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님 May 06. 2021

책방 일기 21. 05. 05

1.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콩님이 알려준  은수테이블에서 남편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안내해 주는 직원의 행동이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급해 테이블에 앉기까지의 인상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대표 메뉴라는 뇨끼를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는 순간 왜 예약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지 이해가 됐다. 식사를 마치고 두루미 공원을 천천히.걸었다. 배부른 하루의 시작이었다. 책방으로 배경을 옮긴다.



2. 책방은 림예 작가님 전시 중이다. 작가님의 작품이 글담 출판사의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라는 책의 표지에 담기기도 했는데, 출판사 편집자님이 책방 단골 정민님과 함께 다녀갔다. 가방에서 책을 다섯 권 꺼내 주시며 이벤트에 쓰라고 하셨다. 고마운 마음에 뭐라도 드리고 싶었는데, 가시고 난 후에 또 부담스럽게 주절거린것은 아닌지 조금 후회를 했다. 친절도 적당히 해야 상대가 편안한 거라고 요즘 자주 생각하곤 한다.



3. 책방에는 여전히 단골손님들이 자리를 지킨다. 간혹 처음 오는 분들과 고양 북 페이를 쓰러 온 학생들이 오간다. 어제저녁 약속으로 바닥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종일 신경 쓰였다. 내 살구색 가디건에는 파스타 소스가 튄 자국이 있고 책방 화장실도 청결하다 자신할 수 없다. 여하튼 책방주인부터 지져분한 바닥까지 여러가지로 어설픈 이 책방을 찾아주는 손님들은 다 어디서 나타난 귀인들인지, 모두 나를 위해 섭외된 배우들은 아닌지 가끔 엉뚱한 의심이 들곤 한다. 오늘은 나란히 책상에 앉아 각자 책을 보던 출연배우들의 뒷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4. 책방 일이란 게 보이지 않게 챙겨야 할 것들이 참 많다. 바닥에 뒹구는 머리카락부터 유리컵에 물때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오늘은 선물 받은 화분에서 개미떼가 출몰해 때아닌 개미와의 전쟁을 벌였다.(내가 열 마리쯤 손으로 눌러 죽였다. ㅜㅜ) 퇴근시간이 되면 집에 빨리 귀가하길 바라는 홍님 때문에 더 마음이 급해진다. 내일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인문학 모임이 있어 안내문도 미리 붙여야 한다.손님 여러분. 부디 책방지기의 퇴근시간을 생각해주세요. 우리 약속한 시간에 헤어졌다 다시만나요.^^




#오늘의 고민.

책방을 하면서 '책방지기'라는 자리 탓인지 무수한 고백을 듣는다. 처음 보는 내게 40년 인생사와 통장잔고를 털어놓는 분, 정글 같은 직장생활 속에서 묻어둔 설움을 폭발시키며 꼬박 세시간을 붙잡고 말을 걸던 분, 주변 사람에게는 말 못 한 고민, 나도 감당이 되지 않는 고민을 쏟아붓는 분. 내가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는 그들에게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머릿속에 바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쫓아오는데 길고 긴 이야기를 걸어오는 손님을 만나면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내 성격에 더 화가나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오늘은 '책방지기라고 시간을 두배로 받는 것은 아닌데, 나도 오늘 지쳤어요.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예요.'하는 외침이 얼굴 밖으로 표출되었다.


 그릇이 작아 상대를 품어주고 들어주지 못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는 마음이 들다가,  한편으로는 매번 상황이 반복되니 상대가 나를 감정을 푸는 상대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불쾌한 감정이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건강한 관계는 차곡차곡 쌓아 올려져 교감하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마법처럼  하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그러니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대에게 얼룩진 감정의 무게를, 가늠되지 않는 다른 세계의 길고  이야기를 모두 쏟아내 나누려 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오늘 일을 되짚어 보자니 마음이 꼬깃꼬깃해진다. 그만.잊고 자야겠다.




팔로워 5,961명

매출 20만원 (만원 단위 이하 절사)


오늘부터 기록 모임의 일환으로 자기 전에 책방 일기를 써요. 여과 없이 솔직하게, 공들이지 않고 써도 이해 부탁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 볼 시간이 없는 책방 주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