 아이쇼핑 신나게 하더니 간식 집어서 다시 방으로 올라왔다.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부리토 반 조각으로 느낄 수 있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