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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Feb 16. 2021

책 볼 시간이 없는 책방 주인

서점에 들어오는 책은 어떻게 골라야 할까?

    

인테리어에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닙니다. 책방을 꾸밀 때 그저 책방이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 분위기라면 좋겠다는 바람만 있었습니다. 다행히 공간과 저의 궁합이 잘 맞았던지 아늑함과 따뜻한 느낌을 주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책방 이전을 한 후 글쓰기, 영화, 인문학 모임 등이 자연스레 생겨났고, 마두동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출도 훌쩍 뛰어올랐습니다.      


겉으로 보면 책방지기는 낭만적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출근해 책방 문을 열면 책방 청소 외에도 화장실, 커피 관련 집기 관리 등 눈에 보이지 않게 챙겨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숫자를 싫어하는 터라 한 달에 한번 정산을 할 땐 머리를 쥐어뜯어야 할 지경입니다. 하지만 여유가 될 때 좋은 책을 찾아보고, 손님들과 유대관계가 쌓여갈수록 책방 일이 좋아졌습니다. 내가 소개한 책이 좋았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가장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코로나 19 예방에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에 책방 모임을 모두 중단하며 서점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책을 찾아 소개하고 전달하는데 좀 더 집중해 보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약 1년 남짓의 경험으로 배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책방의 자존심은 누가 뭐래도 서가에 달려있다는 사실입니다. 서점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책’이며 책방지기는 모름지기 책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작업실 서가도 처음에는 아주 허술한(?)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나은 모습으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오늘은 너의 작업실 서가 구성 원칙을 몇 가지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서가에는 근사해 보이는 책이 아니라 책방지기가 직접 읽고 좋았던 책으로.    

처음 책을 고를 땐 사람들이 봤을 때 그럴 듯 해 보이는 어려운 책, ‘흠, 이 서점 운영자는 책을 좀 읽었군.’라는 말을 들을 만한 책들을 들여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초보 책방지기 주제에 겉멋이 잔뜩 들었던 것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가에 어려워 보이는 많은 책을 들여놓는 것보다 ‘내가 직접 읽고 좋았던 책’을 진열해 놓는 것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심은 어떻게든 통하기 마련이라 책방지기가 건성으로 소개하는 책을 손님들은 단번에 알아봅니다. 요즘은 작은 노트에 우리 서점 서가에 꼭 읽어야 할 책, 내가 읽어보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 리스트를 적어 내려가고 있답니다. 그 노트에 새로운 책이 추가될 때 저는 책방지기로서의 성장을 느낍니다. 마치 새로운 보석을 발견해 상자에 넣어 두는 기분이랄까요. 좋은 책을 많이 알면 알수록 제 역할을 다하는 책방지기가 된다고 믿습니다.      


두 번째독립출판물과 기성 출판물의 구분이 없이.         

제가 독립출판물을 좋아했던 이유는, 독립출판물에는 보통 사람의 목소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존 출판사들이 각자 어떤 기준을 새워 그 틀 안에 맞추어 책을 만든다면, 독립출판물은 개개인이 기획부터 출판까지 모두 원하는 대로 만들어냈기에 한 사람의 개성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평균적으로 기성 출판물과 그 품질을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한다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독립출판물 씬에는 오직 자력으로 통통 튀어 오르는 책들이 있습니다. 책방지기는 그런 책을 한 번에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여 저희 책방의 경우 독립출판물과 기성 출판물의 차별을 두지 않고 책을 들이고 진열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끊임없이 새로운 책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  

어떤 서점의 책방지기가 책을 소개할 때 매번 똑같은 장바구니에서 책을 꺼내 보인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당연히 점점 흥미를 잃어 갈 것입니다. 세상에는 매일 새로운 책이 쏟아져 나오고 사회 분위기 또한 변화합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책방지기는 좋은 책을 찾아내기 위해 늘 눈과 귀를 예민하게 열어 두어야 합니다. 요즘은 워낙 다양한 콘텐츠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정보를 얻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 샤워를 할 때, 잠에 들기 전에 잠시라도 콘텐츠를 찾아보고 들어야 합니다. 다양한 채널로 업데이트되는 서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또 한 가지, 베스트셀러는 그 시대의 욕망을 반영한다고 하지요. 인터넷 서점에서 어떤 책이 잘 팔리는 지도 수시로 검색해 보아야 하고, 손님들이 주문하는 책들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나와 딱 맞는 보물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네 번째너무 무리해서 책을 들이지(매입) 말 것.

책 욕심이 많은 책방지기는 서점 재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서점 또한 자영업이니 어느 정도는 숫자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저도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서가를 충실하게 채우고 싶다고 해서 팔리는 책 보다 더 많은 책들을 들여놓다 보면 월세도 충당하지 못할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좋아서 시작한 일의 수명도 짧아져 버리겠지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많은 책을 준비해두기보다는 종류가 적더라도 자신이 읽고 자신 있게 읽는 책 위주로 탄탄하게 채워 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서점원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책 주문을 넣고, 택배 박스를 뜯는 일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주문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서점의 재정이 좋아질 수 있을지 늘 고민해야겠지요. 


책방을 운영하다 보면 나중에 서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로망을 가지신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책'이라는 물성을 가진 세계와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은 욕구가 합쳐져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겨우 1년이지만 책방에 오시던 손님들 중 3분이 실제 공간을 얻어 문을 열었거나 오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께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책방의 시간이 아무리 빠르게 흐르더라도 꼭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하세요. 

(제 경우엔 에너지가 많이 소진 된 시간, 책방 문 닫기 한두시간을 책 읽는 시간으로 활용합니다.) 




작업실은 4월이면 한 살이 됩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와 다름이 없지요. 그래서 오늘도 제대로 된 길을 찾기 위해 분투합니다. 2,3년 억지로 버티다 문을 닫는 모습은 되지 않고 싶습니다.  최근 <서점 일기>라는 책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서점에서 매일 일어난 사건과 매출을 기록해 둔 책인데요. 매일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이렇게나마 생각을 정리하고,  꺼내고 싶은 말들을 주욱 늘어놓겠습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그럼 내일 책방에서 뵙겠습니다.       


공들여 퇴고할 수 없어 가볍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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