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일본은 우리보다 여러가지로 우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항상 일본 하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에서 우리보다 월등히 앞서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같은 은퇴 세대는 대체로 그렇다고 본다. 요즘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벌집 쑤셔놓은 것 같다. 나는 2020년 3월 10일 이 밤이 슬프면서도 기쁘다. 세상이 평소보다 훨씬 더 넓고 밝아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초기 확진자가 30번까지 발표되었을 때는 곧 잠잠해질 거라고 믿었다. 우리의 의료 수준으로 봤을 때 별일 없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31번 확진자가 발표되고 나서는 갑자기 며칠 사이에 신천지 교인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1백을 넘더니 1천, 2천, ... 이젠 7천 명을 넘고 사망자가 50명을 넘었다. 기하급수적이라는 말이 이때 딱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너 나 할 것 없이 어두운 그림자에 두려움을 느낀다. 마스크 없이는 외출하기가 두려운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약국에는 마스크가 없다. 수 백 미터 줄을 서도 마스크를 살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중국 황사니 미세먼지니 해도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마스크의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며 살았다. 그런 마스크가 품귀라니! 황망하기 그지없고 이제는 서서히 두려움 그 자체로 변했다. 당국에서는 마스크 5부 제로 국민 모두에게 공평히 배분한다고 발표했다. 마스크 품귀 현상이 잡히기라도 할지 모르겠다.
언제나 다정하고 친절하지만 나에게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선배님이 안 부차 전화를 주셨다. "동생 잘 지내지?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스톱시켰네. 시중 경제가 말이 아니네. 아니 이제 마스크 하나 마음대로 살 수가 없네. 자유경제 국가에서 배급제가 말이나 돼? 그러고 이런 제도를 시행했으면 약국에서 제대로 살 수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네. 수 백 미터씩 줄을 서고도 앞에 서지 못하면 그것도 못 사고 만다네. 정부에서 최대한 많이 만들게 하고 통제해도 이런 때 저만 잘 살겠다고 매점매석하고 사재기나 하고 있으니 우리 국민성이 문제야. 일본 같은 선진국 되려면 우리는 아직 멀었어!" 우리 둘이는 우리나라가 너무 체계적이지 못하고 국민성은 이기적이라는 등 한참을 그렇게 마스크 이야기로 끝냈다.
그날 저녁 나는 "일본은 마스크 5부제 안 해도 1인 1매 구매한다. 시민의식+"라는 인터넷 기사를 봤다. 제목으로 봤을 때 일본은 시민의식이 우리보다 월등하게 높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 그 내용을 요약해 봤다. "일본도 한국에서처럼 마스크 품귀 현상이 벌어지며 이른바 '마스크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한 대형 양품점이 판매 정책으로 마스크 성능에 따라 개당 우리 돈으로 3,400원~4,540원에 파는데 2개 이상을 사면 그 가격이 11만 4,280원으로 정상가의 30배를 내야만 구매가 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 더 구매하고 싶어도 1인 1매 구매가 지켜지게 됐다. 이 양품점도 확보한 마스크 수량이 한정돼 매진되는 경우도 있으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사재기는 없다. 정말 필요한 사람이 구매할 기회가 늘었다는 긍정적 반응이 나온다. 매진도 있고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고 환경이 만든 마스크 1인 1매 규칙이지만 큰 불만은 없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일본인들은 작은 것에 기뻐하고 긍정적인 생각이다"가 결론이다. 오전에 선배님과 한 얘기도 있어 같은 상황이지만 역시 일본은 다르다고 생각되는 기사였다.
그런데 이게 뭔 소린가? 추천순 첫 댓글을 보니 “도쿄에 거주합니다. 어느 지역에 있는 매장인가요? 마스크는커녕 휴지도 못 사고 있어요. 인터넷도 마스크 가격 저렴해서 들어가면 배송료가 2만엔(20만 원) 이딴 식으로 팔고 있어요. 이런 근거 없는 기사는 낙서만도 못하네요.”했고, 두 번째 댓글은 '“뭔 웃기는 소리야~. 일본에 사는데 도쿄에는 마스크도 없고, 소독제도 없고, 화장지도 없고, 키친타월도 구매하려 해도 어디에도 없는데 뭔 꿈의 기사를 쓰고 앉아 있대?”라고 썼다. 전자는 추천이 3만 명이 훨씬 넘고 답글이 5백여 개에 이른다. 일본 전 지역에 살고 있는 현지 한국인들이 실제 상황을 댓글로 단 것이다. 일본 현장도 제대로 안돌아 보고 기사를 썼다고 비난 일색이다.
세상 정말 많이 바뀌었다. IT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세상에서 이제는 기자도 못 해먹겠다는 이야기가 저절로 나올 것 같다. 기사의 결론대로 일본인들은 작은 것에 기뻐하고 긍정적이어서 우리도 이를 따르자는 것이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기사를 썼다고 해도 현장과 동떨어진 얘기는 이제 저 달 속의 토끼 얘기나 다름없다. 달 속에 아무리 토끼가 있다고 썼어도 이제 우리는 그 달 속을 너무나 훤히 알고 있다. 누구나 손금 보듯이 세세히 알고 있다. 비밀이란 있을 수없는 세상이 되었다. 순간은 속였더라도 금방 알게 된다.
일방적으로 훈계하고 계도하는 기사는 이제 설자리가 없다. 이제 한 방향으로만 통하는 일방통행은 없다. 팩트에 근거하지 않으면 진실은 곧 드러나게 된다. 웬만하면 그 기자만큼 공부했고 현명한 독자들이다. 요즘은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시대다. 도처에 기자를 능가하는 전문가가 널려있다. 나아가 의식이 깨어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똑똑한 국민들은 일방적인 한 방향의 소통을 배척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평상시의 인식에 의문이 생긴다. 이제 나는 일본 전역에 살고 있는 한국 교포들의 실제 상황에 따른 댓글을 보고 있다.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는 생생한 일본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우리는 이런 거짓 기사들에 오랫동안 속고 살아왔단. 참 슬픈 밤이다.
31번 확진자가 나오기 전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섣부른 낙관론으로 우리를 실망시켰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다행히도 현재는 그런대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젠 시스템적으로 체계가 잡혀가는 듯하다.
드라이브 쓰루 방식 등으로 쉴 새 없이 바이러스 확진자를 찾고 있다. 사회 각종 시설에 확진자를 모두 입소시키고 있다. 대기업들은 연수원을 확진자들을 위한 시설로 제공하고 있다. 환자들을 응급 순위별 4단계로 분류해서 입원시키고 있다. 마스크 5부 제로 기약 없던 줄 서기가 줄어들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등 의료 관계자들도 체계적으로 움직인다. 현장에서 뛰는 의사들의 땀에 흠뻑 젖은 수술복을 볼 때는 숙연함 마저 느껴진다. 우리에겐 정말 큰 위안이고 자랑이며 긍지다.
세계 언론들은 우리나라가 세계 롤 모델이 되고 있다고 전한다. 일본보다도 우리가 훨씬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란다. 그래서 나는 이 밤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