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엔딩
글쓰기 BGM은 이르다의 해피엔딩
"그리고 공주님과 왕자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런 게 해피엔딩인 줄 알았지.
‘공주님과 왕자님이 살다가 성격차이로 헤어졌지만, 그 후 각자의 삶을 격려하면서 건강하게 살았답니다.’ 또는 ‘공주님과 왕자님은 왕국의 몰락으로 평민 신분으로 추락했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위기를 극복했답니다.’ 등등.
이런 현실적인 해피엔딩은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거야. 그래서 플랜 A, B, C, D, E, F… Z까지 가도 계획대로 되는 행복은 없더라.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그래도 나는 아주 다르게 살지는 못할 것 같다.
다른 직업을 선택했을 수도 있고, 다른 모습의 삶을 살 수도 있겠지만 내 행복의 총량이 아주 크게 달라졌을까.
잘 모르겠다.
며칠 전, 서점에서 “마흔이 되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이라는 책을 봤다. 그런 책을 20대 후반에도 봤던 것 같다. “서른이 되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안타깝게도 서른이 되기 전에 그 책을 읽었을 때 깨달음은 있었지만 행동으로 모두 이어지지는 못했었다.
이번에는 자의로 그 책의 커버를 넘기지 않았다. 마흔 전에 할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내가 선택해서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 저자가 맞이한 마흔과 나의 곧 마흔은 같을 수가 없잖아.
내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사는 삶인데, 행복을 정의하고 계획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차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인데, 철철이 몰아치는 파도에 소리쳐봤자.
그냥 인생의 파도와 마주하면서, 가끔은 파도에 휩쓸렸다가 때로는 파도 위를 멋지게 달리기도 하면서, 빠져 죽지 않고 그 삶을 이어나가는 것 자체가 해피 엔딩이 아닐까.
서핑 챔피언과 나를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냥 바닷물도 먹고, 보트도 뒤집히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내 서핑 실력에 뿌듯하면 그만이지.
이 글을 쓰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해피엔딩 연재가 끝나면, 다음 책은
‘마흔이 되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이다.
"그래서 공주님과 왕자님은 주어진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