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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May 12. 2021

책방 일기 21. 05. 11

길고양이 구조 사건의 전말

콩님이 책방을 지키는 월요일! 느지막이 홍님과 외출해 최근 꽃집을 개업한 지인 가게에서 축하인사 겸 화분을 구매했다.  책방에 두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저녁 6시쯤 작업실로 향했다. 북적이던 책방이

한산해져 콩님 혼자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화분 자리를 잡아놓고 나오는데 도빈 님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황급한 얼굴이다. "사장님, 고양이가 아파요.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아요. " 홍님과 나는 얼굴을 마주 봤고, 이내 콩님이 문을 열고 나와 바라보며 눈을 깜빡인다. 책방 근처에 사는 안리타작가님까지 나와 아픈 고양이를 두고 어쩔길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른 모양이다. 병원에 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니 어서 차에 타라고 했다. 케이지에 고양이를 넣어 일산에서 과잉진료를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도빈님이 고양이 영상을 보여주었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병원에 들어서니 접수 마감 푯말이 보인다. 고객응대 직원인지 의사인지 알 수 없는 분이 나와 접수가 끝나 진료를 해줄 수가 없다고 한다. 응급상황이니 봐주셔야 한다고 읍소를 하니 물리치지 못하신다. 대신에  오래 기다려야 한단다. 알겠다고 하고 구석에 셋이 앉아 순서가 오길 기다렸다. 대기하는 사람은 어림잡아도 열명이 훌쩍 넘어 보였다.  기다리며 고양이 이름을 지었다. 최근 빠져있던 책 <긴긴밤>에 등장하는 씩씩한 펭귄 이름을 따 치쿠라고 지었다.


표지에 검정색 펭귄이 치쿠다.


치쿠의 이름이 불리고 짧은 상담 끝에 검사를 하기로 했다. 피검사와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결과 상담을 했다. 다행히 고양이들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 범백은 아니지만 뭘 잘못 먹었거나 전염성 복막염일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피검사 수치가 심각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 했을 것이라는데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대단한 거라고.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래도 입원을 시켜 치료를 해보겠다 말씀드리고 병원을 나왔다. 치쿠는 어느새 우리가 함께 책임져야 할 생명이 되어있었다.

오른쪽이 일반적인 고양이의 피, 왼쪽이 치쿠의 피다. ㅜㅜ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홍님은 오전에 코로나 19 백신을 맞은 터라 본격적인 몸살이 왔고, 나는 도서 500권을 300곳에 나누어 배송 주문을 넣어야 하는 숙제가 당면해있었다. 짬짬이 홍님 이마에 차가운 물수건을 올려주면서도, 책 주문을 넣으면서도 치쿠가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긴긴밤을 이겨내기를.


새벽 다섯 시가 되어도 일이 끝나지 않아 하던 일을 멈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10시에 일어나려니 몸이 한없이 무거웠다. 다행히도 아침까지 동물병원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오후 1시 출근해 청소를 하고 손님을 맞느라 분주했다. 잠시 휴대폰을 들어보니 동물병원에서 온 부재중 전화번호가 찍혀있다. 역시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심정지가 와서 조금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치쿠를 지키고 싶은 어제의 도빈님


도빈님과 콩님이 병원에서 치쿠를 수습했고 나는 오늘 저녁부터 진행될 문학교실 준비를 했다. 어제 다 해내지 못한 주문건 처리도 해야한다는 생각에 그야말로 머리가 뒤죽박죽이였다. 한두시간 지났을까. 치쿠를 데리고 도빈님과 콩님이 왔다. 어제 검사비는 들었지만 병원에서 입원비는 받지 않겠다고 했단다. 책방에서 공부하던 수빈님까지 셋이 좋은 곳에 묻어준다며 책방을 나갔다. 치쿠가 떠난 오늘은 유난히 화창하고 더웠다.


온종일 엉망진창이던 와중에도 어제 치쿠를 구조한 것이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하는 질문이 집요하게  쫓아왔다. 평소 나는  생명을 끝까지 책임질  없다면 함부로 삶으로 끌어들여서는  된다고 생각했다. 기록 모임에 이런 고민을 털어놨더니 탱님은 어제 고양이가 아니라 도빈 님을 돌본 것이라는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길고양이를 구조할  용기는 없었지만  생명을 지키고 싶어 애썼던 그마음을 편들어 주고 싶었던것 인지도 모르겠다. 백신 접종 후유증에도 든든히 곁을 지킨 홍님, 책방에 남아 병원 상황을 궁금해하며 기다린 콩님, 주민들을 동원해 모금운동을 해서라도 살려보자고 말하던 안리타 작가님. 이들은  눈물나게 좋은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도빈님은 말할 것도.없고.


하지만 내게 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단호하게 이야기하겠다. 나는 그렇게 까지 도울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아픈 동물은 마음 아프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는 우리 집 고양이 두 마리가 최선이라고 말이다. 나도 도빈 님처럼 누군가를 다 구할 수만 있을 것 같은 날들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지나온 길을 따라 조금씩 비겁해진 것일까. 오늘 밤은 치쿠가 외롭지 않게 떠났을 거라는 생각만을 하고 싶다.


팔로워 : 5,747 명

매출 : 9만원 (만원단위 미만 절사)


공들여 퇴고할 수 없어 가볍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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