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화가 빠른 그녀 & 박물관보다 라자냐가 좋은 그녀
매트로폴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 후 버스를 타고 킹스크로스 힐튼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당일 할인티켓 예매를 도전했으나 실패. 둘째가 너무나 아쉬워했다. 정가로라도 예매해 줄까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내일 다시 도전해 보겠단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라운지에 들러 음료수 마시면서 오늘 일정을 확인하고 길을 나섰다. 비가 오길래 둘째와 내가 급하게 우산을 펴고 있으니 큰딸이 덤덤히 모자를 꺼내고 장갑을 끼더니 영국에서는 이런 비에는 우산을 안 쓴다며 쿨허게 앞장서서 걷는다. 비맞는 모자가 내모자여서 조금은 당황했지만!
생각보다 비가 꽤 내리는데 문제는 바람이었다. 바람 때문에 우산이 자꾸 뒤집어져서 앞으로 걷기가 힘들긴 했다. 그래도 우산을 포기 못한 우리는 어쨌든 쓰고 걷는데 지나면서 보니 우산을 쓴 사람이 없긴 하더라는...
첫 번째 목적지는 숙소와 가까운 영국박물관이었다. 20분 정도 걸어서 도착을 했는데... 문제는 줄이 너무 길었다.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커다란 박물관을 한 바퀴 돌 정도로 끝이 없었다. 결국 입장을 포기하고 버스를 타고 자연사박물관으로 향했다. 문제는... 자연사박물관 역시 줄이 길다는 것! 그나마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길래 일단은 대기줄에 섰다. 기다리는 동안 계속 갈등되는 나와 다르게 큰딸은 완고했다. 생물학 수업을 듣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자연사박물관에 가서 구경을 하고 리포트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둘째와 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한 시간 반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입장을 했고 아이들을 올려 보내고 나는 빠르게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6년 전과 공간과 동선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카페가 건물 중앙에 있었고 하이티가 참 맛있었는데...
혼자이다 보니 테이블을 비우고 주문하러 갈 형편이 못돼서 그냥 앉아있는데 둘째가 왔다. 배가 고프다길래 알아서 주문하라고 보냈더니 라자냐를 가져왔다. 결국 긴 기다림 끝에 나는 의자를, 둘째는 라자냐를 얻은 셈. 한참 둘러본 큰딸이 왔길래 얼른 숙소에 가자고 일어서는데 아까 지나친 중고서점에 가고 싶단다. 다들 안 가면 혼자 다녀오겠다더니 정말 혼자서 서점을 들렀다가 숙소로 왔다. 심지어 곧장 온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서 라운지 음식사진 보내옴-- 이젠 엄마보다 훨씬 길도 잘 찾고 잘 다니는 현지인 느낌의 딸이 낯설지만 대견하기도 하고 내 역할이 점차 사라지고 있음에 아주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고...
라운지에서 저녁을 먹고 뮤지컬이 없어 여유가 생긴 저녁, 각자 할 일을 조용히 하며 긴 하루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