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버킷리스트에 모셔간 딸들
여전히 아침을 든든히 먹고 크로와상 맛집을 마지막으로 음미하고 짐을 가지고 걸어서 다음 숙소로 향했다.
오전에 도착했음에도 3명이 잘 수 있는 제일 기본방을 포인트로 예약했음에도 바로 입실 가능한 데다 스위트로 업그레이드해 주는 행운 덕분에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객실 바로 건너에 The British Library가 있어서 아이들이 다녀오는 동안 짐정리를 하고 쉬다가 첫째가 객실에서 학교 숙제를 하는 동안 둘째와 주변 탐방 겸 세인트 판크라스역 상가 구경을 다녀왔다.
점심은 근처 맛집을 찾아보다가 터키 음식으로 결정! 맛집 별점이 높은 집인 데다 웨이팅도 있다. 메뉴를 한 개씩 시켰는데 스팸볶음밥에 라자냐, 요구르트, 후무스, 통밀팬케이크 느낌이라 맛있게 먹었는데 1/3도 안 먹었는데 배가 부르기 시작하고 간이 너무 쎄서 다 먹지 못 먹고 남기고 나왔다. 첫째가 영국음식이 짜서 얼굴이 붓는 것 같다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나서... 열심히 먹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평생을 싱겁게 먹였는데... 나야 여행 며칠이지만 아이는 간이 쎈데도 먹어야 하는,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 옆에서 음식을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느라 더 먹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서 좀 쉬다가 드디어 나의 버킷리스트! 토트넘경기장으로 향했다. 숙소를 킹스크로스역 앞으로 잡은 것도 경기장에 빠르게 이동하고 늦은 시간 여자 셋 귀가하기 안전한 곳이 필요해서였다.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 축구에 관심 없는 딸 둘을 데려가기 위해 엄마는 생전처음 축구클럽 멤버십에 가입을 하였고 연석 세 자리는 못 구했지만 나름 LW이 잘 보이는 앞자리 가까운 곳들로 예매 성공. 경기장 셔틀도 미리 예약했다.
지하철 타기 전, 낮에 둘째와 가서 발견했던 디저트 맛집에 또! 들러서 프랄린과 브리오슈빵으로 만든 카프레제 샌드위치를 구입. 큰 딸은 지하철 안에서 샌드위치를 당당히 먹는다. 우산 안 쓰고 비 맞던 모습에 이은, 감히 우리는 따라 할 수 없는 낯선 현지인의 모습.
(다음날 요크 갈 때 또!! 들러서 프랄린, 초코, 카프레제 샌드위치 구입. 1박 2일 동안 세 번 감. 메뉴는 동일--)
카라바오컵, 토트넘훗스퍼 VS 맨체스터시티 @토트넘핫스퍼 스타디움
비록 내 최애 선수가 뛰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새벽마다 모니터로 보던 경기장에 직접 왔고 그라운드의 잔디 냄새도 맡을 수 있었고 옆에 앉은 현지 아저씨와 수다도 떨고 중계에서는 응원가만 들려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현지팬들은 선수들에게 대화하듯 진심으로 응원하는구나 이모저모 새롭고 신기하고 행복했다. 눈물날만큼! 이제 다시 모니터로 보겠지만 기념품으로 산 코스터에 맥주잔 올려놓고 열심히 응원해야지! 이 분위기를 기억하면서!
"엄마, 몇 시간 해요?"
"엄마, 인터미션 있어요?"
경기에는 관심이 1도 없다가 경기장의 드넓은 초록 잔디와 조명과 음악에 같이 설레기 시작한다. 워밍업 하는 선수들 1도 관심 없더니 "저기 홀란드 있네?" 한마디에 또 난리가 났다. 참 다행이었다. 둘째가 유일하게 아는 축구선수가 있는 팀과의 경기여서.
"엄마, 토요일에 또 보러 올 거면 나도 같이 가도 돼요?" 큰딸도 축구가 좋아졌나 보다. 엄마에게 스며드는 딸들, 엄마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 드라마, 예능보다 축구가 재미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거든.
경기가 끝나고 지하철역 가는 길에 길을 물어오는 젊은 여성분이 있었다. 혼자 와서 낯설어해서 (우리도 처음이면서) 같이 가자고 하고 내가 길을 물어가며 같이 셔틀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탔다. 나란히 같이 앉아서 오면서 축구 이야기도 하고 여행이야기도 하다가 킹스크로스역에서 우리가 먼저 내렸다.
"엄마는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이랑 그렇게 친해져요?"
극 E성향의 엄마가 한참이나 신기한 자칭 I 딸들의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