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기 충분한 글의 길이
책의 모습은 다양하다. 사진 한 장의 도움 없이 오직 활자로만 빼곡한 책이 있고, 한 페이지에 단 몇 줄의 글로 작가의 생각을 응축하는 책도 있다. 긴 글로 채워진 책과 짧은 글로 이어진 책 중에서 어떤 책이 더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긴 글로 구성된 책은 섬세하고 자상하다. 작가가 왜 이런 생각에 머물게 되었으며 독자가 어떤 것을 느끼고 깨달았으면 하는 것까지도 자세하게 안내한다. 반드시 즐거운 내용이 아니라 어둡고 힘든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나는 긴 글이 상냥하게 느껴진다.
반면에 짧은 글은 간결하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다. 작가의 생각이 집약된 글을 읽으며 독자는 그 생각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흡수한다. 글의 의미를 이해하며 자신의 것으로 더 넓게 확장할 가능성도 더 높다.
긴 글과 짧은 글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니, 애초에 글의 길이로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글이든 작가의 생각과 마음이 담겨 있다면 모두 의미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글은 사람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난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에.
그동안 나는 긴 글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작가의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은 책을 좋아했고, 풍경이나 감정의 모양을 세심하게 표현한 글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서를 하는 시간이 많이 늘어나면서 그 생각이 깨지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 여러 권의 에세이를 읽었고, 잠시 멀리해오던 짧은 글에서 희망과 위안을 얻기도 했다. 특히 자기 전에는 긴 글보다 가뿐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더 산뜻하고 편안했다.
글은 어느 정도의 길이를 갖추어져야 한다는 울타리를 서서히 거둘 때가 온 것 같다. 내용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길게 서술하는 것에 집중한다면, 오히려 독자는 글을 읽는 것에 부담을 느낄 것이다. 독자가 느끼는 그 부담은 아마도 길게 써야 한다는 작가의 강박에서 시작될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더욱 길이나 형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김밥 한 줄로도 한 끼를 먹기에 충분할 때가 있다. 그러니 때로는 글 한 줄도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기 충분할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며 다양한 상황에 놓이기 마련이다. 글의 길이와 관계없이 어떤 글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