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으면 골골골 자체 모터 풀가동, 밤이 되면 포도알만큼 커지는 눈동자, 매혹적인 아이라인, 곧게 뻗은 수염, 요가 고수가 울고 갈 정도로 유연한 몸, 촉촉한 분홍 코, 모찌 또는 솜방망이라 불리우는 둥글고 보송한 앞발’
이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는 누구일까?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고양이’다. 집사 경력 10년 차. 나는 살면서 네 마리의 고양이를 만났고, 지금도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내 인생을 거쳐간 반려들의 이야기를 깜짝 공개해 보려 한다.
故 쌩까(♀). 2007 ~ 2013
쌩까는 남자 친구가 유학을 떠나며 외롭지 말라고 입양시켜준 생애 첫 고양이다. 흰색 페르시안이었고 조인성을 능가하는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쌩까를 키우던 중 달님이와 햇님이를 입양하게 되었다. 쌩까는 특히 달님이와 애틋한 날을 보내며 잘 지냈다. 함께 한지 7년째 되던 해 초겨울, 언제부턴가 쌩까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았고 그 모습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에서 나와 쌩까를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의사 선생님은 그늘진 얼굴로 어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팀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고양이가 아파 연차를 내야겠다고 말했다. 그 길로 서울 강남에 있는 유명 동물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당시 서울과 3시간 30분 거리의 지방에서 살고 있었다.) 입원 일주일째, 아침에 출근해서 막 사무실 자리에 앉았는데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곧 운명할 것 같으니 빨리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쌩까가 곧 죽는다고 했다. 하지만 고양이 때문에 또 연차를 내야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서 우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쌩까는 200만 원의 병원비만 남기고 떠났다.
애완동물 사후 장례 절차에 대해 알아보았다. 사체를 냉동고에 넣었다가 택배로 보내면 화장을 한 뒤 다시 가루로 보내준단다. 쌩까를 차마 냉동고에 얼릴 수 없었다. 그리고 한다고 한들 그 가루가 진짜 쌩까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쌩까는 지인이 운영하던 펜션 귀퉁이에 묻혔다.
故 햇님(♀) 2012 ~ 2016 / 달님(♂) 2012 ~ 현재
함께 일하던 동료 어머님이 기르던 페르시안 ‘키티’가 밤마실을 나갔다가 도둑고양이에게 일을 당한(?) 후 다섯 남매를 낳았다. 햇님이와 달님이는 그중 두 마리였다. 햇님이는 삼색이었고, 달님이는 고등어 무늬였다. 달님이는 유독 정이 많아 누구나 다 사랑해주는 착한 고양이였고, 현재까지 나와 잘 살아 주고 있는 고마운 녀석이다.
쌩까와 달님이가 개냥이였다면, 햇님이는 전형적인 고양이의 성격을 가졌다. 시크해서 좀처럼 사람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어느 날 야간 출근길, 햇님이가 한참 안 보이는 것을 의아해하며 동생들에게 찾아보라고 말하고 출근을 했다. 찾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와 근무하는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이 열린 사이 나갔나 싶어 18층이었던 아파트 복도와 계단을 다 뒤지고 다녔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우리 집은 11층이었다. 설마 설마 하며 베란다 아래 화단으로 가보았다. 햇님이는 이미 굳어 있었다. 화단에 주저앉아 미친 사람처럼 울고, 방에 들어와서 울고, 일주일 내내 울었다. 햇님이를 거두어 동네 뒷산에 묻었다.
방톨이(♂) 2016 ~ 현재
쌩까와 햇님이를 보내고 혼자된 달님이를 위해 입양을 결정했다. 노련한 집사답게 샵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길고양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긴 갈색 털로 보아 뼈대 있는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흰색 목도리를 두르고, 흰색 양말을 신은 것이 심상치 않다. 얼굴은 한 성깔 하게 생겼다. 하지만 매서운 얼굴과는 다르게 아주 귀여운 목소리를 가졌다. 길고양이 출신답게 사람을 극도로 경계한다. 입양 초기에는 침대 밑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동거 연차가 올라감에 따라 조금씩 가까워져 가고 있는 중이다.
기분 좋을 때는 와서 부비부비를 해 주고, 기분이 안 좋을 때는 귀신 본 것처럼 펄쩍 놀라며 사람을 피해 다닌다. 종잡을 수 없는 다혈질의 성격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정이 많은 달님이가 유일하게 귀찮아하지만 아랑곳없이 따라다닌다. 비록 성질은 더럽지만 틀림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양이다.
신이 인간에게 호랑이를 만질 기회를 주기 위해 고양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 고양이는 즐거울 때에도 기쁠 때에도 늘 우리의 곁을 지켜준다. 물론 오랫동안 애정 한 반려동물의 죽음 앞에서 한없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지개다리를 건너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의 가슴에 작은 별이 되어 남는다.
가끔 달님이와 방톨이를 보면, 이 작은 생명이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냥 길고양이로 살았더라면 짧았지만 더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의지와 상관없이 중성화 수술까지 당하고 평생을 좁은 집에 갇혀 살게 되었으니 고양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1년에 로드킬을 당하는 고양이가 3천에서 4천 마리나 된다고 한다. 길에서 온갖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사는 길고양이의 수명은 불과 2년에서 3년. 잔인한 방법으로 고양이를 학대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자신을 방어할 무기조차 가지지 못하고 한없이 약하게 태어나 최선을 다해 사는 나약한 생명. '고양이'.
평생을 자신을 위해 사는 집냥이 들에게 집사들이 조금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더불어 길거리에서 외로이 떠도는 길냥이들에게 사람들이 조금 더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