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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May 21. 2021

책방 일기 21. 05. 20

소박한 가운데 피어나는 인정


요즘 건강에 이상신호가 온 것인지 자도 자도 자꾸만 잠이 온다. 어제 경영지원부 콩님, 수빈님, 전략기획부 도빈님하고 회식을 하고 좀 늦게 들어왔을 뿐 무리한 것은 없었는데 쿨쿨 늦잠을 자버렸다. 오늘은 화정 작가님이 점심을 사주시기로 한 날이다. 눈을 떴을 때 작가님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었다.

"미쳤어, 미쳤어"를 외치며 머리를 쥐어뜯었을 땐이미 늦었다.


어젯밤 사랑스런 수빈,콩님, 책방 이동욱 도빈님 ㅋ ㅋ

부랴부랴 책방에 출근해 청소를 하고, 나의 게으름을 자책하며 책 포장을 하고 있을 때 작가님이 오셨다. 사과를 드리니 괜찮다며 웃으신다. 곧 나올 책 최종본을 확인해야 할 일이 있어 겸사겸사 오셨다고. 한참 볼일을 보는데 작가님이 다가오셔서 못 먹은 점심을 먹자 하신다. 난 식은 밥이라도 데워 먹고 나왔는데 아직 식사도 못하신 모양이다. ㅜㅜ 산책 다녀온다는 종이만 남겨 놓고 또 책방을 나왔다. 밤가시 마을 식당들을 기웃거리다 '지미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라자냐와 샐러드를 주문했다.


작고 맛있고 친절하고 분위기도.좋은 지미스!

식사를 하며 작가님과 책방에서 다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 작가님은 너의 작업실 일이라면 무조건 지지해 주신다. 도빈, 수빈, 콩님, 꿈의 지기까지 여럿이 책방을 지키는 방식이 신선하다고 말해주셔서 마음이 놓였다. 어떻게 해야 손님들과, 파트너들과 오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이런저런 책방 이야기도 나누고 작가님 이야기도 들었다. 돌아오는 길 괜히 오랜 친구를 만난 듯 기분이 좋아 잘못한걸.다 잊어버렸다. 작가님은 책방 고양이 급식소 사료를 사주시겠다고 말을 꺼내신다. 사람들은 왜 자꾸만 책방에 무언가를 주려고 할까? 문득 나의 해리포터가 떠올랐다.


오늘 책방에 온 길냥이 손님.

강원도 태백시 철암에는 나의 멘토 해리포터가 살고 있다. 해리포터는 도서관을 운영하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을 누비는 것이 그의 주된 업무다. 그는 영화 속 해리포터와 얼굴이 닮은 데다 매우 비현실적인 인물이라는 점이 같다. 태백에서도 시골에 해당하는 철암지역에서 아이들이 모여 놀던 공부방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주민들과 아이들이 나서 모금운동을 했다. 그렇게 모은 기금으로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지은 곳이 철암 도서관이다. 활동가이던 해리포터가 책임을 맡아 그곳을 운영했고 남다른 운영철학으로 마을의 큰 사랑을 받는다. 사회복지계에서 배울 점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해리포터가 언젠가 내게 새우깡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인정은 소박한 가운데에서 피어오르는 거라고. 아이들과 강가에 놀러 가기  100원씩 모아 문방구에 가서 새우깡을  봉지를 산다. 목적지에 가서 아이들과 과자를 나누어 먹으라며 건네준다.  아이가 먹을 만큼 먹고 다음 아이에게 넘긴다. 아이들은 욕심내지 않고 다음 아이를 배려해 조금씩 먹는단다. 아이들에게 많은 간식을 주면 오히려 아이들은 싸우고  욕심을 낸다고.  단순한 이야기에서 해리포터의 생각을 읽었다. 그가  정부지원사업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지,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는 기업이라면 비싼 강연 요청도 단숨에 거절하는지, 자녀가 셋이나 되는데  100만원의 수입 이상은 벌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키며 검소하게 살아가는 지도. 해리포터는  때문에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유예하지 않는다.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킨다.


늘 그립고 보고싶은 해리포터

책방을 운영하며 때로는 더 번듯하고 좋은 물건에 욕심을 내기도 하지만 최대한 소박함을 잃지 말자고 다짐한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기를 바라기보다 작은 것이라도 함께 걷는 이들과 정직하게 나누어야 오래오래 같이 갈 수 있다고. 그래서 숫자를 싫어하지만 정산은 되도록 정확하고 빠르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책방 곳간을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집착도 덜어진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책방에 오면 가방에서 조용히 사탕과 초콜릿을 꺼내놓는지도, 길고양이 사료값을 걱정해주는지도  모르겠다.


유명한 태백물닭갈비 ㅋ ㅋ


언젠가 책방 식구들과 가방을 꾸려 태백에 사는 해리포터를 만나러 갈 것이다. 구비구비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반겨주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도서관에 옹기종기 앉아 밤이 늦도록 해리포터의 이야기를 듣고, 얼굴에 닿을듯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태백 물닭갈비를 먹을 것이다. 태백에서 화정 작가님 북 토크를 열어도 참 멋지겠다. 작가님은 대전에서 번쩍, 군산에서 번쩍 하시니까 말이다.


오늘 긴긴 책방일기 끝!




팔로워 : 5,829명

매출 : 5만원



공들여 퇴고할 수 없어 가볍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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