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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05. 2024

무뎌짐

나이가 들수록 무뎌지는 나의 감정선

2023년 12월 31일 11시 59분 50초..

제야의 종이 울리는 그 장소로 모여든 사람들은 올해의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두 눈가에 한가득 희망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10.. 9.. 8.. 7..(중략) 3.. 2.. 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4년 1월 1일 00:00이 되자 방송에서 혹은 현장에서 너도나도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가족들을 향해, 사랑하는 애인을 향해 아니면 나 스스로에게 축복의 기도를 해댄다.


옛날부터 나는 한 해의 마지막 그리고 한 해의 시작에 대해서 누구보다 많은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무언가 한 해를 보내기엔 이대로 아쉽지만 시간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이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에 슬프기도 하며, 찾아올 새로운 시간 또는 여러 가지 기회들에 대하여 기대감을 갖고 눈동자가 반짝반짝거렸었다. 이는 어린 나이대의 나일 때 더욱 빛을 발했는데 오죽하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 때도 있었더랬다(이때는 새 학년이 되는 것이 왜 그렇게 싫었던지 아마 그게 주 이유였는 듯하다.)


허나 언젠가부터 그 순간의 감정선은 점점 무뎌져가기 시작했다. 난 이러지 않았는데? 참으로 이상하다고 느꼈다. 아마 그 시작은 내가 직장을 갖고나서부터리라.


처음 25살에 입사한 이 회사는 참으로 정신없었다. 19년 10월에 입사한 후 고작 2달 동안의 적응기로는 나의 어리바리함을 개선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대학생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사회생활의 높은 문턱은 25살의 사회초년생에게는 예민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현장근무로 인해 나는 항상 연말과 연시를 함께하던 가족들과 처음으로 떨어져 새해를 맞았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새벽 내내 현장에 있으면서 저 멀리 떠오르던 해를 보며 나도 모르게 "우와... 이쁘네요"라며 카메라를 꺼내 찰칵찰칵 사진 찍기에 바빴다. 그때 옆에 계시던 주무관님께서 나를 보며 콧방귀를 뀌시며 잔잔하게 말씀하셨다. "니가 처음으로 맞는 사회생활의 시작이라 첫 해 뜨는 거 보고 그렇게 반응하는 거다. 니도 몇 년만 지나면 완전 지겨워질걸" 하셨지만, 그러기엔 처음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이 첫 현장근무에서 첫 새해를 보는 그 장면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난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2020년 현장근무지에서 찍은 새해


그렇게 나는 몇 개월째 수습기간을 거치면서 온갖 일을 겪었더랬다.  공식적인 회식자리도 참여해서 건배사도 하고, 나이차이가 적게는 3살 많게는 20살 차이 나는 사람들과 술도 진탕 마시고, 젊은 나이의 패기로 인해 민원인과 언쟁을 부리다가 윗사람들에게 깨지기도 많이 깨졌었다.


그땐 어렸으니까 25살의 사회초년생에겐 모든 일이 '처음'이었다. 해도 해도 새로울 거라 생각했고 이 열정은 영영 없어지지 않고 나를 불태워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허나 시간은 역시 절대적인 거라 변하지 않고 진리대로 흘러가기 시작했고, 바뀐 것은 시간이 아닌 철저히 '나'였다. 앞서 말한 '온갖 일'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많이 발생했고 하루하루 변수가 생길 때마다 25살의 열정은 점차 '나대면 안 되겠다.'로 바뀌기 시작했으며 너무 적극적이지도, 너무 소극적이지도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속의 무감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인가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기 시작했고, 난 점점 모든 일에 감흥이 없어지기 시작했으며 이는 내 마음속의 무뎌짐을 더욱더 가속시키기 시작했다. 점점 일은 더욱 전문적인 영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했으며, 업무를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 나와 친밀한 유대감을 쌓기도 했으나 어쩌면 그것은 사회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쓰는 '가면'과 같았다.


이때부터 머릿속에 어느샌가 모든 것이 '재미없다'라고 치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선 게시글에서도 얘기하였으나 연애라는 것은 더욱이 관심 없었을뿐더러 내가 이렇게 재미없게 살고 있는데 감히 누굴 케어하고 사랑할 여유가 있다고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봤을 때 그것은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뭐 솔직하게 말하자면 결국 나는 연애를 한 번했었고 소개팅을 주선해 주신 누나에겐 감사의 인사를 몇 백 번 해도 모자랄 만큼 아름다운 연애를 했다. 그러나 결국 이도 끝이 존재했고, 시간은 그 끝을 나에게 통보하고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시 수행해 나가기 시작했다.(속절없이 흐르는 그 역할)


내 주위 사람들은 많이 변했다. 사회적인 지위도 변했고, 연애를 시작하신 분들도 있고, 가족을 형성하고 더 나아가 새 생명의 탄생을 이룩하여 주위사람들에게 축하를 받는 분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 중간에서 나는 혼자서 이 모든 것을 관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지독한 망상이 하나 있다. 내 몸이 남들과는 달리 건강하지 않아 모든 자신감이 남들보다는 한풀 꺾여 있다는 점. 혹자는 얘기했다. 너는 몸이 아픈 덕분에 남들이 그렇게나 가기 싫어서 안달이던 군대도 안 가서 부럽노라고. 그래, 어떻게 보자면 '신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붙어 참 남들에게 부러움도 많이 산 적도 있었더랬다.


그러나 차라리 갔다 오는 게, 차라리 건강해서 남들 다 가는 고통의 시간 혹은 영겁의 시간이라도 보내고 올 걸. 차라리 아픈 것보다 고생 더 하는 게 나았걸.


마음 한편에 남아 나를 항상 괴롭혀오는, 그 형언할 수 없는 자존감을 갉아먹는 악마가 나 함께 살고 있다.

한 때, 너무나도 나의 자존감이 낮아진 것을 느끼며 살고 있을 때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 있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한 문장이 나의 자존감에 대한 양날의 검이 되어 날 살리기도 죽이기도 했다.

'몸이 이렇게나 아픈데 나이 20대 중반에 공무원 합격해서 버젓이 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 대단한 것이 아닐까, 앞으로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라고.

위 문장만 보자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 바락바락 노력하는 젊은이의 반항(?)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몸이 이렇게나 아픈데 나이 20대 중반에 공무원 합격해서 버젓이 일하고 있는 것만이라면, 이 정도면 큰 목표는 이뤘으니 할 거 다 한 거 아닐까. 그냥 다 포기하고 영원히 쉬어도 되지 않을까?'

바로 이게 나의 문제였다. 같은 문장에서 삶을 지키려는 자와 포기하려는 자의 모순이 드러나서 미칠 지경이었던 거다. 그래서 어쩔 땐 힘든 일이 연속으로 생겨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면 빌어먹을 생각이 나를 잠식해서 끝없이 침잠하는 모습을 보인 적도 많았다. 도저히 힘을 낼 상황이 되지 않으니 저 자조적인 문장이 나를 더 유혹하는 것만 같아서.


그래도 결국 나의 그 '절대적인' 시간께서는 속절없이 시간을 흐르게 해 주셨고, 난 바쁜 일정을 핑계로 저런 생각을 현실로 행동하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 너무 바쁘니까 나를 생각할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무뎌지고 있다. 무뎌짐에 잠식당하며 철저히 외면당하기도 한다. 내가 나를 돌볼 시간도 없고 기회도 없고 관심도 없다. 1월 1일이 되어 남들이 기쁜 마음으로 희망을 외칠 때, 나는 그저 그렇구나라는 표정을 지으며 카운트다운을 보고 곧바로 잠이 들었다.


언젠가 인연을 만나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난다면 그때는 어떨까? 사실 전에 만난 사람을 미칠 듯이 사랑했어서 집착 아닌 집착을 한 것 같아 항상 미안했다. 왜냐면 내가 그만큼 자존감이 없어서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결국 끝이 났고 나는 앞으로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는지에 대해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뭐랄까 의심이라기도 뭣하고 그저 두려워졌다. 내가 이렇게 자존감이 없는 사람인지도 밝히고 싶지 않으며 또한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더더욱 밝히고 싶지 않으니 철저히 숨길 것 같기도 하고..


나의 무뎌짐은 이렇게 성장하고 있다. 촉발제가 주위에는 너무나도 많다. 왜 무뎌짐을 낮추는 요소는 눈에 씻어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주위에 널려있는 것들이 자존감을 높여주는 혹은 무뎌짐을 낮춰주는 요소인데 내가 장님이 되어 보지 못하는 것일까(혹은 내가 자존감이 낮은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생떼 부리는 것일까)


나 같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있을까, 나는 꼰대가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지만(이래 봬도 나이는 30대밖에 안 됐지만 행동거지는 벌써 40대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내 자존감의 상태를 말해주고 이렇게는 행동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글을 적어본다. 다짜고짜 당신들은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보다 내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느꼈으면 좋겠다.


첫해의 시작부터 나의 움찔거림은 무뎌짐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무뎌지지 말고 주위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나 스스로에게도 귀를 기울이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아직까지는 준비가 되지 않은 듯하다.


그렇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이런 감정을 적어놓아야 훗날 내가 다시 돌아봤을 때 이런 바보 같은 글을 쓰고 있었다고 스스로에게 꿀밤 한 대 쥐어박지 않을까. 쥐어박아야 좋은 엔딩인 것 같기에.


무뎌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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