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의 숲 Apr 28. 2020

사는 건 원래 민들레 홀씨 같은 것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게 날아다니기도 하고 무겁게 가라앉기도 하며




올해의 봄은 참으로 더디게 왔다. 사월이 다 가도록 포근한 바깥의 온도를 마음껏 느낀 적이 없었고, 오히려 비가 내려 춥거나 바람이 강하게 불어 산책을 하기 버거운 날들이 많았다.


그리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리운 봄이 드디어 오늘 찾아왔다. 반가운 봄을 만나기 위해 오랜만에 홍대 거리를 산책하기로 했다. 화창한 날씨에 맑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고 사람들은 입고 있던 외투를 하나둘씩 벗기 시작했다.


홍대 상권이 옆 동네 연남동, 합정, 망원으로 많이 옮겨 갔다고 하지만 그래도 본진의 위세는 여전했다. 귀엽고 앙증맞은 소품샵, 감각적이고 세련된 옷가게, 지나가기만 해도 향기가 퍼지는 꽃집들이 많이 있었다. 다양한 콘셉트의 카페와 와인바 덕분에 외국에 온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지도에 나온 명칭 그대로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였다.


이 시간에 햇볕을 쬐며 거리를 걷는 사람은 나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법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평일 오전에 어딘가에 출근하지 않고 제 의지로 거리에 나섰으리라 생각하니 적어도 오늘은 걱정 없이 행복하길 바랐다.


익숙하지 않은 이 거리를 걸으며 내가 모르는 곳에서도 다들 각자의 삶을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 문을 열고 청소하며 영업 준비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서 웃으며 수다를 떨고, 연인과 팔짱을 꼭 끼고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들 모두 부지런히 자신의 오늘을 행복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그들과 같은 거리를 걷고 있어도 왠지 나는  안의 불안과 걱정에서 무작정 벗어나 지지 않았다. 이럴 바에 차라리 나의 삶도 저 거리에 나온 사람들의 삶과 같이 멀리서 봐야지 싶었다. 그러면 "사는 게 원래 민들레 홀씨 같은  아니겠어?"라며 멋지게 방황하던 친구의 말처럼, 내 안에 있는 무거운 일도 좀 더 홀가분하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업이 필요하면 다시 일을 하면 그만이고, 아픈 곳이 있으면 치료하면 그만이고, 운동을 해야겠으면 시작하면 그만이고, 글을 쓰고 싶으면 한 줄이라도 쓰면 그만이고, 책을 읽고 싶으면 꾸준히 읽으면 그만이고, 내 마음과 한 발짝거리를 두니 모든 게 하면 그만인 일들이 되어버렸다.


연인을 너무 애달프게 보채고 집착하는 것이 곧 사랑이 아니 듯이, 스스로 자신의 의지를 믿지 못하고 고민과 걱정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것도 자기애가 아니다.


올바르게 발전하고 성장하는 방법은 '여유'를 갖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여유와 노력이 싸울 때마다 화해시키고 중간에서 균형을 잘 봐주어야 한다. 적어도 오늘은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게 날아다니기도 하고 무겁게 가라앉기도 하며 적당히 삶의 무게를 감내한 것 같다. 여유롭게 흔들리다가 꽃을 피우기 위해 묵직하게 노력도 한 그런 날이었다. 내일은 과연?





매거진의 이전글 긴 글과 짧은 글에 대한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