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마지막으로 쓴 글이 작년 9월이다. 벌써 봄이 왔는데.
많은 일들이 있었다. 굳이 다 언급하진 않겠지만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례로 난 1월 2일부로 명동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 기회를 갖게 된 것에도 우여곡절이 좀 있지만 생략하도록 하고, 지금은 3개월 차로 어느새 업무가 손에 익어 큰 어려움 없이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다.
방금의 문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하루하루가 흘러가고'있는 것에 있다. 내 삶의 주체가 내가 되고 싶은데, 난 그냥 흘러가는 데로 살고 있는 느낌이다. 예전엔 생각이 너무 많았었다. 10대의 끝자락에 홍역처럼 앓은 우울증의 잔해로 인한 탓인지 2022년 초 무렵까지 난 정말 생각이 많았다.
사실 생각이 많았다기 보단 내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일들이 나를 무력하고 축 쳐지게 만들었다. 나쁜 습관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의지할 곳이 마땅치 않았고, 홀로서기에 능숙하다고 자부했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난 정말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아이인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어쩌다 보니 의지할 구석이 생겼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다만 너무 의존적으로 변한 것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자 한다. 마음에 안정감은 들지만, 때문에 내가 좋아하던 내 삶의 고민들과 씨름하는 시간이 없어지다시피 되었다. 음.. 이건 정말 좋지 않다.
그리고 9 to 6을 감당하다 보면 퇴근 후엔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기 십상이다. 학회 활동이 있을 때에도 흐지부지해내기만 하는 느낌으로 내가 그것에 대한 ownership이 들 정도로 열심히 임한 적이 없다. 이러한 문제는 내가 물리적인 체력과 정신적인 체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난 정말 허약한 체력을 가지고 있다.
이전에는 문제 되지 않던 것들이 더더욱 문제로 수면 위에 올라온 이유는... 난 이제 대학교가 1년 남은 4학년이기 때문이다. 돛대를 움직여 항로를 정해야 하는 마당에 난 아직 어떤 배를 탈지 모르는 실정이다. 많이 불안하다. 정말 많이.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을 만나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농담 따먹기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너무 많아서 없는 건지 아예 없어서 없는 건지 모르지만, 정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우겨서 이번 학기는 휴학을 하고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내가 빨리 졸업을 해야만 하는 부모님의 사정과 사실 스트레이트 졸업을 해 칼취업을 하고 싶었던 내 안의 목표가 상충해 마음이 조금 괴롭다.
죄책감이 든다. 휴학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야 하는데, 지금 하는 일은 나에게 더 이상 큰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하나 배운 것은, 나는 복장이나 사내 문화가 아주 많이 자유로운 그런 직장에 다니고 싶다는 것과 사람과의 소통이 없는 직업이 아니라 interactive 한 쪽의 일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은 조용하고, 안정적이고, 반복적이며 궁극적으로 재미가 없다.
내게 재밌을 것만 같은 그런 일을 하고 싶어 열심히 지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지금 회사는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으며 그럴 수 있는 베짱이 내겐 있는 것 같다.
음. 그런데 연락이 오지 않는다. 약 한 달간 열심히 이력서를 보냈지만 단 한 군데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물론 관련 경력이 없는 내 이력서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학기 중에 인턴을 구하는 건 비교적 쉬울 것이라는 판단이었는데, 내가 많이 부족한 탓일지 업황이 좋지 않아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둘 다인 것 같다.
업황이 좋지 않은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일단 보류하고, 내가 더 발전된 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 그래도 없는 체력을 최대한 똑똑하게 배분해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의지가 있는 나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지금 나는 다니는 회사가 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므로, 간절함이 부족한 걸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지원공고가 뜨는 대로 지원해 볼 예정이다. 지원서를 무작정 넣는 것 말고도 공부가 필요하겠지. 퇴근 후나 출근 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다. 일단 그렇게 할 수 있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부터 해야 하나 싶다.
어제는 지원서를 보낸 메일 목록을 보며 꽤 우울했다. 울컥해서 자꾸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참았다. 어쩌겠어. 괜찮아.
오늘 사무실에서 친한 인턴 동기 Y와 채팅으로 이야기하다가 문득 이 짤이 생각났다.
그냥 하면 된다. 뭐.. 느릴지언정
복학 전 남은 3월과 4, 5, 6, 7, 8월을 의미 있게 보내자. 브런치도 좀 자주 쓰고. 잊어버리니까
작은 일이지만 오늘 퇴근 후 건물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이 글을 적고 있다. 어제를 포함한 대부분의 날들에 난 퇴근 직후 귀가하여 저녁을 아무거나 주워 먹고 배가 꺼지지 않은 채로 잠들었던 것에 비하면 굉장한 성취다. (난 이런 것에도 많은 셀프칭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