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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숲 May 05. 2020

영어실력과 빈부격차의 상관관계

그 단순한 차이는 또다시 소득의 격차로 이어진다




나에게 대학시절은 낭만과 설렘으로만 가득 찬 시기는 아니었다. 수강신청이 마감되는 개강 첫 주부터 긴장을 해야 했다.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무엇보다 학점이 중요했고, 그래서 수업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보다 무난하게 A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골라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나는 학점을 받기 어렵겠지만 씩씩하게 영어 교양 수업 하나를 신청했다. 방학 때 빠진 미드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강의 첫날 동기들과 수업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러 갔다. 아직은 시간표가 확정된 것이 아니니까 애써 편한 마음으로 강의실에 갔다. 해맑은 표정으로 향한 그곳에서 그 이야기를 듣게 될 줄 상상도 못 한 채 말이다.


교수님께서는 강의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과 수업 내용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문제의 그 말씀을 덧붙이셨다. 벌써 어언 십 년 전이라 기억이 나는 대로 조금은 각색해서 적어보자면 이렇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평균적으로 소득이 높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자녀들은 영어 실력이 차이가 납니다. 고소득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자녀들은 영어의 중요성을 미리 알고 좋은 원어민 선생님과 함께 일찍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합니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영어 교육에 큰 비용을 쓰기가 쉽지 않겠죠. 그 단순한 차이는 사회에 나와서도 실력과 능력의 격차를 낳고, 또다시 소득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는 '이 교수님, 이 많은 학생들의 눈빛을 보면서 두렵지 않으신가. 아니면 우리가 모두 다 고소득층의 자녀라고 착각하고 계신 건가. 그것도 아니면 무슨 근거로 이렇게 대놓고 공식적으로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는 건가'라며 의문에서 분노로 감정이 옮겨가는 중이었다. 그때 교수님께서 한 말씀을 더 덧붙이셨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대학에 다니면서 다른 것보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결국은 '잘'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누군가의 자녀가 아니라 스스로의 인생을 정할 수 있는 성인이니까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교수님의 말씀에 뼈아픈 동의를 했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 그 고리를 끊어낼 힘이 생긴, 더 이상 미성년자가 아니라 진짜 어른이라는 사실도 실감했던 느낌이 어렴풋이 난다.      


만약 인생이 드라마와 같다면 나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 그 강의를 들으며 영어 실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어야 했지만, 애석하게도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수업의 본질보다 학점이 중요했던 나는 시험에 영어 문법이 많이 나오며 외울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깔끔하게 수강을 포기했다. 그리고 나의 영어 실력은 대학생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은 그 교수님 말씀대로 된 것일까.     


지금까지 살면서 영어를 못해서 불편했던 기억이나 피해를 본 적은 없었지만, 영어를 잘했다면 더 많은 기회가 있었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그때마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워서 잘하거나 쉽게 어학연수에 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약하고 흔들리는 시기에는 모든 것이 시기의 대상이었나 보다.


세월이 흘러 어설프게 어른을 흉내 내는 풋내기 스무 살이 아니라, 서른이 된 제법 성숙한 어른이 되고 보니 모든 것이 그렇듯이 영어 실력도 개인의 의지로 충분히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안생에서 한 번 마주했던 그 교수님이 어떤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마이크를 드셨을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는 생각보다 그렇게 만만하지 않고 먼저 세상을 겪은 인생의 선배로서 제자들의 손에 무엇이라도 하나  쥐어주고 싶으셨겠지. 어쩌면 당신 스스로를 버티게 해 준 주문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영어는 아직도 새해가 될 때마다 계획표에 적히는 불사조이자 인생의 숙제 같은 존재다. 아마도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는 조금  여유롭고 지금보다 나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욕망도 내재되어 있는  같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 박힌 이름 모를 가시를 빼내기 위해서라도 결국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You should not give up, even if you think you have hit a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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