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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차] 세 모녀의 가을여행

함께 그리고 각자의 시간

by 오후의콘파냐

킹스크로스 더블트리는 의외로 크로와상 맛집이었다!

갓 구운 뺑오쇼콜라와 크로와상을 트레이 가득 올려놓는데 갓 구운 고소한 빵 냄새가 레스토랑 입구부터 아주 고자극이다. 금세 동이 나서 직원이 트레이에 넣고 있을 때 바로 가져와서 뜨끈하게 먹을 수 있는 점도 장점! 가을에 수박이라는 호사도 누리면서 든든하게 아침을 시작했다.

DoubleTree by Hilton London Angel Kings Cross

오늘 첫 여정은 버로우마켓.

동선을 미리 검색한 아이들을 따라서, 지하철 티켓 사 오면 받아서 구글맵 보면서 걷는 아이들 뒤를 따라서 그렇게 흘러 흘러 시장에 도착을 했다. 볼 것 많은 만큼 런던사람들 다 여기 모였나 싶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인파 속에 길거리에 서서, 계단에 앉아서 어디서든 뭔가를 먹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 아이들이 버섯 라자냐를 사 왔다. 예전에는 이곳 빠에야가 대세였는데 요즘은 버섯 라자냐로 인기가 옮겨간 듯하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서서 한참을 먹고 있는데 조용히 사라졌던 큰 딸이 자기 용돈으로 피시 앤 칩스를 사 왔다. 타르타르소스는 왜 없냐고 했더니 깜빡했는데 다시 줄을 서기에는 너무 길어서 그냥 왔다고 그냥 먹자는 거다. 아니... 피시 앤 칩스에 생명은 소스인데! 결국 내가 가서 대기하고 있는 분께 양해를 구하고 소스만 빠르게 집어왔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문제는 버섯 라자냐의 느끼함이 튀긴 피시 앤 칩스에서 시너지가 폭발해 버렸다. 시장에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많아도 더 이상은 무리였다.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 느끼함이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상황. 결국 나는 커피를 찾아 급하게 자리를 떴고 아이들은 더 구경을 하다가 카페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Fish! Borough Market ㅣ Wild Mushroom Risotto ㅣ Monmouth Coffee Company
Borough Market

근처에 타워브리지를 볼 수 있는 파이브가이즈 매장이 있어서 다음 목적지로 잡고 향했다. 장소는 잘 찾았고 운 좋게 테이블도 금방 착석을 했는데! 문제는 도저히 햄버거로 식사가 이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쉐이크라도 마시자며 아이들이 주문을 하러 내려갔다. 잠시 후 올라오는 아이들 손에 쉐이크가 두 잔이다. 각자 마시고 싶었나 보다 했는데 표정이 아주 싱글 방글 오자마자 아주 신이 났다.


"엄마! 우리가 주문한 쉐이크 픽업을 하는데 직원이 이 오레오 쉐이크 주문하고 안 가져간 건데 너네 마실래? 하길래 알겠다고 하고 가져왔어요."

"실은 내가 피넛 마시고 싶고 언니가 오레오 마시고 싶었는데 피넛만 주문한 거였는데 완전 대박이죠?ㅎㅎ"

그렇게 아이들은 느끼하던 속사정을 셀프 리셋하고 1인 1 쉐이크를 양손에 잡고 행복해보였다. 작은 행운 하나에도 이렇게 해맑게 행복할 수 있는 그녀들의 청춘이 부럽다. 브리지타워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엄마가 생각이 나서 페이스톡으로 전화를 해서 경치를 보여드리고 다시 밖에서 사진 몇 장 남기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Five Guys Tower Bridge


버스를 타고 강을 건너 6년 만에 다시 들른 코벤트 가든에서 뭐가 바뀌었나 구경하고 큰 딸이 영국의 교보문고라는 서점에 들러서 책을 고를 동안 둘째와 이웃가게 구경도 하고



줄이 너무 길어서 못 갔던 영국박물관을 그 당시 바로 온라인으로 예약을 했었다. 예약시간에 맞춰 갔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예약 시간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일 예약이 있는지만 확인할 뿐. 그 시간에 맞춰 왔다가 바로 입장가능한 건 아니고 예약자만 줄을 설 수 있는 시스템인 듯... 아무튼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바로 입장할 수 있었고 6년 전 사진 찍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념사진 찍고 관람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구경하는 동안 체력을 비축해야 하는 엄마는 로비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카페에서의 기다림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


The British Museum

호텔로 돌아와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첫째는 킹스컬리지에 다니는 언니와 저녁약속이 있어서 나가고 둘째는 오페라의 유령을 보러 혼자 버스를 타고 극장에 갔다. 둘째는 긴장반 설렘반으로 역시나 실시간 카톡 상황중계를 하면서 무사히 극장에 잘 도착을 했고 뮤지컬이 너무 재미있다고 감탄에 또 감탄을 하더니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를 반대방향으로 타서 부랴부랴 내려서 다시 타는 해프닝 속에 무사히 잘 돌아왔다.

호텔 앞 둘째를 기다리던 버스정류장, 우리를 기다리던 인형

엄마 꼭 버스정류장에 나와있어야 된다는 간곡한 부탁에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치 한국에서 학원 마치고 학원 셔틀버스 내리는 아이를 기다리는 순간과 비슷하지만 너무나 다른!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뮤지컬 감동을 쏟아내느라 폴짝이기 바쁜 딸과 그렇게 팔짱 끼고 낙엽 흩날리는 길을 걸어 숙소로 왔다. 큰 딸은 1차 피자집에 이어 2차 버블티집에서 마감시간이라고 시나몬롤을 공짜로 줬다고 시나몬롤 좋아하는 동생 얼굴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종이봉지 내밀며 뿌듯해함이란... 이번 여행에서 뮤지컬을 두 편이나 봤다고 신이난 둘째도 선배언니를 만나고 온 큰딸도 용기와 힘을 얻은 듯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킹스크로스에서의 2박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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