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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키 May 13. 2021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이라고 합니다

태어나보니 가족, 다음 생도 함께 해도 될까

어릴 땐 TV 드라마를 자주 봤는데 나이 들고 드라마를 잘 안 보게 되다가 작년에 제목에 이끌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막장드라마가 판치는 요즘 보기 드문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드라마가 하는 월, 화 밤엔 엄마와 같이 눈물 흘리며 보곤 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적당히 예의를 차리면서 가족에겐 모질게 하는, 가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드라마였다. 무조건 자식을 위한 것이라는 부모의 모순된 사랑, 가족을 위해 희생했지만 정작 가족에게 모든 핀잔과 소외를 당하는 엄마 등 드라마를 보니 각자의 기억은 이기적으로 왜곡되어 있고 사랑과 상처 모두 가족에서 시작한다.

드라마 작가는 어쩌다 이렇게 훌륭한 제목을 짓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정말 제목처럼 매일 한 집에 부대끼며 사는 가족인데 아는 건 별로 없다. 그래서 다 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부모님은 자식들이 음식을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아는데 정작 자식들은 부모가 어떤 입맛인지 대~충 대략적으로만 안다. 예를 들어 한두 가지 음식 정도까지만. (예를 들어 엄만 떡갈비를 좋아하고 아빤 콩나물국을 좋아해라는 식) 하지만 부모님들도 자녀들의 입맛 외의 다른 취향이나 고민, 연애사 같은 비밀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예전에 대학원 수업 중에 한 할아버지 선생님이 결혼 관련 얘기를 하신 적이 있으신데, 사람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야 한다며 부모에게 받은 덕을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그 업보를 대물림해야 공평하다는 말을 지나가듯 하신 적이 있었다. 그땐 단지 엄마들이 전형적으로 하는 말인 ‘너 같은 아들/딸 낳아봐!’라는 말인 줄로만 알았는데 나이 들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점차 이해가 갔다. 결혼 전엔 부모 아래 있는 것이 제일 편하고, 자식을 낳아야만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어른들 말씀이 다 맞나 보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끼리 너 형제가 어떻게 돼? 맞춰봐! 란 대화를 하면 난 항상 밑에 남동생/여동생 있을 것 같단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나는 일명 늦둥이 딸이어도 애교스러운 딸이 아닌 무뚝뚝한 딸이다. 가족들에게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조잘거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들에겐 장난기 가득히 군다. 살면서 나이가 드니 집에서 아들의 결혼, 형제의 결혼이라는 경사가 생기게 되었다. 결혼 준비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조차도 해주고 싶은 마음, 더 잘되라고 보채는 마음 같은 것이 생기는데 부모 마음은 얼마나 더할까. 결혼하는 자식과 보내는 부모, 각자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자기만의 가정을 만들어 독립하는 모습을 보며 참 신기하면서도 슬프고 또 뭉클했다. 이렇게 독립해가는 자식인 오빠도 언젠가 우리 부모님처럼 될 것이고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자식이 생길 거고 또 그렇게 가족이 되겠지.  


오빠의 결혼을 앞두고 오빠와 처음 데이트를 가졌다. 초등학생 때부터 오빠 여자 친구와 함께 영화 보고 밥을 먹었어도 또는 둘이서 밖에서 그저 밥 한 끼 처리한 적은 있어도 일부러 좋은 곳을 찾아가서 시간 보낸 적은 처음이었다. 남매간 오글거리는 상황이 될 줄 알았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서로가 무심한 줄 알았는데 서로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단 걸 몰랐다. 어릴 때 내가 동생으로써 무뚝뚝이 아닌 살갑게 왜 먼저 다가가지 못했을까. 그동안 왜 이런 시간을 가지지 못했을까. 진작 이런 시간을 많이 가질걸 하는 후회와 반성, 미안함이 밀려왔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서로의 슬픔을 알지만 의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덤덤히 모른 척을 했던 것이고 속으로만 묵묵히 응원하는 것. 이것이 가족이었던 것이다.


오빠 결혼식날 메이크업을 받고 한껏 꾸민 엄마 아빠 모습을 보면서도 뭉클했다. 나이 든 자식을 떠나보내는 후련함과 동시에 씁쓸함,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것에 대한 기대와 환영, 집에서 장남의 부재 등 사람은 나이가 들면 현자가 되는 게 아니라 살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배우고 또 배우는 존재인 것 같다.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계속 배우는 건가 보다. 아는 건 없어도 나이가 드니 내 모습에서 부모 형제의 싫은 모습 좋은 모습이 들어있다. 이제 우리 가족은 4명에서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서로를 더 알기 위해서 진짜 가족이 되는 과정 중에 있다.  

  

'가족인데, 우린 가족인데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기억이란 게 참 이기적이구나. 기억은 자신밖에 몰라’

- 드라마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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