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두! 다시 잘하고 싶다
어릴 때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살다 한국에 8살에 왔다.
하늘은 맑고 높았고 1년 내내 화창한 따뜻함이 있던 썸머 크리스마스가 있는 하와이에서 지내다 나에겐 공기가 탁하고 뿌연 회색빛으로 보였던 서울로 오게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을 보면 나는 노란색 바탕의 화려한 꽃무늬가 있는 눈에 확 띄는 '베네통' 패딩을 입고 있는 반면 다른 아이들은 무표정에 옷은 채도가 낮은 무채색의 비슷한 색상의 옷을 입고 있다. 그렇게 나 혼자 튀는 밝은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놓고 가자, 한 친구가 와서 가방 두고 간다며 소리 질렀지만 그 당시 나는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해 그냥 간 적이 있다. 후에 그 친구가 자기가 말을 해도 지나쳐서 나를 이상한 애로 생각했다고 했다.
밝고 천진난만하게 롤러스케이트 타고 다니며 무지개를 '무구개'로 말하고 떡을 좋아해서 주위 어른들이 떡순이라고 놀리면 I'm not 떡순~! 라고 말하면서 무지개떡을 좋아했던, 무지개가 많은 나라에서 낯선 환경으로 오자 어릴 때 침대에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항상 활짝 웃고 다니다 점차 무표정에 차가운 성격으로 변했다. 또 하와이에선 자유롭게 학교를 다녔는데 서울에 오니 교장선생님이 엄마와 나를 불러놓고 왼손잡이인 나를 오른손잡이었으면 한다며 오른손으로 글씨 연습한 기억도 있다.
한국 와서 초등학교에서 급식 입맛도 안 맞고 발음 때문에 또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듣는 이유로 저학년 땐 무시받다가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한국말을 나름 하게 되었다. 맥도날드, 샌프란시스코 같은 외국어를 발음하면 그때 아이들은 내가 일부러 잘난척한다며 타박해서 영어 발음할 때는 입을 닫거나 한국식 발음을 했다. 20살까지도 말을 할 때 손을 쓰는 제스처를 많이 써서 다름을 특이하게 생각하는 한국사람들에겐 그저 영어를 못하는 외국인 느낌이었다. 그동안 영어를 많이 까먹었어도 발음만은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영어로 말할 기회가 없다 보니 발음조차 나빠지기 시작했다. 한 번은 하와이에서 학교 선생님께 편지가 온 적 있는데 한글 배우는 거에 집중을 했는지 영어 편지조차 이해 못하는 지경까지 갔다.
중,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영어는 점차 멀어져 갔다. 듣기 영역은 나름 쉬웠지만 다른 영역에선 어릴 때의 희미한 영어 기억을 가지고 수능 영어 공부를 했다. 단어며, 문법이며 영어도 그래 봤자 일상의 언어일 뿐인데 왜 벅차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대학가선 TEPS 시험 때문에도 고생을 많이 했다.
마음먹고 2년 전에 동네에 있는 영어 회화학원을 다녔다. 대학교 다닐 때나 일할 때에도 외국인을 만날 때 선뜻 말이 안 나오고 머릿속으로 문법 어순대로 생각을 하고 그다음 말을 하는 식이었다. 회화학원에서 레벨테스트를 하고 기초반으로.. 직행하여 원어민 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같은 레벨의 사람들과 영어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원을 다녀보니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퇴근하고 온 직장인, 유학 생각하는 대학생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저녁시간에 나뿐만 아니라 다들 영어에 관심 있고 열정도 가득한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 정말 나 빼고 다들 인생을 열심히 사는구나 싶었다.
한 번은 예전 영국 여행에서 영화 '노팅힐'에 나오는 서점에 방문해서 산 유아용 도서를 읽기도 했는데 의지박약이라 조금 읽다 말았다.
그러다 최근에 TEPS 시험을 다시 보게 되면서 전화영어를 할까 하다, 듣기에 약해 우선 출퇴근에 팟캐스트로 들을만한 영어 콘텐츠를 찾다가 쉬운 난이도의 팟캐스트를 찾게 되었다.
1. 김영철, 타일러의 '진짜' 미국식 영어
2. Culips Everyday English Podcast
3. Skimm This
정도가 나에게 맞았다.(난이도 하) CNN, BBC, TED 등의 팟캐스트도 들었지만 어려워서 패스...
김영철, 타일러의 <진짜 미국식 영어>는 한국말도 잘하고 똑똑한 타일러가 나와서 짧게 5-6분 정도밖에 안 되는 라디오 속의 코너이지만 한 회차에 예를 들어 '밤낮이 바뀌었어!'라는 영어로 사용하고 싶은 표현을 김영철과 타일러가 재밌는 콩트를 하며 실제 미국인들이 쓸만한 영어를 소개해준다.
- I'm a bit noctural nowadays. 밤낮이 바뀌었어.
- The noodles are soggy. 라면이 불었어.
- What's gotten into you?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 There goes an arm and a leg. 등골이 휜다.
- And I'm Barack Obama. 내손에 장을 지진다.
와 같이 학원이나 문제집에서 배울 수 없는 일상생활 표현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
나머지 <Culips Everyday English Podcast>는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인 구독자들이 듣기 쉽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영어를 천천히 말하고 쉬운 표현으로만 말해줘서 내가 영어 듣기에 능숙하다는 착각을 해줘서 좋고, <Skimm This> 같은 경우는 미국 헤드라인 뉴스를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다.
영어 성적에 맞출 필요도 없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생각이 날 때마다 영어 팟캐스트를 듣다 보니 '라면이 불었어' 같은 표현도 차 안에서 타일러의 발음을 따라 하며 입 밖으로 내뱉는 발음 연습을 하게 된다. 그리고 좋아하는 팝송을 들으며 가수가 말하는 단어의 뜻 말고도 그 단어를 사용하는 문화와 배경까지 찾아보며 이해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최근 꽂히게 된 저스틴 비버의 <Peaches>란 노래에 'I got my peaches out in Georgia'에서 조지아는 복숭아로도 유명하고 복숭아 속어가 여러 가지 있지만 부인 헤일리를 뜻하고 헤일리를 처음 만난 곳이 조지아고, ‘I get my weed from California'는 캘리포니아는 대마초가 합법화라 저스틴 비버가 즐거움을 얻는 곳은 캘리포니아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분석하다 보면 저스틴 비버의 헤일리를 위한 사랑노래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영어도 언어일 뿐, 일상에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도구일 뿐이다. 억지로 익힐 수도 없고 배운다고 느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영어 실력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또 그걸 알 필요도 없다. 그저 영어 공부할 때의 과정을 편하게 즐기듯이 하면 된다. 영어도 언어일 뿐! 오해하지 말자!
(대체 언제 편해질지는 모르겠지만:))