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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키 Aug 08. 2021

빈칸을 입력하세요

걸어요, 우리

다른 사람들이 나를 외적으로 보면 몸에 근육 하나 없는 물렁살에 운동에 관심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그래서 대학생 초반에 운동하는 게 한때 유행이기도 했고 여러 운동을 찾아보다가 헬스는 저질체력인 내게 힘들어 보여 동네에서 체형 교정에 좋다는 필라테스를 시작하여 꾸준히는 아니지만 기간상 오래 다녔다. 매트 필라테스, 기구 필라테스도 다 해봤지만 단기적으로 한 달 끊으면 나름 열심히 다니지만 3개월, 6개월씩 끊으면 아직 기간이 남아있으니까 라는 생각에 열심히 다니질 못했다. 이미 낸 수강료도 아깝고 꾸준히 다니는 것도 힘들어 돈도 안 들고 운동되는 것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집 근처에 공원도 있겠다 그럼 공원에서 러닝이나 산책이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에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중간에 살이 급격히 찐 적이 있는데 관리하기 위해 집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고 동네에선 웬만한 조금이라도 걸으려 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산 들고 공원을 2-3바퀴 돌기도 했다. 낮과 밤 상관없이 공원을 돌다 보니 다양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일렁이는 바람에 살랑거리는 꽃과 잡초들 그리고 그위를 날아다니는 나비, 맑고 청량한 하늘, 건물 외벽에 비치는 구름 모양, 나와 같이 걷기에 열중인 사람들, 으슥한 곳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 애정표현에 열심인 커플들 . 이런 풍경들을 보면 귀에 에어팟으로 노래 또는 팟캐스트를 들으나름 심심하진 않다. 비슷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많구나.




보고 싶었던 어릴 적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어릴 땐 서로 보지 못해도 그 작은 세상이 영원할 줄 알았고 어렴풋이 어른이 되어 만나는 상상도 했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만날 줄 알았다. 언제든지 볼 줄 알았고 언제든지 연락이 닿을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겨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한 채 십 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넘어가버렸다. 학창 시절 스티커 사진을 같이 찍었던 친구들과 ‘우정 포레버’란 문구를 참 많이 적었는데 그중 포레버인 친구는 하나 없는 것처럼.

중간중간 생각이 나고 그 친구를 기억하는 물건을 갖고 있어도 나를 모르겠지 기억 못 하겠지 하며 용기를 못 냈다.

오랜만에 만나니 그 친구가 기억하는 어릴 때의 내 모습을 듣고서 나 혼자 진지충이 되어 눈물이 났다.

바로 다음 날은 친구의 생일과 같은 학교 지도교수님이 돌아가셔서 일주일 동안은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흐르는 슬프고 헛헛한 마음으로 지냈다. 둘 다 있을 때, 계실 때 찾아뵙고 연락해볼걸.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줄만 알았지 증발해버릴 줄은 몰랐다. 어릴 때 짧은 기간 동안 친구에게 받았던 예쁨들을, 그 경험으로 어른이 돼서 만난 상대방에게 해주려 노력했다. 그래서 그때 그 친구에게 그래지 못했던 게 미안해서 생각이 많이 나기도 했다.

그 친구는 여전히 예쁘고 올바르고 착했다. 나를 만나줘서 고마울 만큼.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엉망진창으로 산건 아니지만(파혼 X 사별 X 사기 X) 그 친구에 비해선 그렇게 느껴졌다. 공부하고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겪다 보니 이기적이고 양보할 줄 모르고 고집 세고 드센 어른이 되었다. 사람 자체보다 조건을 보게 되고 질투와 오기로 행동하고 권력 있는 사람이 좋아 보이고 약아빠진 행동을 하기도 한다. 나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 친구는 여전히 눈치 빠르게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여전히 미안하단 말을 쉽게 잘하는 그때 그대로인 어른으로 컸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10년의 간극은 참 컸다. 어리고 너무 서툴렀던 순수한 모습에서 이런 나의 변해버린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사소한 모습에서도 눈치를 다 ‘까는’ 어른이 되었다. 순수했던 시절에 만난 친구를 이제 와서 다 큰 어른의 세상에서 또 만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감정이 들면서 눈물이 난 이유 중 하나는 어릴 적엔 20대, 30대가 되면 내가 있던 작은 세상이 커지고 완벽한 세상 속에서 완벽한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모든 일에 정답을 알고 옳은 결정을 하는 어른으로 말이다.

근데 지금 이 나이가 되어 깨달은 것은 결정이 옳았다 해도 결과가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거, 옳은 건 뭐고 틀린 건 뭘까. 나한테 옳다고 해서 다른 사람한테 옳은 것일까. 뭐 나한테 틀리다고 해서 다른 사람한테도 틀린 걸까. 내가 옳은 방향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해도 나도 누군가에겐 개새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어려서 그런지 아직 항상 옳고 싶고 내가 맞았으면 좋겠다.

(요새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즐겨보다 보니 대사에서 응용 발췌했습니다)

나도 한땐 간절한 열정과 용기가 있었을 때가 있었는데 이런 간절함이 사라진 지 오래다. 간절함과 용기는 사라지고 여전히 갈팡질팡 자리를 못 잡고 있는 상태의 느낌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주변에서 사람이든 일이든 무엇이든지 놓치고 싶지 않아 확신하는 결단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어른이 되어보니 공감 가는 짱구 아빠의 인생 명언 중에

‘자기 혼자 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크게 될 자격이 없다’  

‘계획은 무슨! 계획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는 거야’가 있다.

언제 이렇게 커버리게 된 거지? 내가 상상했던 모습이 아닌데. 내 성격에 계획대로 안되면 스트레스받는 성격인데 계획대로 안되면 얼마나! 스트레스받겠는가?


나는 아직까지 빈칸으로 남아있는 네모칸이다.

생각하기 귀찮으니 민초 아이스크림이나 먹어야지

그저 걸으며 눈에 다양한 풍경을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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