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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Jun 03. 2021

책방 일기 21. 05. 29

두근두근 황인찬 시인 북 토크 후기

황인찬 작가님 북 토크 이야기를 책방 일기로 쓴다고 해놓고 며칠이 흘렀다. 이러다 영영 못쓰지 싶어 생각나는 대로 써본다. 이번 북 토크는 작업실 단골 한별님의 소개로 성사되었다. 한별님이 국악방송에서 작가님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즐거운 작당을 한 것. 작가님은 독자와의 소통을 좋아하셔서 흔쾌히 수락해 주셨고, 여느 때처럼 행사 날짜를 잡고 나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다른 북토크 행사를 여러번 참석해 보고 느낀 건 작가님이 강의하듯 말하는 일방향식은 별로라는 것이다. 쌍방향 소통이 너의 작업실 스타일이다. 이번에도 작가님게 양해를 구해 독자들과의 수다라고 여길 만큼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작가님과는 카카오톡으로 소통을했는데 매번 대답도 빠르시고, 자신이 준비할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달라고 적극적인 태도로 일관하셨다. (이 글을 보시는 책방지기님들이 있으시다면 황인찬 작가님 북 토크 기획을 강추합니다.)

작가님이 좋아하는 겨울바다

예상대로 모집 하루 만에 마감이 되었다. 행사 30분 전, 멀끔한 청년이 책방으로 성큼성큼 들어온다. 후광이 비치는 황인찬 작가님이다. 손님들이 아직 많이 계시니 잠시 앉아 책을 둘러보시겠냐고 말을 건넸다. 작가님은 얼른 그러겠다고 서가를 둘러보시고 <긴긴밤>을 구매 하신 뒤 화장실을 가셨다. 그 사이 참석자들이 하나 둘 책방 안으로 들어선다. 이 힙한 분들은 어디서 오셨지? 패션부터 풍기는 느낌이 남다른 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광명, 안양, 천안, 인천, 서울까지 다들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와주셨다. 잠시 후 작가님이 들어오시고 북 토크가 시작되었다. 내가 주인공도 아닌데 내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작가님은 '아카이브'라는 시를 낭독하셨다. 역시 낭독 장인. 작가님은 몸에 자체 마이크를 장착한 듯했다. 한마디 한마디 귀에 콕콕 박히면서도 감미롭기까지 하니 그가 라디오 DJ를 한다는 건 너무나도 마땅한 일이 아닐까.

서먹서먹한 분위기, 처음엔 작가님도 어쩔 줄 몰라했지만 이내 분위기가 풀렸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대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나름의 조율을 했다. (아니 내가 망쳤는지도...) 매번 북 토크 행사를 마친 날 밤마다 '그 말은 하는 게 아니었어!' 하며 침대에서  이불킥을 한다. 이번에는 사랑 이야기를 나누다 "라때는 말이야~!"를 시연했다. 내가 라떼를 외칠 줄이야. 핑계를 대자면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이지만, 헐렁한 사람이 하나 있어야 다들 마음의 경계를 내려놓으니까... 음.. 그런 이유다. ^^;; (자기 합리화)


아무튼, 시는 늘 어렵게만 느꼈었는데 작가님의 이야기에 눈이 번쩍 떠졌다. 자신도 시에 대해 잘 몰랐지만 대학시절 너무 멋졌던 교수님에게 칭찬받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동경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라 믿었는데 이렇게 좋을 결과를 낳기도 하는구나. 지금은 시가 어려운 영역이라 느끼지만 가까이 두는 것이 내 삶을 얼마나 달라지게 할지 상상만 해도 좋았다. 또 자극이 된 건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다. 글쓰기란 어떤 말을 넣을 것인지 끊임없이 선택하는 것,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안일한 자세로 글쓰기를 하고 있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작가님은 경험에 기반한 글은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한다. 경험을 소재로 글을 쓸 경우 디테일한 부분들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써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언뜻 생각하기로 경험에 기대어 쓰는 것이 그나마 쉬운 길일 텐데 작가님은 자신의 시가 가야 할 방향들을 정확히 감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기억나는 말 중 하나는 '시는 여기에서 저기로, 건너편으로 가뿐하게 뛰어넘을 수 있게 해 주는 힘이 있다고.' 위로나 치유, 즐거움은 영화나 연극, 드라마, 소설, 에세이 등 다른 장르들이 충분히 하고 있으니 시에서 만큼은 다른 감각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에 더해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좋다고 느끼는 어떤 것' 이였으면 한다고.



북 토크 주제가 '일상' 이였던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일상에서 출발해 작가님이 생각하는 시, 내밀한 생활, 사랑까지 순식간에 두 시간이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서울에서 오신 주희 님은 각별한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소녀처럼 좋아하는 모습에 다들 여러 번 크게 웃기도 했다. 대부분 작가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꽤고 있는 찐팬들이라 팬미팅을 방불케 하기도 했다.


작가님은 요즘 너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원고 청탁, 계약한 원고 작업, 라디오 DJ, 강연 . 오늘은 컨디션이 너무  좋다고 하셨지만 끝까지 참석자들 질문에 성실히 답을  셨던 특히 감사했다. 등단을 준비하는 참석자에게 끝까지 자신을 믿고 가라고 했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자신은 시집   내고 요절한 천재 시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런 시집에서는 재능밖에  것이 없지 않겠냐고. 징그럽게 꾸준히 시를 써온 작가들의 시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는 말에 무릎을 쳤다. 재능보다는 노력을 높이 사는 작가님의 태도에  믿음이 갔다.


황인찬 작가님은 문단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이니 여유를 만끽하며 일을 고르고, 경제적인 어려움과는 거리가 멀줄 알았다. 이름난 작가일수록 명성에 걸맞는 금전적 여유도 함께 따를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틀렸다. 어느 출판사에서나 계약금은 10% 선인세, 아무리 시집이 많이 팔린다 한들 인세로 시인이 먹고 살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다. 내가 부자라면 몇몇 시인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하며, 시만 쓰며 살아갈  있도록 도울텐데...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도 해본다. 대한민국의 출판계는 어찌 이리도 이상한 구조란 말이더냐. 시인이 시를 쓰는 일만 업으로 하기 힘든 오늘의 현실이 답답하게 여겨졌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지지 않고 오래오래 시를 써주기를 바라는 것밖에   있는 일이 없어 조금 서글펐다.

꽃을 받고 좋아하는 작가님


모두 신나는 얼굴로 사인을 받고, 그 시집을 소중히 품고 돌아간다. '그래, 이 맛에 북 토크하는 거지'  밤이 늦어 나를 기다리는 건 수북이 쌓인 설거지와 청소뿐이지만 뿌듯한 마음이 든다. 돌아가는 길 한별님에게 나는 좋았는데 다들 좋은 시간이였을까 걱정된다고 말하니 괜한 생각 말란다. 자신도 너무 좋은 시간이였다고. 다들 토크 속 나의 주접에도 좋은 시간이였겠지 정신승리로 마무으리. 다음엔 또 어떤 분을 섭외해 볼까? ^^



공들여 퇴고할 수 없어 가볍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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