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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May 24. 2021

책방 일기 21. 05. 23

홍님의 책방 화단 가꾸기

시멘트로 만들어진 책방 앞 화단이 낡아 미관상 보기 좋지가 않았다. 고민을 거듭하다 셀프 보수를 하기로 결정해 인터넷으로 빈티지 적벽 타일을 구매했다. 나는 꼼꼼하게 하는 일엔 소질이 없어 이번 작업엔 홍님이 나섰다.


그는 잔소리꾼이지만 책방에 없어서는 안 될 든든한 조력자이기도 하다.  내게 주로 하는 잔소리는 계산을 똑바로 해라, 일 벌이지 말아라, 일찍 일찍 다녀라, 물을 마셔라 등이다. 나는 매번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만 그는 잔소리에 있어서는 지치는 법이 없다.


열일하는 홍님. 타일이 부족해 윗면에는 아직 붙이지 못한 상태


책방일 등 바깥일에 에너지 쓰는 일을 즐거워하다 보니 집안일은 소홀한 편이다. 함께 사는 고양이 두마리는 털이 많이 날리는 동물이라 청소도 매일 해야 하고 화장실도 매일 비워줘야 하고 물그릇도 자주 씻어줘야 한다. 정시 출퇴근하는 홍님이 그 일을 도맡아 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철없는 나를 데리고(?) 살아주는 참 고마운 사람. ㅋ ㅋ


홍님이 돌보는 착한 달님이와 길냥이.출신으로 까칠한 방톨이.

그런데! 그런 홍님을 잠자는 사자의 곁을 지나가듯 조심해야 할 때가 있다. 한 번은 소파에 앉아 냉장고에 참외가 몇 개 남아있냐고 물었다가 때아닌 봉변을 당했다. 왜 그런 걸 자기한테 묻냐며 얼굴이 벌게져서는 무방비 상태인 내게 폭격을 퍼부은 것. 아마도 그 날 집안일을 자기 혼자 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분노로 표출된 듯했다. (나름 하고 있다고 어필을 해봐도 먹히지 않는다. . . . ... #@/&#/@)


또 어느 날 저녁엔 기분이 도통 안 좋아 보이길래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아 보이네."

라고  말했는데,

"그럼 나라고 맨날 기분이 좋아야 돼"

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자신의 눈에서 흰자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경험치로 보아 그럴 땐 착하고 약한 어린양 인 척 자세를 움츠려야 한다. 기분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평정심을 유지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건만 결국 다중인격인 남자와 결혼을 한 것인가!!! 이후 두 사건을 나는 참외 사건과 기분 사건이라고 명명했다.


문제의 홍님. 오락가락 하는 홍님!

그런데 밤송이처럼 따까운 면은 아주 가끔 튀어나오니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누구나 그럴 수 있다'라는 말로 그의 까칠함을 덮어주기로 한다. 분명한 것은 그도 나의 여러가지 단점을 이해하며 보듬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니.


책방에서 사피엔스를 펼쳐놓고 휴대폰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홍님입니다. 화단이  예뻐졌다고 한마디 해주시면 광대가 슬그머니 올라가며 친절을 베풀 거예요. 오늘도 이렇게 마무리는 어려워 그만 자야 해서 마무으리.


후에 화단은 만신창이가 되었더라는 슬픈 소식을

전합니다.



팔로워 : 5,848명

매출 : 20만원 (만원 단위 미만 절사)


공들여 퇴고할 수 없어 가볍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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