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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당호수 나동선 Sep 28. 2021

바람을 가르다.

       

 계절적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춥지도 덥지도 않다. 그저 적당히 움직이면 땀이나긴하나 조금 있으면 금방 식는다. 천고마비의 계절이 본격적으로 접어든 9월 초의 날씨다. 요즘 며칠 사이의  잦은 비만 아니라면 바깥 운동하기에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나는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양수리를 지나 양평까지 갔다왔다. 편도 25㎞ 정도되니 왕복 50여㎞를 달린 셈이다. 바람을 가른다는 말은 이때가 제격인 것 같다. 시원한 남한강을 따라서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그 기분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riding) 전에는 모른다. 이 시원함, 이 상쾌함을 온몸으로 느껴본 자만이 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동행해서 산에 가는 일조차 꺼려하는 이때에 나는 라이딩하는 즐거움으로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고 있다.  


        "형님, 지금 뭐하세요. 저랑 같이 자전거나 타시지요."  그는 나를 보고 항상 형님이라고 호칭한다. 나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김박사님이라고 부른다.  물론 그는 학위를 받으신 분이다. "그럽시다. 나는 지금 김박사님이 전화주시기만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가고 싶었는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나는 기꺼이 김박사의 제안에 시간을 정하고 나간다. 만날 장소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다. 항상 하남 유니온 타워 옆에 있는 덕풍천 다리 밑이다. 


        우리 두 사람은 하남시 정보화 교육장에서 2년전에 처음 만났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대화를 시작한 후 이심전심으로  친한 사이가 되었다. 요즘 말로 서로 코드가 맞는다. 내가 두 살 더 많긴하지만 서로 비슷한 년배다.  70년대 내가 대학 다닐 때 존경하던 교수님이 장관으로 가신 분이 계셨다. 대화를 하다보니 그 분이 장관을 마친 후 자기 대학에 오셨는데 박사학위 받을 때 그 분의 지도를 받은 수재자였다. 지금도 그분과 만나고  모임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서로 공통분모가 있다보니 우리 둘 사이는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지난 7월 초쯤 김박사는 나더러 자전거를 타자고 했다. 자기가 자전거타고 한강을 달려보니 너무 좋단다. 나는 집 주변에 있는 한강으로 가서 일주일에 두 세 번  정도 하루에 7~8㎞ 정도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가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려보니 걷기보다 이게 더 운동이 되고 좋단다. 꼭 같이 타자고 했다. 나는 별 생각없이 날을 정한 다음 평소에 집에 있던 자전거를 몰고 갔다. 김박사는 사이클 선수들이 타는 자전거를 타고 나왔다. 자기 아들이 장가가기 전에 탔던 자전거란다. 나는 이렇게 일반 자전거로 두세 번 같이 타다 보니 김박사의 자전거를 전혀 따라 갈 수가 없다. 본인은 천천히 가겠으니 뒤 따라오라고 하였으나 이게 어디 말같이 쉬운가?  달리고 싶을 김박사한테 그저 미안한 마음이고, 따라가는 나는 나대로 힘만 든다. 거기다가 싱싱거리며 달리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김박사는 나보고 자기와 같은 종류의 중고 사이클 자전거를 사라 자꾸 권했다. 그러면서 중고물건을 전문으로 팔고 사는 '당근마켓' 에플을 소개해 주었다.  그 곳에서 중고 자전거를 보는데 그 종류가 이렇게도  많을 줄이야!  전문 사이클용은 로드 자전거, 산악용은  MT자전거, 하이브리드는 픽시자전거로 불리는 등 평소에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용도와 종류가 정말 많다. 김박사와 같은 종류의 로드용 자전거가 있어 사겠다고 두 번이나 문자를 보냈다.  5일이 지났는데도 답이 없다. 한 번 찜한 자전거에 필이 꽂히니 다른 자전거는 눈도 가질않는다.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얼마나 탈지도 모르는데 비싸게 새 자전거를 사는 것도 썩 마음이 내키지 않고......


        이러던 중 팔월 초에 창원에 살고 있는 큰 아들 내외가 휴가차 집에 왔다.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으면 해외로 갔을텐데 집으로 온 것이다. 이런 저런 얘기중에 내가 중고 자전거를 하나 사려고 한다고 하면서 '당근마켓' 얘기를 했다. 정말 아무런 의도 없이 대화중에 한 이야기였다. 다음 날 아침 식사시간에 큰 아들은 오후에 하남 스타필드를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이 때까지도 전날 밤에 얘기한 자전거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아들은 밤새 검색을 했었던 것 같다. 스타필드에 가니 프랑스의 데카트론(Decathlon)이라는 스포츠 전문매장이 있었다. 집 근처에 있어 그 곳에 자주 가는  나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픈한지 얼마 안된 것 같다. 


        큰 아들은 내가 찾던 로드용 자전거를 고르면서 자기가 선물하겠단다. 겉으로야 중고를 사겠다고 했지만 내심은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가격도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수준이다. 그저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과거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이 꼭 이랬으리라 . 항상  부드럽고 인자하시면서도 술을 좋아하셨던 아버님의 살아 생전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70년대 초 나는 며칠 씩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던 때가 있었다. 모처럼 집에 올 때면 2 리터짜리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왔다. 그때 그렇게 좋아 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바로 이 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다. 아버님은 친구분들을 불러 잔을 돌리시며  '이 술을 우리 동선이가 사왔다'고 하시던 장면이 너무나 생생하다.  그래 사랑하는 내 아들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받을께!  고맙고 감사하다. 너무 일찍 가신 부모님의 생전 모습이 무지개 처럼 환영되어 떠오른다.


        나는 과거 자전거를 비교적 많이 탄 셈이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자전거로 통학을 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주변 분이 자전거 사고로 크게 고생하는 것을 봤다. 이를 보고 산에 가거나 걷기를 주로 하고 있었는데  김박사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 두어달 동안 자전거를 타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허벅지 근육이 더 탄탄하고 두꺼워 진 느낌이다. 늙어 가면서 신체 활력은 허벅지로 부터 나온다고 하지않던가.  


        처음에는 하남 스타필드 근처에 있는 우리집에서 팔당대교를 건너 양수리까지 갔다.  그 다음은 신원역까지, 그 다음은 아신역까지, 지금은 양평까지 갔다온다. 국토 종주길이라 자전거 타기도 좋다. 그래도 나 혼자라면  망설여지고 못간다. 머뭇거리다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 서로 의지가 되어 둘이서 함께 하니 힘도 덜 들고 훨씬 더 즐겁다. 김박사로 인해 아들에 대한 정도 더 느꼈고 부모님에 대한 감사 마음도 다시 새겼다.  오늘도 오락가락하는 빗속에 함께했던 당신께 감사한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아는가? 시~잉~ 싱~. 로드자전거를 타본 사람만이 그 즐거움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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