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탄생
버릇, 취향 같은 건 언제 생기는 걸까?
돈가스를 먹을 때 갈색 소스보단 케첩에 찍어서 먹는 걸 좋아하고 뜨거운 순댓국 먹을 때 순대를 먼저 건져내 식혀서 먹고 편의점 아이스크림 중에서 ‘쿠키오’를 찾으면 네 잎 클로버를 찾은 것 마냥 좋아한다.
내 입맛, 좋아하는 이성 스타일, 패션, 생활습관 등은 어릴 때부터 형성되는 걸까, 자아가 생기는 어른일 때부터일까?
1. 아, 님이 오시는 날인가 보오 - 육개장
엄마가 하는 요리 중 스끼야끼, 김밥 등 다 좋아하지만 그중 육개장을 좋아한다. 소고기 듬뿍 우거지 듬뿍 들어간 엄마표 육개장은 얼큰하면서 시원하다. 음식에 대해 시원하단 표현을 육개장을 먹으면서 배운 것 같다.
어릴 때 가족들이랑 미국 여행을 가면 거기서 만난 부모님의 지인분들이 어린 나에게 뭐가 먹고 싶냐고 물으면 어린애 입에선 햄버거, 스파게티가 당연히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웬걸 나는 육개장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어른들은 어린애가 패스트푸드가 아닌 육개장을 좋아하냐 미국에서 그게 먹고 싶냐고 웃기다며 빵 터졌고 나를 위해 다 같이 한인타운에서 육개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평소에도 육개장을 만들지만 대부분 특별한 날에 만든다. 가족 중 한 명이 멀리 출장이나 집을 비우다가 돌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육개장을 냄비 가득 끓인다. 육개장을 끓일 때면 ‘아 맞다 오늘 돌아오는 날이지’ 하고 생각하게 하는 요리다.
음식점에서 먹는 육개장이 아닌 엄마가 끓인 엄마표 육개장, 내 취향이다.
2. 어릴 적 고막남친 - 성시경
초등학생 때 동네 미술학원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미술수업을 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원에서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 건물 1층 편의점 음식, 배달음식을 반복하며 밤까지 수업하는 입시지옥이 시작되었던 초등학생 때 유일하게 재밌는 얘기와 노래를 듣는 시간은 라디오 듣는 시간이었다. 그때 기억으로 지금까지도 라디오를 즐겨 듣고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한다. (이것도 하나의 취향이겠군!) 한 번은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노래를 듣고 반한적은 초등학생 인생 중 처음이었다. 감미로운 목소리에 멜로디까지.. 얼굴도 모르는 성시경이라는 가수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게 오는 길’을 불러주는 남자가 있다면 무조건 결혼할 거라는 다짐을 하기도 했었다. 얼굴을 모르는 좋아하는 가수가 잡지에 나와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내가 생각했던 외모가 아니어서 많이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난 외모보단 분위기, 아우라를 보는 편이라 가수는 목소리지 하며 성시경의 팬클럽인 ‘퍼플오션’에 가입해볼까 하며 카페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고 서울대 가기 위해 삼수한 이력까지 찾아보기도 했다. 이때부터였을까 성시경, 유지태 같은 다정해 보이고 부드러운 상을 좋아했는데… 어른 연애는 이와 반대인 얼굴과 했으니 참 남자 보는 눈 그지 같았네.
3. 새로 생긴 취향 - 달달이
나이 들면서 새로 생긴 취향은 바로 빵집 투어다. 스트레스받으면 달달한 거로 푸는 성격이 새로 생겨서 기름값, 옷값 등 다른 데서의 지출이 아닌 디저트 비가 내 지출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식비와 같거나 그 이상 나가는 디저트 비란..
한 번은 유명하고 맛있는 바닐라 타르트를 파는 곳이 있는데 웨이팅이 엄청난 곳이라 들어서 비도 오는 당일날에 오픈전부터 2시간을 서서 기다린 적이 있다. 기다림 끝에 먹었더니 감탄하며 허겁지겁 먹었다. 역시나 사람 많은 곳은 다 이유가 있나 보다.
이렇게 해서 평일 점심시간이나 주말에 가끔 빵집, 맛있는 케이크와 쿠키를 파는 맛집에 가서 포장해오는 즐거움은 돈과 시간을 써도 아깝지 않은 비용이다.
내가 나를 생각할 때 선택 장애에 주관이나 취향이 어느 하나 확실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름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게 있긴 있었다. 내가 따로 좋아하는 게 있어도 상대에 맞추기도 하고 따라가는 성향이긴 하지만 어릴 때부터 싫어했던 건 무엇보다 빈말과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이다. 약속 안 지키는 건 시간 약속이 아니라 예를 들어 ‘내가 ㅇㅇ할게’ ‘우리 어디 가자’와 같이 다음을 기약할 때의 일을 - 나는 빈말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기다리는데! - 상대가 잊어버리거나 무시해버리면 티는 안내도 참 많이 서운하고 상처 받는다. 뭐 말을 안 한 내 탓도 있지.
예전과 비교해봐도, 시간이 지나도 여전하다.
제 버릇 남 못준다고 취향 참 일관되고 똑같나 보다.
나의 취향과 버릇 같은 게 더 생각나면 2탄을 써야겠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